최종편집 2024년 11월 30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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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6ㆍ끝>
연재라고 하면 연재가 나가는 날이 있고 마감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 글들은 2001년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한달 동안 단숨에 쓰여진 글들이다. 그래서 이 글들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의견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진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연재라는
김시원 뉴질랜드 교민
세금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5>
봉급을 받는 사람의 경우 작년부터 세금신고를 직접 하지 않고 고용주가 하게 되었다.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세금신고 마감일이 4월 7일 1학기 중간 한참 공부할 때라 이곳에 오자마자 대학을 다닌 남편 대신 세금신고는 꼬박 나의 몫이었다. 세금 신고서와 함께 안내서가
우리는 한편이다 (2)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4>
어디나 그런 애들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 애가 마주치면 괴로워하는 애가 포니 클럽에 있었다. 그 아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처음 느낌 감정이 인종차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일 정도로. 처음 말을 사서 방학이면 하루 종일 포니 클럽에 가서 살 때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2>
트루스 할머니와 제이콥 할아버지가 싱글벙글하며 오셨다. 아직 예배시간까지는 몇 분 남아 있어서 교회 마당에 서 있는데. 며느리가 드디어 딸을 낳았다는 것이다. 위로 아들만 셋을 낳고는. 뒤이어 에릭 할아버지와 프리다 할머니가 오셨다. 나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손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1>
외국의 저명인사들이 오면 공항에 나간 기자가 공식처럼 묻는 말이 있었다,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떠날 때도 묻는다, '한국을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그가 유명한 가수이건 배우이건 스포츠맨이건 정치인이건 상관없다. 이 말을 물어보고, 원더풀이
한 번 뉴질랜드인이면 영원한 뉴질랜드인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0>
캄캄했던 대학 시절 우린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었다. 일학년부터 청운의 꿈을 안고 해외유학을 가겠다고 이를 악물고 영어공부하고 또 공부 잘 해서 간신히 장학금이라도 타야 나라 밖을 나가볼 수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외국에를 다녀왔다는 2000년도의 통계 숫자
계속 살거니 아니면 돌아갈거니?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9>
이 나라에서 계속 살 건지 아니면 언젠가는 돌아갈 건지를 키위가 물어볼 때 결국은 돌아가게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얌체같은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사와 이민의 차이일거다. 내 나라 안에서
에릭 할아버지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8>
키위 친구들에게 가끔 받는 질문이 있다. 뉴질랜드에서 계속 살거니 아니면 언젠가는 돌아갈거니?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결국은 돌아갈 거라고 생각을 해서 그런 질문을 하나 라는 게 나의 처음 생각이었다. 실제로 정착 못하고 돌아가는 아시아 이민자들이 꽤 많다고
남자와 가사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7>
가야겠다고 다들 일어나서 나가는데, 에릭 할아버지는 설겆이를 해주고 가시겠단다. 내 남편이 설겆이 해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동양남자들이 다 그렇지 않냐고 눈을 꿈쩍 하시면서. 그래서 걱정마시라고, 그 사람도 설겆이가 이렇게 많으면 도와준다고. 그랬더니 정말
식사 초대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6>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처음 2,3년 동안은 불고기라든가 잡채 등 우리나라 음식을 키위들에게 맛보여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무슨 행사에서든지 우리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한 몫 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 학교 바자회에서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