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식사 초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식사 초대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6>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처음 2,3년 동안은 불고기라든가 잡채 등 우리나라 음식을 키위들에게 맛보여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무슨 행사에서든지 우리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한 몫 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 학교 바자회에서 불고기 꼬지를 만들어 바베큐대에 구워 팔고, 김밥, 심지어는 녹두전까지 열심히 부쳐대었다. 교회에서 친교를 위해 함께 점심먹는 행사가 있었다. 먹으러 갈 사람과 음식을 준비할 사람이 각각 신청하여 먹으러 갈 사람은 일정한 회비를 내고 음식을 준비할 사람은 몇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회비를 받아 가지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음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설겆이하는 일을 택하는 내가 이 때에도 음식해서 초대하는 쪽을 택했다, 과감하게. 그리고 12명을 초대할 수 있다고 신청서에 썼다. 부페식으로 식탁에 음식을 차린다 해도 아이의 책상 의자까지 다 동원해야 앉아서 먹을 수 있었는데도. 사실 몇 명을 초대해야 하나를 생각하면서 우리 집 의자 수를 세어보았다. 우리 집 거실에 빼곡이 들어앉아 먹었다. 서양식은 앙뜨레, 메인, 디저트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우리 음식을 대접한다는 고집으로 흰 밥 대신 볶음밥을 한 것과 샐러드를 만든 것 말고는 김치까지 선을 보였다. 그리고 내 나름으로 후식은 수정과와 떡을 내면 그런 대로 우리 식이겠다 싶었다. 떡은 여기서 쉽게 구하는 중국제 찹쌀가루로 볼을 만들어 카스테라를 체에 받쳐 가루를 묻혔으니 이것도 순 우리식은 아닌 셈이지만.

어쨌거나 모든 음식 한꺼번에 차려놓고 모든 그릇 동원해서 12명이 식사를 시작했다. 먹는 것보다 대화를 나누는데 더 열심인가 싶게 다들 느긋했다. 수정과와 떡을 후식으로 먹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온 분들이 거의 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 별로 다른 일들이 없어 느긋한가 어째 갈 생각들을 안 하실까 하다가 혹시 커피나 홍차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이구동성으로 "very good" 이라는 대답에 예정에 없던 차를 끓였다. 나는 수정과와 떡으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하면서. 커피나 홍차를 들고서 마시는지 아닌지 한없이 또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한국인 이민 교회를 한 두달 다니다 지금 이 키위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라 나는 대화에 별로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무엇을 또 내놓고 먹으라고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데, 그래도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남편은 다행히 잘 버티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 분이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하니 모두 일어났다.

나는 속으로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설겆이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을 애써 말려서 그냥 가시게 한 뒤에 시계를 보니 3시간이 지나갔다. 그 뒤에 이곳에서 다시 대학을 다니던 남편의 학교친구들을 불렀을 때도 3시간, 남편이 졸업 후 취직한 법률회사의 동료가 왔을 때도 3시간이 지나야 가겠다는 표시들을 했다, 점심의 경우.

우리가 키위 집에 초대를 받아가도 마찬가지로 3시간이었다, 그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감자 칩을 디핑이라고 하는, 예를 들어, 아보카도 으깨서 양념한 것에 찍어 먹는다든가, 짜지 않고 밍밍한 워터 크래커 위에 치즈나 햇빛에 말린 토마토를 얹어 먹는 것으로 앙트레를 하고 물론 포도주나 쥬스와 함께. 이 시간이 거의 30-40분 이상, 저녁의 경우는 1시간 이상 걸라는데, 배가 고파도 앞으로 나올 음식을 기대하며 우아하게 참아야 한다.

칩 한 두개, 크래커 한 두개를 먹으면서. 그리고 나서 메인을 먹는데, 키위들은 소리도 내지 않고 무척 빨리 먹어치운다. 이야기를 하면서 사이 사이 먹는데, 꿀꺽 삼키나 싶을 정도로 소리도 안나게 먹어 치운다. 이야기에 끼어들다 보면 다들 이미 다 먹고 빈 접시를 앞에 놓고 앉아 있어 나도 허둥지둥 급하게 먹고 나면 배가 가스가 차 버린다. 게다가 포크와 칼질에 서툴러서 키위처럼 음식을 작게 썰지 못해 입에 한 입 가득 집어넣으니 씹는 소리 안 내고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이야기에 끼지 않고 접시에 코박고 부지런히 먹기만 하면 또 너무 빨리 먹은 게 된다. 남들과 음식 먹는 속도 맞추는 것이 보통의 기술로는 쉽지 않다.

그리고는 메인 먹은 것을 주인이 깨끗이 치우고 정리한다. 디저트와 차를 준비하고 차리는 것이 딴 상을 다시 차리는 것과 같다. 서너가지 디저트와 차를 앞에 놓고 우아하게 약간 더 이야기하다 보면 3시간이 지나간다. 그러면 집에 가겠다고 말해도 된다. 한 시간 내지 한시간 반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하고 초대를 받아들였는데 이렇게 느리게 진행되는 점심식사로 다음 약속 시간이 다가와 2시간도 안되어 일어났다가 주인이 자기네가 뭘 잘 못했나는 표정으로 당황해하는 바람에 같이 당황스러웠다는 이야기를 같은 동네 한국분으로부터 듣고 내가 경험한 3시간 식사들을 말해주었다. 영어 중에서도 사적으로 수다 떨고 농담하는 것은 알아듣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이 제일 힘든데, 주로 그런 말을 나누기 위하여 모이는 사교 모임 식사에 초대받는 것은 그래서 3시간의 인내 시험장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