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칼노래 칼춤에서도 채희완 선생의 연출과 최태현 선생의 음악, 이석금 선생의 탈이 조화 그리고 일품 탈 연기로 마당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경험이 있기에, 언뜻 보면 그다지 새로운 것도 없다 할 수도 있었다. 이렇다고 하게 내세울 것도 없고, 관객도 그리 많지 않았고, 평단에서는 무어라 평하지도 못하고 침묵하였는데, 필자가 ‘내 인생의 마당극’이라고 하는 것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공연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있기도 하거니와 공연에 쓰였던 노래를 지금도 틈만 나면 흥얼거리며 그 여운을 되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신새벽은 ‘섬세하고 깊이 있는 새로운 마당극’이라는 카피처럼 기존의 마당극과 달리 잔잔하고 섬세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다. 공연 시간 내내 출렁이거나 들썩이지도 않아 그 흔했던 추임새를 넣기도 주저했으며,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도 객석의 박수 소리마저 여운이 흩어질라 조심스레 얌전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깨끗해지고, 선(善)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마음을 정화하는 느낌이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님을 10여 년이 지난 뒤에 만난 몇몇 딴따라들과 동감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확인했다.
왜 이토록 진한 여운을 남겼을까?
우선 탈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석금 선생께서 이 공연을 위해 만든 탈은 앞서 ‘칼노래 칼춤’에서의 광대탈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해맑고 정감 가는 탈이었다. 과장스럽지도 않고 심하게 뒤틀리지도 않았으며, 제각각 다른 매력과 이력을 보이는 탈이었다. 이 탈을 쓰고 탈 연기를 할 때는 고개를 조금만 비틀거나 꺾고 흔들어도 마치 사람의 표정이 변화하는 느낌을 주는 탈이 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필자가 이 공연을 ‘내 인생의 마당극’이라 하는 이유는 앞서 서술한 요소들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신새벽의 음악은 칼노래 칼춤에서와 같이 미리 있었던 노랫말(칼노래 등)에 최태현 선생께서 곡을 쓰시기도 했지만 ‘아침 뱃노래’와 같이 최태현 선생께서 먼저 곡을 쓰시면 그 곡에 채희완 선생이 작사하신 경우가 많았다.
필자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틈만 나면 읊조리는 음악은 담백한 목소리의 안계섭과 김애영 누님이 구수하게 불러준 ‘없는 길 떠난다’와 ‘산다는 거’라는 두 곡이다. 노래 없이 아코디언, 해금 연주로도 음악만 들을 수도 있었는데, 듣다 보면 중독성이 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잔잔하게 스며들어 듣기도 좋지만 따라 부르기도 좋은 곡이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5월에 돌아가신 모친의 빈소에서 이 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 보내드렸다. 딴따라로 살면서 30여 년간 걱정만 끼쳐드렸기에 그만큼 회한도 많았고 죄송한 마음이 컸기에 속죄의 마음을 담아 모친의 영정 앞에서 춤과 노래로 곡소리를 대신했다.
노래 ‘산다는 거’의 가사와 음계를 비교해 적으면 다음과 같다.
산다는 게 무에더냐 참 괴롭구나 (솔라 솔 도 레미 솔 ‘라도라도’)
사람 살다 죽는게지 무 에 괴로운고 (미 솔 라도라도’ 레 솔 ‘라도라도’)
산 너머 고개너머 정든 고향 땅 있다네 (솔 라 도레미솔 라 도라 솔 레도레)
죽어 죽어 괴롭구나 살 아 괴로워라 (미 솔 ‘라도라도’ 레 솔 라도라도’)
위에서와 같이 반복되는 ‘라도라도’ 음에 ‘괴롭구나’, ‘죽는게지’ ‘괴로운고’, ‘괴롭구나’, ‘괴로워라’ 같이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를 반복하고 있다.
필자는 이 곡이 공연 음악으로서의 한계(?)가 늘 안타까웠다. 이 좋은 곡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이 흥얼거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곡도 듣고 바로 따라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곡이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이 곡이 더 많은 사람에게 불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사(제목도 바꿀 수 있겠다)를 바꿔서(노래 가사 바꾸기- 일명 ‘노가바’라 했다.) 불려지길 희망한다. 원곡 ‘산다는 거’에서는 ‘라도라도’를 ‘괴롭다’에서 변형 반복한 것이고, 그 ‘괴롭다’라는 것을 쌓기 위해 다른 가사와 음이 필요했다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괴롭다’ 대신 더 많은 사람이 흥얼거릴 수 있도록 그 어떤 모티브(?)를 중심으로 ‘라도라도'음에 새로운 가사(예 :좋을씨고, 너랑 나랑, 그랬구나, 등)의 반복 또는 어미의 유사 변형 댓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노래로 거듭 태어나길 바래본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듣는 노래가 아닌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의 가사를 공모한다. 상금 100만 원! 선정 기준? 그것은 앞서 서술한 것이 기준일 테고, 선정은 필자가 공모하고 상금을 지급할 터이니 필자가 하는 것으로!
