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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36ㆍ끝>

연재라고 하면 연재가 나가는 날이 있고 마감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 글들은 2001년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한달 동안 단숨에 쓰여진 글들이다. 그래서 이 글들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의견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진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연재라는 말이 맞지 않지만 어쨋거나 연달아 실렸다는 의미에서는 연재를 한 셈이다.

아이 친구 중에 시를 잘 쓰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시를 좋아하는 영어 선생님이 그 아이의 시를 수업시간에 분석했단다. 우리도 국어 시간에 배웠듯이, 시인이 이것을 쓴 의미는 무엇이고, 이런 표현을 무엇을 뜻하고 등등. 아이가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았단다,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쓴 건지. 그 친구의 말은 그냥 쓴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나도 이곳에서 경험한 삶들을 그냥 썼다, 나에게 있었던 그대로 덧붙이지 않고.

그러나 쓰는 것과 그것을 남이 읽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아이의 친구 말처럼, 내가 썼지만 그것을 읽고 느끼는 것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그것을 이번 연재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니면 실감하지 못했을 사실이다. 연재가 시작되는 줄 모르고 있다가 이틀 째 알게 되어 첫 주에는 나도 신문을 들락거리며 어떤 반응들이 있는지 신경을 썼다. 그러나 그 다음 주부터 전혀 읽어보지 않았다.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라는 마음이 들어서. 미리 내 글을 읽어본 적 없는 남편이 날마다 촌평을 해주었기 때문에 엄청 느린 인터넷에 들어가는 수고를 할 마음이 들지 않은 것도 큰 이유다.

처음에는 덧붙일 이야기들이 내 안에 많아 남아있다고 느끼면서 쓰려고 했다. 그러나 내 게으름 탓에 시간을 만들지 못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지막에 붙일 글이나 써야겠다 싶어졌다. 그 동안 읽어주신 분들과 댓글을 쓰시느라 수고하신 분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누구나 잘 아는 우화가 있다. 눈 먼 일곱 사람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그 큰 동물을 묘사하는 것이 각자 달랐다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자기가 만진 부분만이 코끼리의 전부라고 우기는 것이 문제였지, 각자가 경험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도 코끼리의 어느 한 부분을 말한 것일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것이 뉴질랜드의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이곳에 오기까지 살아온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 때까지 경험했던 것이 한국 사람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없다, 비록 나의 행동거지가 이 나라 사람에게는 한국을 대표한다는 긴장감이 늘 있지만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고.

영어이야기에서 내가 뉴질랜드 영어가 표준이라고 말했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렇게 쓰지 않았지만 그렇게 느꼈다고 하시니 어쩔 수가 없지만. 나는 영어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주로 발음에 관해서 내가 겪거나 느낀 것을 썼을 뿐이다. 이곳에 처음 와서 물 달라고 부탁할 때 미국식으로 t발음 빼고 “워러”라고 하면 못 알아 듣고 “워터”라고 말을 해야 알아듣는 것을 보면서 여기 발음이 사전과 같다고 느꼈다. “I want to go" 같은 것도 ”워너 고“ 라고 말하면 못 알아듣고, ”원트 투 고“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단어 끝의 자음을 분명히 들리게 해야. 물론 한국 사람들이 그 자음 끝에 우리나라 모음 ”으“를 붙이는 것을 이 나라 사람들이 질색하지만 그래도 ”으“ 소리가 들리는 것이 자음 발음 안하는 것보다는 더 잘 알아듣기 때문에 ”으“ 소리날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t, d, k 와 같은 자음을 발음하게 된다.

