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4일 2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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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를 끝내며 (2)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42>
모든 것은 변한다. 진화하기도 하고 퇴화하기도 한다. 정권이 바뀌면 이 변화의 강도가 더 세게 느껴진다.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내 개인 신상에도 폭풍이 몰아쳐 위원장으로부터 해임을 당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주 약과다. 사회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낭자하다. 광
김정헌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대표
답사기를 끝내며(1)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41>
여기 문래동에 <예마네>를 만든 지가 일 년 반을 넘었다. 2008년 12월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임당하고 그 다음해 2월 여기 문래동 철공단지에 사무실을 만들어 '마을'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지 그렇게 시간이 흐른 것이다. 사무실을 개소하자마자 제
나와 마을과의 인연(4-3)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40> 제천 대전분교에서의 활동계획
전회에서도 밝혔듯이 <새 만화책>의 김대중이 이리로 눌러 앉았다. 우리로서는 정말 잘된 일이다. 그들에게 사택 한 동과 교실 3 칸을 내 놓았다. <새 만화책>이 출판사라 그들의 쌓여가는 재고(?) 만화책들과 많은 자료들을 쌓아 놓기엔 여기 폐교의 빈 교실이
나와 마을과의 인연(4-2)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제천 대전분교에서의 활동계획
우리들의 야심찬(?) 계획 '마을극장, 어느 날'은 날이 궂어서인지 마을주민들이 많이 참석은 못했다. 한 4~5십 명 왔을까. 반대로 그 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예상보다 많이 왔다. 선배인 이부영 전 민주당의장님, 화가 임옥상 부부, 만화가 이은홍 신혜원 부부,
나와 마을의 인연 (4-1)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제천 수산면 대전리에 분교를 얻다
또 덜컥 일을 저질렀다. 6월 초에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에 있는 폐교된 '대전 분교'를 임대한 것이다. 여기 저기 폐교를 알아보다 그 중에 서울에서 가깝고 임대료가 저렴(그래도 연 6백 여 만원 한다)하여 들어가서 무얼 할지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하고 한두 번
나와 마을과의 인연(3-2)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나의 화실이 있는 가평의 두밀리
4, 5년 전에는 이 외통마을을 관통하는 길이 뚫린 다는 소문이 들렸다. 길에 빨간 팻말이 박히기 시작했다. 이것도 여기저기 알아봤다. 이미 주민 공청회까지 마쳤단다. 용국이네를 비롯한 원 주민들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들이다. 서울로 빠지는 길이 하나 더 생기면
나와 마을과의 인연(3-1)
나는 1999년도에 서울에 있던 화실을 정리하고 가평에 있는 골짜기 마을 두밀리로 화실을 옮겼다. 비록 집을 옮기지는 못했지만 농촌 마을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두밀리는 경춘가도 46번 국도에서 가평읍 가기 5Km 전에 왼쪽으로 꺾여 들어가
나와 마을과의 인연 2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35>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
농촌과 마을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계기는 100년 전에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이었다. 내가 공주대에 있으면서 공주 지역사회와 인연을 맺은 것도 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이 있다. 공주에는 이 동학농민혁명의 유명한 유적지인 '우금티
나와 마을과의 인연 1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34>
답사의 끝에 내린 결론 작년, 그러니까 2009년도 11월부터 다닌 답사가 거의 동이 낫다. 프레시안에 내 걸린 답사기의 제목이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을 가다'였는데 다니다 보니 꼭히 예술가가 사는 마을이 아닌 경우도 있었고 중간에 <예마네> 사
충남교육연구소와 조성희 사무국장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33> 공주 우성면 봉현리
이름이 말하듯이 충남교육연구소는 교육연구소다. 그러나 이 연구소가 봉현리 마을의 폐교에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 이제는 이 마을의 문화거점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마을에 있던 학교가 폐교될 때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학생 수가 급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