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6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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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이념이 사라진 대선, 가면을 다시 본다
[탈춤과 나] 26 박승옥의 탈춤
우린 모두 공평하게 엉망진창이다 사람은 자신의 눈, 귀, 코, 혀, 피부 그리고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를 산다. 구성주의 철학자 움베르또 마뚜라나와 프란치스코 바렐라의 통찰이다. 많은 생물학자와 뇌과학자들이 동의하는 인식이다.(움베르또 마뚜라나, 프란치스코 바렐라, 앎의 나무) 외부에 객관으로 존재하는 그런 세계란 없다. 눈이 나쁜 개는 이원색의 눈으로는
박승옥 서울대 탈반, 73학번
2021.11.05 09:48:53
우리 시대의 탈놀이는 무엇일까?
[탈춤과 나] 25 어연선의 탈춤 ②
이쯤에서 박인배 선배(선생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박인배 선배는 72학번으로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 출신이며, 이른바 마당극 2세대의 대표적인 분으로 문화운동 및 노동문화운동의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극단 ‘현장’을 창단했으며 ‘노동의 새벽’, 노래판굿 ‘꽃다지’등 다수의 마당극과 공연을 연출하셨다. 그런데 이 분도 역시 탈춤에는 영 소질이 없으셨
어연선 덕성여대 국문학과 마당극패 86학번, 극단 현장 대표역임
2021.11.01 07:49:14
춤을 못 추어도 '탈춤'을 출 수 있다!
[탈춤과 나] 25 어연선의 탈춤 ①
탈춤과 마당극.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당놀이나 춘향전, 심청전 같은 고전을 떠올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극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가 마당극으로부터 연극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어릴 때부터 연극이 하고 싶었던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연극반에 가입했다. 요즘 세상에서야 대학 동아리나 학생회가 별로 특
2021.10.28 09:03:18
중국에서, 바이칼호수에서, 우리가 놀 터는 여전히...
[탈춤과 나] 24. 김원호의 탈춤⑤끝
에피소드 둘. 교주님이 불러서 중국에 탈춤 공연 간 적이 있었다. 교주님 공연에 늘 같이 다니는, 나보다사위 좋은 기라성같은 후배들이 있었는데, 아마 시간 때가 안 맞아서인지 내가 땜빵인 것 같았다. 호기를 놓칠 수가 없어서, 내가 맡은 목중, 취발이, 영감을 열씸히 연습했다. 연변 어디쯤에서 몇 번 놀았는데, 나야 당연 감개무량 잘 놀았다. 이 때 우리의
김원호 홍익대 탈춤반 '눈솟말 재인패' 76학번
2021.10.25 07:06:38
굿쟁이들의 로망 나라풍물굿을 어를 수 있었던 2016년 촛불광장
[탈춤과 나] 24. 김원호의 탈춤④
6. 놀이판 녹두골 애오개가 민중문화운동협의회로 확장 전개되면서, 나는 전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아직도 묘한 일이었다. 지역으로 내려가 지역활동을 강화하자고 해서 나는 당시 필봉굿을 통한 연고지인 전주로 왔는데, 지금도 어떻게 내려왔는지(선배들이 내려보낸 것 같은데), 일 끝나고도 오랫동안 왜 소환되지 않았는지를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결국 나는 30
2021.10.21 07:43:13
풍물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다
[탈춤과 나] 24. 김원호의 탈춤③
5. 애오개 81년에 복학하고 나서, 후배들이 잘 하고 있는 홍탈에는 가끔식 쇠나 치고, 마당극 반주 정도로 놀면서, 맑시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소개로 구로공단 옆에 있는 낙골에서 하는 야학에 교감(책임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은 난곡이라는 이름으로 번듯한 도시 면모이지만, 당시에는 가파른 산중턱 꼬방동네였고, 꼭대기에 있는 야학교실에는
2021.10.18 08:10:48
탈춤은 당대 감수성 한복판에서, 어떻게 영역을 열어젖혔을까?
[탈춤과 나] 24. 김원호의 탈춤②
3. 필봉굿 임실 필봉굿은 내게는 커다란 인연이었다. 78년에 전북대 탈춤반인 <한마당>이 갓 결성되었고, 그들이 전주대사습놀이에 쓸만한 굿이 나왔다고 연탈(대학탈춤반연합?)로 통해 연락을 주었다. 79년에 홍탈이 창단공연을 농악을 하고나서 그 해 여름에, 전격적으로 필봉으로 전수를 갔다. 전북대 한마당, 홍탈, 서울대 연극반이 필봉굿을 처음
2021.10.14 07:09:26
성속일여(聖俗一如) 대동신명(大同神明)...이 울렁거리는 기운은?
[탈춤과 나] 24. 김원호의 탈춤①
1. 현대미술과 탈춤 유신 말기 나는 미술학도였다. 당시 학교의 풍인 현대미술을 하였다. 사물의 본질, 존재의 의미를 이리저리 지독하게 실험하고 탐구하는, 그런 전위적 삶이 좋았고, 몰두했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좌충우돌 개진시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낭만부터 진동하였고, 뒤샹과 마그리뜨 등이 기존 관념을 한 방에 전환시키는 미술적 사유에 감격
2021.10.10 11:34:02
공연에 집중하던 시절, 문화운동으로 승화하다
[탈춤과 나] 23. 마승락의 탈춤 ②끝
4-2) 여름 농활 문선대 공연을 연출하다 88년 여름 정읍 농활은 예년의 농활과 달리 탈춤반은 한 마을에서 농사일을 거드는 농활이 아니라 ‘부당수세 철폐 운동’을 위한 문화선전대로 농활에 참여했다. 당시 정읍 농민회에서는 수세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고, 수세 철폐를 위한 집회를 마을 곳곳에 열 계획을 하고 있었던 차였다. 집회에 앞서 문화공연을 하면 집회
마승락 건국대 탈춤반 86학번
2021.10.07 07:58:33
딴따라의 길을 가게 만든 탈춤
[탈춤과 나] 23. 마승락의 탈춤 ①
1) 탈춤반 가입 내가 대학을 들어간 해는 1986년이다. 80년 광주의 아픔이 지난 지 몇 해 되지 않았기에 5월이 다가오면 그즈음 모든 대학이 그렇듯, 내가 다니던 건국대에서도 게시판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지나는 곳곳에 80년 광주의 학살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대자보가 빼곡하게 넘쳐 붙어있던 시대이다. 나는 그때만 해도 아직 의식화(?)되지 않은 평범한
2021.10.04 08:5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