발음 문제로 뉴질랜드 말이냐, 영어냐를 말했던 글이 있었는데, 아마 그 글 때문에 마오리 말에 관하여 의견을 주신 분이 있었다. 마오리 말이 영어에 섞여 들어 뉴질랜드 영어가 다른 영어와 다르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그 분이 예로 드신 kumara(고구마), haka (손님을 맞이할 때의 의식) hui(부족), marae(마오리들의 집회 장소, 우리나라의 마을회관 같은데, 그보다는 의미가 더 깊다)는 물론 영어와 섞여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모두 마오리에 관한 명사로서. 특히 hui 말고는 고유명사로서 마오리와 관련된 뉴스나 아니면 마오리와 그들 문화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말고는 들을 일이 거의 없다. contain 처럼 라틴어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영어 단어가 되어버린 말처럼 마오리 말이 일상의 영어에서 사용되는 것을 음식에 관한 고유 명사 말고는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은 김치가 옥스포드 사전에 실린다고 한들 영어 단어가 아닌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오리어는, 이 나라에서 제 2의 공용어이기 때문에 공식석상에서도 인사말 등은 먼저 마오리 말로 간단히 하고 다시 영어로 말하는, 독자적인 언어이다.

이민간 것이 무슨 자랑이냐고 하는 비판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내 글이 이민 자랑처럼 느껴졌다면 내 글 솜씨가 모자란 탓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결혼 못한다고들 말했다, 눈에 감기가 걸려야, 눈이 멀어야, 할 수 있는 거라고. 어쩌면 셈 빠른 요새 시대에는 이런 말도 옛말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뭔지 모르고 저질러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했듯이, 이민도 뭔지 몰라서 온 거다, 나의 경우에는. 이민이라는 실상을 알고서 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친정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아무 자유도 누리지 못했기에 결혼 빨리 했다는 친구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한 결혼 생활이 자유로 왔느냐, 시집살이 하느라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결혼생활이 다르듯이 이민살이도 각색각각이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살면서 우리나라 바라보는 마음은 시집와서 친정 바라보는 마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나라는 이민을 받아들여야만 할 경제 형편이었고, 우리나라는 한참 잘(?) 나가던 때였다. 그래서 가끔 이곳 키위들이 너희 나라 잘 살지 하면 공연히 기분 좋아지는 것은 든든한 친정 둔 것과 마찬가지였다. 또 성수대교, 삼풍 백화점 등이 무너져 내릴 때 뉴스 시간에 지금 한국에서 몇 달 안에 몇 번째 사고가 났다는 보도를 하면 친정에 큰 일 난 것처럼 가슴 아프고, 또 너희 친정은 왜 그러냐는 무언의 공격을 받는 것 같아 괴로워지는 것도 시집살이와 같다.

그래도 시집의 좋은 점은 친정에서도 따라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친정에서 좋았던 점은 시집에다 심어놓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런 마음이 이민을 자랑한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부분이 아닐까 싶지만 어쨋거나 나는 친정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할 마음이 없다. 이미 나는 남의 나라에 세금을 내고 사는 사람이기에 우리나라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난 작년인가 논의되었던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권리란 의무와 함께 생기는 것이지 의무이행없는 권리란 특권이기 때문이다. 국민으로서의 세금을 내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단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어디서 살고 있느냐가 발언권에 중요한 것이다.

나는 친정을 향하여 그냥 내 삶을 말하는 것 이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시누이가 되어서 뭔가 친정 올케에게 한 마디하는 것처럼 내 글이 느껴졌다면 그것도 내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다.

어쨌거나 친정이든 시집이든 살면 살수록 느끼는 것은, 처음 글을 시작할 때 이미 말했듯이 사람사는 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제도나 기후 또는 관습이 다르다 할지라도 살아가는 모습이나 정서는 마찬가지이고, 또 같은 사람이 이곳에 산들 저곳에 산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그 모습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집가서 팔자 고치겠다고 생각하고 시집간들 친정에서 가지고 온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세상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 밖에 없다고 한다. 자신이 변하고자 하지 않으면 환경이 바뀐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왜 그걸 말하고 싶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곳에 오면 뭔가 바뀌리라고 생각하고 왔지만 여전히 그 갈등이 심해지는 분들을 많이 보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한 달 남짓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내가 직접 읽은 댓글에서 그리고 남편을 통해서 들은 글들에서 다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어주신 것에도 감사한 마음이다. 또 귀한 지면을 나누어준 프레시안과 글을 쓰도록 격려했던 남편과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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