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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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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2>

트루스 할머니와 제이콥 할아버지가 싱글벙글하며 오셨다. 아직 예배시간까지는 몇 분 남아 있어서 교회 마당에 서 있는데. 며느리가 드디어 딸을 낳았다는 것이다. 위로 아들만 셋을 낳고는. 뒤이어 에릭 할아버지와 프리다 할머니가 오셨다. 나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손녀를 보셨다면서요 라고 덧붙이면서. 그런데 에릭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별로 기쁜 표정이 아니다.

트루스 할머니와 프리다 할머니는 사돈인데, 두 노부부가 친구처럼 지낸다. 함께 교회 오고 성가대도 같이 하고 음악회도 같이 가는 등 온갖 문화행사를 같이 하신다. 사돈의 서먹함이 전혀 없다.

이 일처럼 전혀 반대되는 반응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 에릭 할아버지는 손녀 본 것이 정말 기쁘지 않으신 것 같아 축하한다고 내가 말한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친정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났다. 친 손주가 징징거리면 며느리가 왜 아이를 좀 더 잘 보아주지 못하는가 싶고 외손주가 징징거리면 저 녀석이 왜 엄마를 저렇게 괴롭히나 싶어 외손주가 이쁘게 보이지 않는다고 어쩌면 이렇게 며느리 생각하는 마음하고 딸 생각하는 마음이 다른지, 여고 동창회에 갔을 때 친구분들이랑 이야기했다고 하셨다. 딸이 또 아이를 낳은 것이 딸에게는 고생이다 싶은 마음이 한국 부모이나 마찬가지로 에릭 할아버지에게 있나 보다 생각했다.

얼마 뒤 할아버지 집에 갈 일이 있었다. 현관에서부터 벽마다 사진들이 걸려있는데 단연 딸의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 고등학교 때 전교생이 찍은 사진을 확대한 것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라고 하시면서 고등학교 때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지 또 바이올린도 잘 켜서 고등학생 경연대회에 나가 일등했다고 자랑하시면서 그 상장 붙여놓은 것도 손으로 가리키셨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시면서 그런 게 다 소용없다고 너도 딸을 키우니까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의대에 들어가서 뉴질랜드에서 유학 온 남자랑 연애하더니 여기까지 와서 의사노릇도 몇 년 못하고는 아이 키운다고 집에 들어앉은 것도 한심한데 이제 아이를 넷이나 낳았으니 언제 의사 노릇을 다시 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자기가 다 좋아서 아이를 넷 낳은 건데 우리가 뭐라고 할 것 뭐 있냐고 할아버지에게 말하는데도 할아버지는 딸 생각만 하시면 마음이 영 언짢으셨다. 아이가 셋일 때는 그래도 집에서라도 의사협회 회보 만드는 일을 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내 느낌은 의사 일을 그만 둔 것보다는 거의 연년생으로 낳은 네 아이들 뒷바라지에 치일 딸이 가여워 그렇게 불평하시는 것 같았다.

딸 하나만 있는 나와 그래서 에릭 할아버지와 프리다 할머니는 무척 가까왔고 30년이 훨씬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했다. 딸이 넷째 아이를 낳고 일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영국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우겨서. 그 다음 해에 딸과 손자 손녀 보고 싶어 다시 잠깐 들리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일년 사이에 눈에 띄게 늙으셨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사돈인 트루스 할머니가 전해 주는 말로는 프리다 할머니가 알쯔하이머 병(치매)에 걸리셔서 자기가 전화를 걸어도 누구인지 모른다고 안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여기 계실 때도 잘 잊어버리시고 한 이야기를 반복하시는 경향은 있었지만 가슴아픈 소식이었다.

그런데 다시 그 다음 해 그러니까 작년에 트루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소식은 지금도 간혹 생각이 나며 가슴이 무거워진다. 프리다 할머니의 외딸인 트루스 할머니의 며느리, 새러가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한 채 3개월 째 입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트루스 할머니의 말, 새러가 안 되었어, 여기에 아무 가족도 없고, 자기 어머니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요양원에 있고 아버지는 어머니 때문에 딸이 아파 누워 있어도 이곳에 와 보지도 못하고. 그리고 나서 덧붙이는 말, 내 아들이 참 안되었어. 마누라는 입원해 있고 아이를 넷이나 돌보아야 하고. 직장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얼마 뒤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을 때 트루스 할머니에게 새러가 아직도 입원해 있는지, 병명은 알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입원해 있다는 이야기 끝에 다시 덧붙이셨다. 내 아들 불쌍해 라고, 이번에는 새러 불쌍하다는 말씀은 없이.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며느리보다 아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이 동서양 차이가 없다. 딸 가진 부모가 억울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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