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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을과의 인연(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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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을과의 인연(4-2)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 제천 대전분교에서의 활동계획

우리들의 야심찬(?) 계획 '마을극장, 어느 날'은 날이 궂어서인지 마을주민들이 많이 참석은 못했다. 한 4~5십 명 왔을까. 반대로 그 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예상보다 많이 왔다. 선배인 이부영 전 민주당의장님, 화가 임옥상 부부, 만화가 이은홍 신혜원 부부, 같은 제천에 사는 판화가 이철수 부부, 제천간디학교 양희창교장과 교사, 직원들, 새만화책 출판사의 만화가 김대중, 미술가 양철모, 전각예술을 하는 김성숙씨와 일산에서 영상문화활동을 하는 민병모, 영화상영을 위해 온 송수연과 문화연대(시민자치문화센터) 식구들, 예초기를 가져와 우리 운동장을 깨끗이 깎아준 봉화 비나리 마을의 송성일과 친구들, 외에도 이래저래 들려 같이 즐겨준 사람들이 주민들보다 더 많았다.

그 날 교실에서 보여준 영화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후원해 주었다. 영화는 아무래도 아저씨들보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다만 영화를 선정함에 있어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아무래도 외국영화보다는 한국영화, 자막이 없는 영화가 어르신들 보기에는 편할 것이다. 마을에는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계시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어쨌든 마을 영화제는 급하게 준비하는 바람에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지만 무사히 끝냈다. 마을 이장과 부녀회장, 노인회장 만이 아니라 대전교회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주민들이 잘 협조해준 덕분이다. 특히 돼지를 잡아 음식을 준비해준 이 마을 부녀회 여러분들의 도움이 컸다.

이 마을 영화제를 준비하는 덕분에 운동장도 다듬어지고 교실도 한결 깨끗해졌다. 그 동안 마을 주민들과 인사하느라고 안면을 그럭저럭 트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자연히 이 마을 사람들도 부분적으로 나와 우리 식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알게 됐고 내가 전혀 바랐던 바가 아니었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었다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더 큰 수확은 이 학교에 뒷동(교실 4칸)에 그 날 왔던 만화가 김대중이 아예 자기 출판사(직원이 김대중과 또 한 명)를 이리로 옮겼으면 하는 의사를 밝혀 온 점이다. 우리는 물론 대 환영이다. 우리<예마네>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상주를 하겠다는 거였다.
이 외에도 한글을 배우겠다는 할머니들도 있다는 걸 알았고 그런 분들을 모아 간디학교의 도움을 받아 가르치기로 약속도 받았다.

애초에 이 학교에 들어오면서 세웠던 계획-마을이야기학교는 이 행사를 거치면서 무언가 윤곽이 좀 더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가 만들려는 '마을이야기학교'는 무엇인가?

나는 마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초기부터 마을의 가치와 자원을 '마을조사'를 통해 알아야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마을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알게 됨으로서 마을의 계획을 세우고 마을의 자치와 자립의 기반을 닦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5, 6년 전 유한킴벌리의 문국현사장이 제천과 진안의 두 백운면(묘하게도 제천시와 진안군에는 각각 백운면이 있다)에 벌인 마을조사 사업을 쫒아 다닌 것이다. 주로 나는 진안 백운면의 마을조사사업을 쫒아 다니고 자문 역할을 자진해서 맡기도 했지만 마을조사사업이 내가 생각했던 대로 진행되는 것 같진 않았다.

처음에 마을조사 사업이 정해진 매뉴얼이 없기도 했지만 조사단원들이 '일자리 창출'로 들어 온 친구들이 많아 전문적이지 못한 점도 조사사업에 걸림돌이 되었다.

제천 백운면 마을조사사업은 1년 만에 끝났지만 진안군 백운면의 마을조사는 4년간 계속됨으로서 조사단원들의 전문성도 늘어났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마을에 관한 계획이 이어졌다.

비교적 젊은 마을조사단원들이 마을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과 마을의 유래, 역사, 풍속, 유물유적, 인물, 생애사, 지리, 마을 숲, 길, 하천, 동식물 등의 자원에 대한 모든 것을 발굴하고 기록하였다.

이들에게서 듣고 채집한 것을 1년마다 보고서를 만들었지만 그때 그때 여러 가지형태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들 주민들에게서 나온 옛날 사진들을 마을 주민 축제 때 모아 사진전시를 하였는데 주민들만이 아니고 출향인사들에게도 인기가 짱이었다.

이외에도 마을주민들의 소식을 전하고 소통시키는 마을신문 <월간백운>을 정기적으로 발행하였고 <구름땅 마실-백운, 숨은 이야기 찾는 지도>도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을조사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이들 젊은 조사 단원들이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소위 구슬 채록이었다.

생전에 자기의 생애를 처음으로 젊은이에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때 그 감동은 어땠을까? 자기가 살아 왔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사실 재원만 있다면 여기 대전분교에서도 이런 마을조사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자연히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 외에도 마을의 가치를 다 알 수 있게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대전 분교에서는 <마을 이야기학교>의 모든 걸 형편 되는대로 천천히 하기로 했다. 일단 임대 기간이 3년이라 그 다음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판이라 그 안에 모든 걸 해결한다는 것도 무리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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