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를 얻어 무언가 마을 관련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답사 중에 평창의 '감자꽃 스튜디오'를 보고 생각이 미치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8월 중에 조기 정년퇴임을 예정해 놓고 있어 공주대를 정리하면 주력할 만한 일과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우선 이 제천 대전분교가 임대한다는 공고가 났을 때 제천교육청에 사업계획을 내야 입찰 자격이 생긴다고 하여 사업내용을 '마을이야기학교'로 정하고 대충 사업계획을 짰다. 대충 짰다고 했지만 사실은 마을 답사 중에 이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작정은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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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전리는 한 3~4십 가구가 사는 제천시의 동남쪽 끝(오히려 단양하고 딱 붙어 있어 주민들은 주로 단양이 생활권이다)에 놓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주로 옥수수, 인삼, 더덕, 둥굴레 등 밭농사와 벼농사를 같이하고 있다. 산간 협곡인데 의외로 이 곳은 제법 너른 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름이 대전광역시와 같은 대전(大田)리이다.
이곳도 한때 인구가 많아 분교가 아니라 초등학교였을 때 학생수가 5~6백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3~4백 가구가 있었던 큰 마을이다.
학교는 일제시대부터 간이소학교로 시작했다고 한다. 표시가 지금도 교문 옆에 붙어 있는 돌기둥에 남아 있다는데 그 흔적을 지우고 다시 대전공립학교로 음각해 놓았다.
또 교문 옆에는 훌륭했던 교장선생님의 공로비(교장 정기은 교육 공로비로 음각돼 있다)와 아마 이 학교를 지을 때 땅을 많이 희사한 마을 주민(후원회장 이종구씨 교육공로비다)의 비석도 같이 서있다.
학교는 10년 이상 폐교 된 채로 남아 있었다는데 두 개의 교사동(한 동에 교실 4개씩)과 사택 두 채, 숙직실, 창고 건물 등으로 구성 돼 있고 운동장은 꽤나 널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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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간혹 임대도 되었다지만 거의 빈 상태로 10년 이상 폐교된 학교 치고는 교실 내부는 이외로 깨끗했다. 인근에 사는 만화가 이은홍, 신혜원 부부가 와서 보고 교실이 깨끗해 놀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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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마네 식구들(다해봐야 박명학 전처장, 사무국장 김송희 해서 3명이다)은 같이 또는 따로 시간이 날 때 마다 드나들었다. 우선 방치돼 있는 사택 두 채부터 손을 보기 시작했다. 화장실과 주방시설, 난방을 새로 설치하고 도배를 해서 사람이 숙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을 하면서 차차 옆집부터 인사를 하고 친해 나갔다. 마을 집들이 한군데 모여 있는 게 아니라 학교 옆에 집들이 좀 밀집해 있고 250m 떨어진 문화생활관(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집들이 나열해 있는 좀 색다른 마을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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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부터 우썩 우썩 자라기 시작한 잡초들은 운동장은 물론 사택 앞 빈터를 남김없이 차지하고 있었다. 운동장에 들어서면 잡초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듯싶게 자라기 경쟁을 하고 있었다.
가평 화실에서 쓰던 예초기를 들고 오고 오는 손님 가리지 않고 낫을 들게해 풀베기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주로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 풀의 왕성함을 감당하리오.
그래도 시간만 나면 달라붙어 조금씩 깎아 나갔다. 안됐는지 지나다니던 마을 주민들이 '약을 치라' 고도 했고 학교 공지를 서울사람들이 풀을 베고 정리를 하니까 '고맙다'고 인사도 건네 왔다. 풀은 다 제어 못했으나 이웃 주민들의 환심은 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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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베고 학교교실의 해묵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우리 <예마네>는 마을 행사를 기획했다.
8월 중순 쯤 해서 제천에서는 매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연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 집들이 겸 일종의 마을 영화제를 열기로 한 것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부속행사로 마을 주민들을 위한 '마을영화제'였다. 그리고 만나는 마을주민들마다 물어보는 '여길 들어와서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자리로서도 이런 행사가 필요했다.
행사 날짜를 잡아 놓고 보니 모든 게 바빠졌다. 우선 100 여 명 되는 마을 주민들을 초대하는 자리라 음식 준비가 문제였다. 학교 앞에 있는 마을 부녀회장 집을 찾아가 부탁하니 부녀회장은 마을회의에서 결정나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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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옆에 사는 이장(몇 집 건너 살지만 아침 일찍부터 자기 논밭에 나가 만나기가 쉽지 않다)을 만나서 8월 14일날(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8월 12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마을 영화제를 열고 마을 주민들을 모시고 음식도 같이 나누고 영화도 상영한다고 협조를 부탁했다.
점점 할 일이 많아지고 바빠졌다. 작은 마을영화제지만 상영에 필요한 야외용 스크린(내가 대표로 있던 '문화연대'가 가지고 있는 스크린) 섭외, 상영작을 제천영화제에 얘기해서 빌리기, 포스터 및 알림장 만들기 등의 일과 여전히 남아 있는 운동장의 풀깎기, 교실 청소, 주민들 방문의 일을 두서없이 해 치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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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까지 숨이 턱에 닿도록 겨우 준비를 마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날씨였다. 그 전날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그 날 오전까지 내렸다 그쳤다 한다. 운동장이 질퍽질퍽하여 도저히 야외 영화 상영은 어려워 보였다.
저녁을 교실에서 먹고 야외에서 커다란 에어 스크린을 펼쳐 놓고 마을 주민들과 즐기려던 애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처음으로 주민들과의 공식적인 대면에서 폼을 잡으려다 폼이 구겨져 버렸다.
비록 폼은 좀 구겨졌지만 간혹 가다 뿌리는 빗줄기 속에서도 마을 영화제와 주민들과의 상면은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마을 영화제와 앞으로의 제천 대전분교에서의 활동계획을 다음 회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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