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05시 04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빼앗긴 들에 봄이 오듯 "덩쿵 덩덥 얼쑤!"
[탈춤과 나] 조현모의 탈춤 ②
5.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울린 사이로 1985년, 대학 4학년 졸업반이 되었을 때, 전두환 정권의 폭압은 더욱 거세어졌다. 학생들의 반독재 민주화 시위를 사전에 봉쇄하고, 전국연합조직을 결성한 대학생 조직이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등 사회진보운동 조직과 연대하는 것을 차단할 목적으로 전국학생총연합(약칭 전학련)과 산하의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
조현모 고려대 농악대 82학번
2021.12.13 07:05:07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탈춤과나] 조현모의 탈춤 ①
1.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1982년, 부산 촌놈이 고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낯설고 두려운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다.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무엇보다 우선해서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김해 큰집을 종종 갔었다. 명절 고향 방문이거나 친척 결혼식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공식적인 의례가 끝나면 어른들은 횃
2021.12.09 16:06:53
잊을 수 없는, 그리하여 그리운 이들
[탈춤과 나] 심규호의 탈춤 3
이 글은 11월 25일자 심규호의 '탈춤과 나' 두 번째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탈춤과 나’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을 듯하다. 하나는 말 그대로 탈춤과 나의 만남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탈춤이 매개가 되어 내가 맺은 사람들과의 인연에 관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 바로 사람이다. 탈춤이 매개가 되어 만난 이들이나 탈춤 자체도 사실은
심규호 한국외대 탈반 78학번
2021.12.04 09:23:37
그 가난하였던 시절의 짧은 이야기들
[탈춤과 나] 김장욱의 풍물
1. 78년 대학을 입학하여서 이런 저런 고민 아닌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교실에 선배들이 등장하여 써클 가입을 권하였다. 서울농대 두레 풍물패였다. 그 만나지 말아야 할 악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걸죽한 막걸리 사발이 쉼없이 돌아가고 역시나 그에 비례하여 오바이트를 해 대면서.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니 풍물이 뭔지도 전혀 몰랐다. 그냥 내가 좋아하였던 음악
김장욱 서울농대 두레풍물패 78학번, 시인
2021.11.29 07:29:38
탈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
[탈춤과 나] 심규호의 탈춤, 두번째 이야기
다음 글은 2021년 8월 2일자 <프레시안> 게재 <탈춤과 나> ⑩ 심규호의 탈춤에 이어지는 글이다. '강쟁이 다리쟁이'는 아이들 놀이다. 아이들끼리 편을 짜서 시냇물 아래, 위쪽에 포진한 다음 한 편은 다리를 만들고, 다른 한 편은 다리 위쪽에 둑을 만들어 시냇물을 저장한다. 그런 다음 둑을 터뜨려 아래쪽으로 한꺼번에 물을 흘려보
심규호 한국외대 가면극연구회 78학번
2021.11.25 07:36:17
'놀이패 한두레'에서 신명나게 놀다 3
[탈춤과 나] 마승락의 탈춤 ⑤
6. 93년 소리 없는 만가(挽歌) 92년 ‘우리 사는 이야기’ 공연을 마치고 한두레는 다시 북아현동 추계예대 앞 지하로 연습실을 이전했다. 목동에서 민족춤패 디딤에 이어, 극단 아리랑과 연습실을 같이 쓰다가 단독 연습실을 마련한 것이다. 92년 겨울, 우리는 아직 세간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 문제를 차기 공연
마승락 건국대 탈춤반 86학번, 놀이패 한두레 대표 역임
2021.11.22 08:15:04
'놀이패 한두레'에서 신명나게 놀다 2
[탈춤과 나] 마승락의 탈춤 ④
2. 87년 ‘어떤 생일날’과 88년 ‘우리 공장 이야기’ 내가 한두레 입단하기 전 공연이라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89년 ‘아버지의 행군, ’일터의 함성‘은 87년 ‘어떤 생일날’에 이어 88년 ‘우리 공장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고 한두레의 노동극 史에도 의미가 큰 만큼 짧게라도 소개할 가치가 있다. 87년 ‘어떤 생일날’은 그해 5월부터
2021.11.18 07:45:38
'놀이패 한두레'에서 신명나게 놀다 1
[탈춤과 나] 마승락의 탈춤 ③
앞의 글(<프레시안> 2021년 10월 4일, 7일 게재)이 탈춤을 처음 접하고 대학 탈춤패 활동을 한 86년부터 88년까지의 기억을 옮겼다면 이번 글에서는 탈춤패 출신들이 만든 ‘놀이패 한두레’에서 활동한 89년부터 93년까지의 경험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글로 ‘놀이패 한두레’의 공식적인 기록은 아님을 미리
2021.11.15 08:32:41
탈춤, 아직 할 일은 많다
[탈춤과 나] 이순익의 탈춤 2
4. 2014년은 동학농민봉기의 해로부터 두 갑자되는 해로 많은 단체에서 기념행사를 준비한단 소식이 들려왔다. 보은취회는 동학농민 봉기보다 일년 전에 보은 장송리에 전국에서 2만 여명이 소 몰고 솥단지 지고 쌀자루 메고 모여 석달을 동학 주문을 외우며 시대의 문제를 간구한 최초의 민회였다. 최소한 천도교의 내음을 묻혀야 안 되겠냐며 충북개발원의 김 양식
이순익 청주대 탈춤반 79학번, 시민활동가
2021.11.11 08:02:31
탈춤에서 진화한 시대의식을 담은 첫 마당극
[탈춤과 나] 이순익의 탈춤 1
대학 입학 초에 탈춤 반 가입은 나에게 많은 지침을 주었다. 탈춤의 이해로 전공과 해야 할 과제 등이 정해졌으며 인생최대의 스승님을 만났고, 역사적 순간을 만나게 해준 탈춤이었다. 1. 고루한 집안에서 태어난 난 타고난 음치에 박치였다. 어려서부터 독서에 깃들인 습관이 문자중독증에 걸리어 신문, 월간지, 문학지, 독서신문, 불교신문 등을 모두 읽어야
2021.11.08 09:4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