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메가특구특별법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제안에 양대노총 모두 응했고, 지난 22일 실무협의체가 가동됐다. 민주노총은 상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복귀하는 안건도 오는 10월 대의원대회 표결에 부칠 계획이다.
양대노총의 대화 참여 선언이 온전한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메가특구 사회적 대화의 주요 안건으로 제시한 연구개발직·관리직 주52시간제 적용 제외,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에 대한 노사 간 입장 차가 벌써부터 뚜렷하다.
역사적 교훈도 비슷하다. 사회적 대화는 주로 위기 때 노동법제를 재편할 해법으로 시도됐다. 그러나 정부가 설정한 노동권 후퇴 의제에 민주노총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 반쪽 합의로 끝나는 일이 반복됐다. 과거 시도를 통해 그 과정을 살폈다. 이번 사회적 대화가 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짚었다.
정리해고 도입, 파견 허용…노동계에 '트라우마' 된 IMF 사회적 대화
한국에서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의 역사는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시작됐다.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노동시장 유연화가 포함된 상황에서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요청에 따라 다음해 1월 양대노총과 재계가 참여한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사회적 대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 노사관계의 틀을 형성한 장면 중 하나로 평가된다. 가장 큰 변화로 남은 것은 유예 중이던 정리해고제의 즉시 시행과 파견근로의 합법화였다. 모두 재계가 원하던 사안이었다.
여파는 즉각적이면서도 길었다. 1998년 여름 현대자동차와 만도기계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10여년 뒤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도 정리해고제를 활용한 것이었다. 파견근로 합법화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확산의 제도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노동계도 얻은 것이 없진 않았다. 대표적으로 교원의 노조 결성과 공무원의 직장협의회 설치가 허용됐다. 이후 2006년 6급 이하 공무원의 노조 결성도 허용됐다. 다만 현재까지도 쟁의권은 둘 모두에게 허용되지 않아 실질적인 임금단체협상은 불가능하다.
손익 계산 결과 IMF 시기 사회적 대화는 노동계엔 '트라우마'에 가까운 경험으로 남았다. 당시 작성된 잠정합의문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승인을 얻지 못했다. 노동부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제인총연합회만 서명했고,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이 진행됐다.
비정규직 보호 방안 이견만 확인한 노무현 정부 시기 사회적 대화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온전한 사회적 대화 테이블 구성을 위한 작업이 진행됐으나, 민주노총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참여로 이어지진 않았다.
특히 비정규직 보호법제에 대한 의견 대립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민주노총은 상시지속 일자리 기간제 사용 금지,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등을 주장했다. 정부는 '기간제 2년 사용 허용 및 이후 무기계약직 전환'을 담은 기간제법을 밀어붙이려 했다. 민주노총은 2년마다 기간제 고용대란을 부를 것이라며 이에 맞섰다.
정부가 낸 기간제법의 국회 통과가 유예되는 동안에는 몇 차례 물밑 접촉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사회적 대화는 2006년 9월 양대노총 중 민주노총이 불참한 상황에서 '노사정 대타협' 합의문이 발표되며 다시 한 번 불완전한 상태에서 마무리됐다.
당시 합의문은 노사관계에 집중됐다. △기업 단위 복수노조 및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 3년 유예 △직권중재 제도를 폐지하되 필수공공사업장에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도입하고 대체근로 허용 △부당해고 형사처벌 조항 삭제 및 금전보상 제도 신설 등이었다.
결국 사회적 대화를 통한 비정규직 보호 방안 마련은 이뤄지지 못한 것이었다. 두 달 뒤인 2006년 11월 여당이 다수였던 국회에서 기간제법이 통과됐다.
코로나19 위기에 다시 기회 찾아왔지만
양대노총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성사하려는 노력은 국민의힘 계열 정부의 연이은 집권과 함께 한동안 멈춰 섰다. 다시 시동을 건 것은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였다. ‘노동존중사회’가 국정 방향으로 제시된 때였다.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재편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같은해 12월 민주노총에서도 사회적 교섭을 공약한 김명환 위원장이 당선됐다. 한달여 만인 2018년 1월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결정했다. 직후 김 위원장이 실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석하며 사회적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듯 했다.
그러나 그해 5월 다수당이었던 여당 주도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다시 분위기가 식었다. 식대, 교통비 등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해 기업의 임금 인상 부담을 더는 내용이었다. 이는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이탈로도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노총은 다시 사회적 대화에 복귀했으나, 민주노총은 노정협의 복귀만 선언하고 노사정 대화 테이블엔 돌아오지 않았다. 2018년 11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도 민주노총 없이 출범했다.
위기와 함께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20년 4월 민주노총이 먼저 코로나19 원포인트 노사정비상협의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5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출범했고, 한달여 간의 논의를 거쳐 잠정합의안이 마련됐다.
김 위원장은 직을 걸고 잠정합의안의 내부 승인을 추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반대파는 '해고금지, 전국민고용보험제 등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에 대한 조항이 추상적인 반면 휴업수당 감액, 근로시간 단축·휴업 적극 협력 등 불리한 조항이 포함됐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노동개악'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한 것이었다.
'무한루프'에 빠진 사회적 대화, 이번엔 다를까
이재명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그간 이어져온 잔혹사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작부터 노동계에 불리한 사안을 내건 정부의 구상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주 52시간 적용 제외,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 정부가 제시한 메가특구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의제를 보면 "정부와 사용자가 입장을 같이 할 것"이라며 "노동계의 손목을 비틀어 압박해 정부가 추진하고 사용자가 찬성하는 사안의 거수기로 삼는 역사가 반복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양대노총이) 들어가서 반대한다고 하지만, 지금 정부가 낸 의제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결국 사용자가 찬성하는 사안을 밀어붙이는 자리가 될 거다. 대화는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합의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도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사회적 대화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간 이를 잘 만들지 못했다"며 "게다가 메가특구 사회적 대화는 노동계에 불리한 의제로 출발했다. 정부가 후퇴하지 않으면 합의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후퇴하려면 메가특구에 투자를 약속한 기업을 설득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후퇴해도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딜레마 속에 있는 정부를 상대로 민주노총이 후퇴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그 뒤 내부적으로 제도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 참여를 결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낙관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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