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극의 살아있는 전설 <칼노래 칼춤>을 공연 사진과 함께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 같아 공연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첫째 마당 :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공연 첫머리에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라는 동학교도의 주문이 울려 퍼지고, 지금은 가사만 전해지는 ‘시호 시호 이내 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년지 시호로다’라는 칼노래를 최태현 선생께서 새로이 작곡한 곡과 풍물 장단에 맞춰 동학교도의 수련과 봉기 과정을 형상화했다.
이때의 출연진은 경당 사범이었던 김재성 사범을 비롯해 부산의 춤꾼 이상운. 서영수(전 놀이패 일터 대표, 전 부산문화재단 본부장, 현 영덕문화재단 상임이사), 한두레의 전종출(현 광명문화재단 팀장), 부산 자갈치의 전병복 등 내로라하는 춤꾼들이 참여했다.
동학 농민 혁명의 폭발적인 확산을 오윤 선생의 판화 칼춤을 새긴 깃발에 새겨 깃발춤으로 형상화했다. 패퇴하여 퇴각한 후 다 찢어진 깃발을 들고 울부짖는 억수 역의 자갈치 전병복을 비롯하여 손재서, 이상운 등이 출연했다.
동학농민군과 관군과의 격렬한 전투와 승리의 기쁨, 다시 불붙은 전투와 패배, 최후의 격전까지를 외북춤으로 형상화했는데 이 장면을 보는 내내 객석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패퇴하여 퇴각하고 있음에도 우레와 같은 함성과 갈채를 받았던 장면이다.
이 북춤은 1994년 상반기 풍물굿패 살판의 정기공연 ‘바람을 타고 나는 새야’(연출: 남기성)에서 이미 선보여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던 장면이었다. 당시 풍물 반주를 ‘풍물굿패 살판’이 맡기도 하였지만, 이 춤에는 춤꾼으로도 출연하였다.
둘째 마당 : 우물가의 아낙네들
동학군 패퇴 후 동학의 수많은 이름 없는 장두들을 배출한 조그마한 마을에 관군이 들이닥쳐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며칠 후, 살아남은 여인들의 고난, 억척스러운 살림살이, 속 깊이 간직한 비원이 입심 좋은 아낙네들의 육담으로 풀어냈다. 이 마을에 한 남정네(동학군 억수)를 찾아 헤매는 거지 광대 순덕이가 들어온다.
셋째 마당 : 효수
첫째 거리 –거지 광대 1
동학군에 가담했다 정든 고향을 찾아 헤매는 떠돌이 광대패 장탈네 가족과 순덕이 상봉하여 걸쭉한 재담과 춤, 탈 연기가 펼쳐졌다. 이 거지 광대들은 앞서 우물가의 아낙네들과 달리 끝까지 탈을 쓰고 연기를 했는데, 이석금 선생이 만든 탈도 돋보였지만, 광대패들의 탈 연기가 일품이었다.
둘째 거리 -효수
전쟁에 참전했던 동학 장두들이 줄줄이 엮어져 나오고, 망나니의 칼에 목이 베인다. 동학군, 의병, 민주 열사 등이 효수되어 허공에 매달리고, 살아남은 유족의 ‘소리 없는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유족춤은 최태현 선생이 손수 연주하신 애절한 해금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대사 없이 몸짓과 춤사위로만 아주 긴 시간 이어졌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극단 아리랑의 조은영과 오은실을 비롯해 한두레의 김순희, 서지현, 극단 자갈치의 이미화, 소리타래 궁의 염귀공, 극단 현장의 김명화 등이 출연했다.
마승락 건국대 탈춤반 86, 전 놀이패 한두레 대표, 전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대표
다음 글은 프레시안의 연재물 '탈춤과 나'를 읽고 미국에 사는 독자가 12월 17일 투고한 글과, 이에 대해 12월 19일 답신을 보낸 채희완 소장의 글이다.편집자
채 희 완 선생님,
안녕하세요.
프레시안에서 엄청난 연재기사를 읽다가 가슴이 뭉클해서 선생님과 여러분들에게 안부라도 전하고 싶어서 이메일 드립니다.
우리 민족의 저력, 면면히 이어오는 동학의 힘을 보았습니다.저는 이런 예술분야에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미국에서 40여년 살다보니 이제 나이가 들어서 새것을 배우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5년전에 장구 강습을 몇달 받았고 지난 9월에는 인텨넷을보고 꽹과리를 공원에 나가서 혼자 두달 배웠습니다. 좁은 아파트에서 칠 수가 없는데 겨울이 되니 내년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하는 기사가 있어서 들어갔다가 엄청난 분들의 지난 세월 민족예술을 활용한 투쟁으로 이어간 기록을 보고 선생님께 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계속 기사를 읽겠습니다.
건강하시길 바라며,
김수복 올림
채희완 교수의 답글
김수복 님께
어제는 한국에 첫눈이 내리고, 폭설이었습니다. 오늘은 혹한이 드세어졌습니다. 온 지구촌이 어디라 없이 펜데믹 사태를 맞고 있는 이 때 안녕하신지요.
'탈춤과 나' 라는 제목의 연재가 시작된 지 지난 7월 1일 이후 5개월 반이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한때나마 탈춤이나 풍물, 마당극에 젊은 열정을 쏟은 그 시절. 그 기운을 불러와 작은 이야기마당을 차려본 것이지요. 30여명이 50회를 채웠습니다.
젊어 탈춤활동으로, 풍물꾼 노릇으로, 마당극으로, 나이들어 때 아니게 인생을 그르치게 된 사람이 아직 안 보여서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이 시기는 나를 찾아서, 나를 개척하기 위해서, 나의 앞날을 위해서 이기도 하였지만 적지 않게는 이웃을 위해, 지역을 위해, 사회를 위해, 나아가 겨레를 향해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이 연재가 예측한 분량의 반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조금만 풀린다면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해마지 않지만 아직은 주 2회 연재에도 허덕이는 형편에 있습니다. 원고 모으시 어려운 바로 이러한 때에, 코로나사태와 혹한의 시기에 멀리서 따스한 글이 왔습니다.
프레시안에 연재된 '탈춤과 나'를 읽고 이메일로 보내온 김수복 님의 ‘인사의 글’은 연재된 지 반년만의 첫 독자 투고입니다. 반갑고 고맙고 징하여 몸이 가만히 앉아 있지 않습니다.
"반갑고나 얼싸!"
난리통에 서로 목숨을 구하려고 천지 사방으로 헤어진 노부부가 천신만고 끝에 놀이판에서 만나 두 어깨를 부등켜 안고 부르짖는 불림입니다.
그러고선 할미가 영감을 밀쳐 눕혀놓고선 그 위를 "켕마쿵 켕켕" 장단에 경쾌한 디딤새로 밟고 지나갑니다. 황해도 지역 탈춤의 할미마당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이멜의 글 한통으로 할미마당 배역이 정해졌습니다. 김수복 님은 영감이고, '탈춤과 나' 연재 필자들은 모두 할미가 되었습니다.
비대면의 시절이 지나가고 얼굴 마주하고 몸과 몸들이 섞여 할미마당을 엮는 때가 어서 오기를!
2021. 12. 20. 모심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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