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계속 살거니 아니면 돌아갈거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계속 살거니 아니면 돌아갈거니?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9>

이 나라에서 계속 살 건지 아니면 언젠가는 돌아갈 건지를 키위가 물어볼 때 결국은 돌아가게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얌체같은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사와 이민의 차이일거다. 내 나라 안에서 생활의 근거지를 옮겼다면 고향에 돌아갈 거냐는 질문에 언젠가 가겠지라는 대답이 어색하지 않을 거다. 사실은 고향에 돌아가 살거냐고 묻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모르겠다. 실제로 고향에 돌아가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어색한 질문이기에. 이 어색한 질문에 어색한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은 내가 남의 나라에 와서 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제도가 너무 완벽하다 못해 그 때문에 경제가 망가질 정도로 이르렀던 이 나라는 90년대에 들어 열심히 자유경제 제도를 도입하여 복지 혜택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저런 복지 혜택이 있다. 아시아인들이 병원 계산대에서 골드 비자카드와 함께 이 나라 최저소득층에게 발급하여 병원비를 보조해주는 social service 카드를 함께 내밀어 그걸 본 키위가 분개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자녀 수에 따라 주는 보조비를 타는 사람이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같은 이민자끼리 비난하는 소리도 들렸다. 노인들에게 주는 수당 (물론 나이들어 자녀 따라 이민와서 세금 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최저로 받아 용돈 정도이지만)을 받으면서 해외여행을 세번 했다고 그 수당을 금지 당한 할머니 이야기도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듣거나 볼 때마다 내가 키위라도 세금 한 푼 낸 적 없이 이 나라에서 주는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곱게 보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소비를 함으로써 간접세금을 내고 또 우리나라에서 번 돈을 가지고 와서 어쨌거나 이 나라에서 소비를 하는 거니까 이 나라에 기여를 하고 있는 거라고 혼자 우겨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결코 떳떳한 느낌을 주진 못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 나라로 돌아가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얌체같아 보이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남편 월급 오르는 것에 따라 세율이 무섭게 올라 월급이 오르나 마나 라는 불평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정초라고 몇 집 건너 사는 일레인 할머니가 티 타임에 초대하셨다. 큰 딸네도 오고 다른 이웃도 오니까 10시 이후 아무 때나 오라고 하시면서. 할머니네와 그 큰 딸네, 우리, 그리고 다른 두 부부와 혼자 되신 지 오래된 할머니, 이렇게 모여 오전과 오후에 걸쳐 시간을 보내었다. 연말 연시라 전화연결이 잘 안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우리보고 서울에 전화거는 데 힘들지 않았냐고 누가 물었다. 우리는 별 문제없었다고 대답했더니, 일레인 할머니 사위는 부모님에게 전화하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안 되어서 결국 포기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설명하는 말이 자기 부모님은 1953년에 이민오는 배에서 만나 결혼하셨는데, 뉴질랜드에서 35년을 사시고 난 다음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셨다는 거다. 그 분들이 뉴질랜드 오실 때와 영국으로 돌아가셨을 때의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그래도 거기서 다시 적응을 잘 하고 계시다는 말을 했다.

혼자 되신 할머니도 영국에서 이민오신 분이다. 고향이 그리워 몇 십년 만에 영국을 가는데, 딸이 어머니가 영국에서 아주 살겠다고 할까봐 걱정을 하더란다. 자기도 그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서 얼마 있어보니 다시 뉴질랜드가 그리워서 딸에게 적정마라, 집에 돌아갈거다 라고 전화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웰링톤에서 온 할머니도 그 말에 동의했다. 자기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웰링톤이나 오클랜드 같은 큰 도시에서 언제까지나 살 건 아니고 아이들 다 키우면 은퇴하여 시골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정작 은퇴할 때가 되니까 지금 살고 있던 곳 말고 갈 데가 없더란다. 그래서 이 오클랜드에 와서 처음 살던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살고 있다고. 그리고 가끔 고향에 가보아도 머리 속에서 그리는 고향은 이미 아니라고.

사실 뉴질랜드가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뉴질랜드에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영국인이 뉴질랜드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 120년 정도이니 뉴질랜드에서 제일 오래된 집안이라 해도 4대를 넘어갈 수 없고 3대째 살았다는 집도 보기 드물다. 부모님 대에 왔다고 하는 집이 보통인데, 그나마 댓 집 건너 한 집 있을까. 물론 마오리인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한 올라가면 400년은 되지만, 그들 역시 이민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원주민이라기보다는.

그래서 너남없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2,3 대가 살았다 하더라도 뿌리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끼리 살아가는 나라가 바로 이 뉴질랜드이고, 누구나 고향이나 뿌리를 찾아갈 가능성을 염두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나의 키위 친구들도 나에게 가끔 묻는 것이리라. 계속 여기서 살거니 아니면 언젠가 돌아갈거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