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2일 2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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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벽두 강타한 두 개의 사건, 김지하의 오적(五賊)과 전태일의 분신(焚身)
[탈춤과 나] 임진택의 '탈춤과 마당극' 1
1970년대는 정치사회사적 관점에서 보면 군사독재권력에 대한 부단한 저항의 시대이자 노동·인권을 향한 최초의 자각이 생겨난 시대였고, 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언론 쟁취를 위한 고단한 싸움이 시작된 시대였으며, 문화예술사적 관점에서 보면 탈춤을 비롯한 민속부흥운동의 시대, 다시말해 ‘우리문화 찾기운동’의 시대였다. 이 말을 뒤집어 살펴보면 1970년대는
임진택 마당극 연출가, 판소리 명창
2022.02.07 08:09:15
내 몸에 말 걸기, 고통의 춤이 나를 살렸다 2
[탈춤과 나] 김명수의 탈과 춤 2
줄 위를 넘나드는 삶, 디아스포라 안성 청룡사에서 원경스님 주례로 황석영과 결혼하고 경기도 광주에서 살았다. 1988년 11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발기인대회가 있었다. 김명수도 춤 분과위원 발기인 중 한 명이다. 당시 민예총 사무총장 김용태, 현 예술의전당 사장 유인택이 민예총 실무 작업준비를 위해 연희동 집으로 자주 들락거렸다. 발기인대회 전에 각 분과
김명수 무용가, 이화여대 민속극연구회 73학번
2022.01.31 07:02:48
내 몸에 말 걸기, 고통의 춤이 나를 살렸다
[탈춤과 나] 김명수의 탈과 춤 1
아직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디아스포라적 삶, 지금도 집을 나설 때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마음에 뒤돌아서 집을 다시 쳐다본다. 남산 안기부, 독일, 북한, 그리고 미국 망명생활, 내곡동 안기부, 검찰 조사의 통과 의례가 이어졌다. 그 이후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지된 듯, 움직이는 춤사위를 멈추어 설 수밖에 없는 역사적 순간을 체험했
2022.01.24 05:40:39
다시 처음 탈춤을 접할 때 설레는 마음으로
[탈춤과 나] 오현수의 탈춤
나는 마산오광대에서 탈춤을 추면서 (사)경남민예총 이사장을 맡고 마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현수이다. 1983년, 나는 재수생으로 경남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우리 고향에는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해서 4년제 정규 대학교에 합격하는 것이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 후포 어촌의 일은 위험한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 험한
오현수 경남대 탈춤동아리 83학번
2022.01.10 07:57:38
인생으로서의 탈춤
[탈춤과 나] 채희완의 탈춤 2
탈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그리고 철이 들 무렵부터 이제까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은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흘러가면서 또 다가온다. 탈춤은 내게 학문이나 예술이기 전에 이미 인생이었다. 느지막히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재수할 때부터 품었던 생각대로 탈춤연구회를 조직하였다. 교련반대, 삼선개헌반대, 유신철폐 등 학생시위로 대학휴교령이 잦
채희완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 초대회장
2022.01.03 11:41:31
내 인생의 마당극을 만나다 2
[탈춤과 나] 마승락의 탈춤 10
이미 칼노래 칼춤에서도 채희완 선생의 연출과 최태현 선생의 음악, 이석금 선생의 탈이 조화 그리고 일품 탈 연기로 마당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경험이 있기에, 언뜻 보면 그다지 새로운 것도 없다 할 수도 있었다. 이렇다고 하게 내세울 것도 없고, 관객도 그리 많지 않았고, 평단에서는 무어라 평하지도 못하고 침묵하였는데, 필자가 ‘내 인생의 마당극’이라고 하는
마승락 건국대 탈춤반 86학번
2021.12.30 07:50:14
내 인생의 마당극을 만나다 1
[탈춤과 나] 마승락의 탈춤 9
2) 내 인생의 마당극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를 만나다 놀이패 한두레와 극단 자갈치는 각별한 관계이다. 한두레를 만드신 채희완 선생께서 항도 부산에서 부산지역 탈패 출신들과 만든 극단이 자갈치이다 보니 우리 한두레와는 부모가 같은 친형제와 같다고 해야 할 듯싶다. 필자가 89년 한두레에 입단 이후 대전, 청주, 광주, 목포, 부산 등 방
마승락 건국대 탈춤반 86
2021.12.28 07:34:08
창작 마당극의 살아있는 전설과 내 인생의 마당극을 만나다 3
[탈춤과 나] 마승락의 탈춤 8
셋째 거리 – 거지 광대 2 길 떠난 광대들이 고향 땅을 찾아왔지만, 마을은 이미 쑥대밭이 되었고, 광대패이자 동학군 출신 억수도 이들과 재회한다. 힘을 비축하여 뒤를 도모하자던 억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장탈은 효수된 탈을 수습하려다 관군에 참수당한다. 장탈이 들고 있던 북채가 힘없이 떨어지면 버들이가 그 북채를 소중하게 이어받고는 거지 광대들과 장탈의
2021.12.22 21:07:20
창작 마당극의 살아있는 전설과 내 인생의 마당극을 만나다 2
[탈춤과 나] 마승락의 탈춤 7
마당극의 살아있는 전설 <칼노래 칼춤>을 공연 사진과 함께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 같아 공연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첫째 마당 :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공연 첫머리에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라는 동학교도의 주문이 울려 퍼지고, 지금은 가사만 전해지는 ‘시호 시호 이내 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2021.12.20 08:14:06
창작 마당극의 살아있는 전설과 내 인생의 마당극을 만나다 1
[탈춤과 나] 마승락의 탈춤 6
다음의 글은 11월 22일자 프레시안 <탈춤과 나> 마승락 탈춤 5에 이어지는 글이다. 1). 창작 마당극의 살아 있는 전설 <칼노래 칼춤(劍訣)> 93년 ‘소리 없는 만가’ 공연을 마치고 한두레 사무실을 성수동으로 옮겼다. 그간의 지하 생활을 마치고 지상으로 옮겨 놀이패 울력과 연습실을 공유했다. 신입 단원도 늘어 서창수(추계예대
2021.12.16 07:4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