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노무팀 관계자의 노조 중앙위원회 회의 불법도청 사건으로 불거진 노조의 정연주 사장퇴진투쟁이 내부 주요 직능단체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 KBS 기자협회에 이어 PD협회와 아나운서협회도 이번 투쟁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서며 노조의 사장퇴진운동 철회를 압박하고 있어, 노조의 추후 대응이 주목된다.
***노조 ‘사장퇴진’ 강행에 직능단체 반발 확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진종철)는 30일 저녁 늦게 끝난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앞서 예정했던 31일 오전 사장출근저지투쟁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KBS본부의 이같은 결정은 정 사장이 29일에 이어 이틀째 퇴근을 하지 않고 집무실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사실상 출근저지투쟁을 벌일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KBS본부는 사장실 앞 피켓시위도 벌이지 않았다.
KBS본부는 31일 오전 9시 30분 노조사무실에서 다시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해 향후 후속 대응방안을 논의 중이다. KBS본부는 이에 앞서 30일 저녁에 열린 집행위 회의에서 사장퇴진 투쟁의 일환으로 위원장을 비롯한 주요 집행간부들의 삭발식과 무기한 단식농성 등을 벌여나가기로 결의한 바 있어 비대위 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그러나 KBS본부의 사장퇴진운동은 내부 주요 직능단체들이 속속 불참을 선언하면서 '예봉’이 꺾이는 분위기다.
실제로 KBS PD협회(회장 이강현)는 30일 오후 1백여명의 협회 소속 PD들이 참여한 가운데 비상총회를 열고 노조의 사장퇴진투쟁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이날 총회에는 노조측에서 사무처장이 참석, 그동안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으나 대다수 PD들은 “사태의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가 기자회견을 연 뒤 곧바로 사장퇴진을 요구한 것은 지나친 처사였다”며 “따라서 사장퇴진 요구와 출근저지투쟁 등은 즉시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부 PD들은 “만약 노조가 계속 퇴진투쟁을 벌여나간다면 집행부 불신임안 제출은 물론 노조탈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PD협회는 그렇게 될 경우 불필요하게 외부에 ‘노-노 갈등’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 총회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는 △PD협회 중앙위원과 실·국대표 운영위원들에게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위임 △정 사장에 대한 퇴진투쟁 철회 △노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수용 등의 내용을 담았다.
***‘사장퇴진 반대’ 직능단체 31일 연대모임 예정**
KBS 아나운서협회(전인석)도 같은 날 오후 40여명의 협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노조의 사장퇴진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사장퇴진과 같이 KBS 전체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은 노조 비대위의 결의가 아니라 반드시 전체 사원들에게 총의를 묻거나 하다못해 각 직능단체들의 대표들만이라도 연석회의를 열어 최대한 심사숙고했어야할 문제였다”며 “이러한 협회의 결정으로 인해 노조가 큰 타격을 입을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약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어렵게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KBS 기자협회(회장 윤석구)는 지난 29일 ‘노동조합의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 제하의 성명서를 내어 “노조가 극단적인 선택에 나서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KBS 전체의 위상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줄 수 있다”며 “만약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공영방송 KBS의 위상을 심각하게 실추한다면 내부의 총의를 모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사장퇴진투쟁에 반대하는 이들 직능단체들은 31일 중 연대모임을 갖고 이후의 대응 방안을 논의한 뒤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오래 끌면 공멸” 위기의식도 확산**
일부 KBS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조속히 현재의 사태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 중견사원은 “뜻이 같고 다르고를 떠나 노조는 엄연히 KBS 구성원들을 대표하는 가장 큰 단체이고, 그러한 조직이 상처를 입는 것은 차후 구성원 모두에게 큰 짐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며 “현 시점에서는 각 직능단체들은 노조 집행부를 자극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무엇이 KBS를 위하는 길이고, 한편으로 어떤 것이 공영방송 KBS의 위상을 한층 강화시키는 선택인지를 유연하고 끈기 있게 설득해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 중견간부도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오는 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이 문제가 정치권의 논쟁으로 비화돼 KBS ‘흠집내기’의 도구로 활용될 소지가 높다는 것”이라며 “벌써 일부 국회의원이 심상치 않은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나 원래 3월말쯤 끝났어야할 국회 예결산 승인절차가 아직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것 등이 이러한 우려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이 간부는 “따라서 경영진은 이 시점에서 좀더 과감한 대국민사과와 함께 이번 사태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점을 노조측에 제안하는 형식으로 퇴로를 열어주어야 하고, 노조도 정 사장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적 대립을 그만 거둬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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