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인생의 마당극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를 만나다
놀이패 한두레와 극단 자갈치는 각별한 관계이다. 한두레를 만드신 채희완 선생께서 항도 부산에서 부산지역 탈패 출신들과 만든 극단이 자갈치이다 보니 우리 한두레와는 부모가 같은 친형제와 같다고 해야 할 듯싶다. 필자가 89년 한두레에 입단 이후 대전, 청주, 광주, 목포, 부산 등 방방곡곡을 공연 다니며, 민극협 딴따라들과 교류하고 친분도 두텁게 쌓았으나, 부산은 그 이상이었다. 거의 매해 1년에 서너 차례 이상 부산을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두레의 공연은 극단 자갈치에서 매해 초청했고, 우리는 기꺼이 한걸음에 달려가 즐겁게 공연했고, 뒤풀이도 거나하게 며칠씩 했다. 그러다 보니 자갈치 식구들은 언제 봐도 친형제처럼 반갑기 그지없었다.
1996년은 그 각별한 극단 자갈치의 창립 10주년 되는 해였다. 94년 칼노래 칼춤 공연에도 극단 자갈치 단원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96년은 극단 자갈치 10주년 기념공연을 놀이패 한두레와 연합공연을 하기로 했다. 마침 그 해가 원효성사께서 입적하신 지 1310년 되는 해라 5월에 경주 분황사에서 제1회 원효 문예 대제전을 채희완 선생께서 총연출하시기로 하여 원효 성사의 가르침을 현재화할 만한 공연을 만들어야 했다.
이 공연이 바로 내 인생의 마당극이 된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 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 성사께서 의상대사와 더불어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던 도중에 어느 토굴에선가 잠을 자다가 하도 목이 말라 물을 달게 마셨는데,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인 것을 알고 토하고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당나라로 가던 발걸음을 신라로 다시 돌려 스스로를 광대라고 부르며 성과 속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애가무행(無碍歌舞行)으로 대승 불교를 몸소 실천했다는 잘 알려진 일화가 모티브가 된 듯하다. 연출자 채희완 선생께서는 원효(元曉) 성사의 한자를 한글로 풀이하여 신새벽으로, 물 대신 교주(酒)님답게 술을 토하는 것으로, 스스로 광대가 되어 아무도 하지 않았던 무애가무행을 하셨으니(없는 길을 찾아 떠나셨으니) 작품 제목을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로 정하셨다. 5월 원효 문예 대제전에서의 공연이야 불교 관련 행사이고, 그쪽에서 후원받아 진행되는 것이니 행사에도 잘 어울리고 제목도 그럴듯했지만, 대학로에서 공연하려 하니, 관객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기획자인 나로서는 작품 제목이 영 마뜩잖았다. 연출자 채희완 선생께 넌지시 ‘작품 제목이 좀 긴 것 같습니다’라고 운을 띄어봤지만 요지부동이셨다. ‘칼노래 칼춤(劍訣)’이라고 제목을 주셨을 때도 ‘제목이 너무 셉니다’라고 반대 의견을 냈지만, 작품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제목이라시며 워낙에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채희완 선생을 설득하고 관객도 좋아할 만한 다른 제목이 떠오르지도 않았기에 그대로 갈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것처럼 이 작품의 제목도 그러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마당극이 될 ‘신새벽....’(우리끼리는 작품 제목을 줄여서 ‘신새벽’이라 불렀다)은 시작되었다.
5월 경주에서의 공연을 치르고 5개월 후 서울 대학로에 공연장을 어렵사리 대관하였다. 지금은 사라진 공연장이지만 극장 이름도 ‘두레’였다. (당시 대학로 민간 소극장치고는 마당극 하기에 좋고, 쾌적한 극장이었지만 대관료도 너무 비쌌고, 극장 운영에 미숙함이 많아 오래가지 않아 폐관한 극장이다.)
이 공연의 주역 또한 칼노래 칼춤과 같다. 채희완 선생께서 총연출이었고, 최태현 선생이 작곡, 이석금 선생이 탈 제작을 맡아주셨다.
노래는 칼노래 칼춤에 이어 김영남과 안계섭, 정연도 형님의 목소리 외에 당시는 어린이였지만 지금은 숙녀가 된 정세연, 소연 자매(정연도 진회숙 선배님의 따님)가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보탰으며, 민중가수 김애영 누님이 참여했다.
제 1마당 신새벽 무애가무행(無碍歌舞行)
제 2마당 선재를 찾아서
제 3마당 나는 없다
제 4마당 잠긴 세상 속으로
제 5마당 없는 길 떠나다
가정파탄으로 절에 맡겨진 어린 선재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스님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다.
절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허드렛일하는 불목하니 황 처사, 밥을 해주고 있는 반벙어리 공양주, 고시 공부하는 고시생, 절에 숨어있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등)과 절집에 찾아드는 사람 등의 일상사를 쫓아가며 나름의 시선으로 세상과 부처를 바라본다. 신체 불구의 조건으로 스님이 될 수 없었던 불목한과 반벙어리 공양주 보살의 맑고 깨끗한 삶 속에서 선재는 많은 그리움을 삭여가던 선재가 소풍 가기 며칠 전부터 들떠 있다가는 자기가 사는 절로 소풍을 온다는 사실을 알고 사라진다. 선재를 찾아 나선 절 집사람과 소를 잃고 소를 찾아 나선 아랫마을의 소주인. 드디어 소풍날 절에 소풍하러 온 아이들의 소풍 놀이로 보물찾기, 숨바꼭질이 진행되고 선재의 방에서 조롱박과 일기장을 발견한 아이들은 선재가 이 절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신도회장을 중심으로 미륵 부처님 불상 점안식이 준비되고 있는데 점안할 큰스님이 안 계신다. 아이에 의해 소가 폭포에 있음이 발견되어 소는 찾아지고 선재는 불상 꼭대기에 올라감이 발견된다. 점안하려던 선재가 떨어진다. 며칠 후 불목한 황 처사가 퇴원하여 붕대를 감은 선재를 자전거에 태우고 절로 돌아오고, 그 뒤를 공양주 보살이 뒤따라온다.
절 집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하고 외로이 남은 선재와 반벙어리 공양주 보살, 불목한은 새벽 예불을 드리며 또다시 하루를 맞는다.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선재와 스님의 앞에 산사로 가는 먼 길만이 펼쳐져 있다.
이 작품의 공연 영상을 볼 수 있어 링크한다.
https://tv.naver.com/v/18047957
마승락 건국대 탈춤반 86, 전 놀이패 한두레 대표, 전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대표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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