공고기한은 선정될 때까지! 이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 북 등에서 ’라도라도 버킷챌린지‘로 널리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좋은 가사가 생각나시는 분이 있다면 필자에게 보내주시면 좋겠다.
마승락 건국대 탈춤반 86, 전 놀이패 한두레 대표, 전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대표
첨언
1차 원고를 보내고 채희완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새로 알게 된 이야기와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추가한다.
1. ’라도라도 버킷챌린지‘를 제안하면서 작곡자인 최태현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최태현 선생님이 근래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교주님조차 대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안타까운 근황을 전해주셨다. 작곡자께는 확답받지 못했지만, 작사가께서 ’노가바‘는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거는 아니지 않는가? 하며 묵인(?)해주시는 걸로 필자의 제안은 유효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2. 신새벽 공연 준비 당시 작사 작곡의 후일담. ‘없는 길 떠난다’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작곡이 되었다고 한다. 노랫말(가사)도 ‘산다는 거’에 비해서는 쉽게 창작하신 듯하다. 곡을 만드신 후나 가사를 붙인 후에도 두 분 다 별다른 불만이 없으셨다고 한다. 필자 생각에는 ‘나무 나무’가 가장 산고(?)를 겪은 가사가 아닐까 싶다. 다른 가사는 시적이면서도 아련한데 ‘나무 나무’는 다소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 자체가 원효 성사의 가르침을 현재화하는 공연이기에 그에 어울리는 가사를 가까스로 찾으신 것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읊조릴 때는 ‘나무 나무’ 대신에 ‘나는 나는’ 이라 읊조린다) 하지만 ‘산다는 거’는 곡을 만드신 최태현 선생도 가사를 만드신 채희완 선생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시다가 공연이 임박하여 도무지 더는 미룰 수 없어 완성은 하였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두 분 다 개운치 않으셨다고 한다. 이제서야 교주님께 들었던 ‘산다는 거’의 탄생 스토리가 놀랍다. 원효 스님의 벗 중에 사복(뱀복)이라는 벗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데, 원효성사께서 뭔가 장황(?)한 말씀을 하셨나 보다. 그 말을 듣던 사복이 원효 성사의 말을 끊고는 ‘무슨 말이 그리 필요한가? 살고 죽는 게 매한가지 아니냐?’라고 하고는 모친의 관 옆에 드러누웠더라는 일화를 최태현 선생께 전하며 곡을 의뢰하셨다고 한다. 그 일화를 듣고 이 곡을 작곡하셨다고? 새삼 최태현 선생님께 감탄하게 되었다. 이 글을 빌어 선생의 쾌유를 빈다.
3. ‘칼노래 칼춤’과 ‘신새벽’ 공연의 숨은 주역. 필자가 놀이패 한두레에서 존경해마지 않는 세 분이 있다. 물론 채희완 선생이 그 으뜸이지만, 2대 대표를 하셨고 지금까지 한두레를 굳건히 지키며 대소사를 다 챙겨주시는 소리꾼이자 춤꾼 정연도 선배님, 그리고 임명구 선배님이시다.
필자가 딴따라에 입문하기 전이라 못 봤지만, 전 문화부 장관 김명곤 선생님과 함께 ‘장사의 꿈’에 출연했다고 전해 들은 임명구 선배님은 한두레의 각종 공연 뒤에서 아낌없는 도움을 주셨다. 필자가 대표를 하던 시기에는 해마다 송구영신 삼아 연습실에서 송년회 또는 신년회를 했는데. 한두레를 거쳐 간 선배님들 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딴따라들도 함께 저녁부터 새벽까지 술자리를 이어갔다. 딴따라들의 뒤풀이라 당연히 음주(飮酒)만이 아니라 가무(歌舞)도 끊이지 않았는데, 그 가무가 거의 공연이었다. 그중에도 기골 장대한 임명구 선배님의 강령탈춤을 잊을 수 없다. 그 큰 키에 훌쩍 뛰어올라 외사위로 팔을 한 번 휘저으면 보는 이들의 눈이 번쩍 떠지고 절로 입이 쫙 벌어졌다. 임명구 선배님은 외모만 장대한 것이 아니라 인품 또한 넉넉하고 따스하고, 인자하셨다. 필자가 한두레 생활을 잠시 접은 적이 있었는데, 선배님이 한걸음에 달려와 필자를 위로하고 힘을 주셨다. 후배들과 술자리가 있으면 박정곤 형과 정연도 선배님, 임명구 선배님이 서로 계산하겠다고 경쟁(?)하셨는데, 그때마다 임명구 선배님은 ‘내 즐거움을 뺏지 말라’시며 물리치곤 하셨다.
칼노래 칼춤에 이어 신새벽 공연에도 총기획은 임명구 선배님이셨다. 그 큰 공연을 준비하기에는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대표였던 필자로서는 감당 안 되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공연예산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웠는데, 임명구 선배님이 나서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신부터 솔선수범해서 거금을 후원하시면서 여러 선배님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만나 후원금과 협찬금을 마련해주셨다. 또한 공연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을 위트 있는 유머와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살뜰하게 챙겨주셨다. 이 글을 빌어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