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이 시행되고 반년 여가 흘렀지만 현장에선 원청교섭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개월이 소요되는 원청 사용자성 인정 및 교섭창구단일화 관련 절차, 노동위의 교섭 명령에 대한 사측의 소송을 통한 불복 등이 발목을 잡으면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이 절차 지연으로 무력화되는 일을 막기 위한 잠정 교섭 제도 도입, 노동위원회의 교섭 촉진을 위한 적극 행정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14일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함께 '원청교섭을 방해하는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진환 전국금속노동조합 조직국장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금속노조에서는 지난 8월까지 25개 사업장 하청노동자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실제 교섭이 진행 중인 원청은 포스코·서진산업 등 3곳, 교섭 전 단계인 실무협의에 응한 원청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 등 4곳에 그쳤다.
진 조직국장은 "교섭이 개시됐거나 실무협의가 진행 중인 사업장에서도 교섭의제, 교섭원칙, 교섭 참여 주체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교섭 지연"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종철 서비스연맹 조직실장 역시 서비스연맹에서 "지난 8일까지 29개 원청 사업장 하청노동자가 교섭을 요구했지만, 현재 교섭이 진행 중인 곳은 11곳뿐"이라며 "교섭이 시작된 사업장에서도 교섭의제를 부정하는 원청사로 인해 교섭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진 조직국장은 교섭 지연의 원인으로 "개정 노조법 시행령과 교섭창구단일화 절차가 원청의 교섭 지연, 법적 다툼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노조법 시행령상 하청 노조는 원청 사용자가 교섭에 불응한 경우 노동위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받은 뒤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하기 위한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진 조직국장은 이 때문에 "원청교섭의 성립 여부를 둘러싼 분쟁이 수개월 이상 장기화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으며 "노동위원회가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경우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사용자성 확정 전 잠정교섭 가능해야
전문가들은 교섭 지연 해소를 위해 원청 사용자성을 최종 확정하기 전에도 단체협약 체결 의무를 지우지 않는 '잠정 교섭'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소송을 포함 최대 수년에 걸쳐 교섭 절차가 지연되며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잠정적 교섭절차" 도입을 제안하며 "노동위원회가 제출된 자료를 검토한 결과 특정 근로조건 영역에서 계약외사용자성(원청사용자성)이 소명됐다고 판단한 경우, 최종적인 사용자성이나 책임의 확정과는 별개로 필요한 정보 교환, 교섭의제 확인, 잠정적 협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권고하거나, 일정한 절차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잠정 교섭이 "계약외사용자성을 미리 확정하거나 단체협약의 체결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며 "대상 의제와 참가 주체, 진행 기간을 제한하고, 긴급한 안전보건조치와 교섭에 필요한 자료의 확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취지에서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원청이 보유하고 있다"며 "하청노조는 이런 자료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청의 지배력을 완전히 입증해야 교섭할 수 있게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입증을 요구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어 "사용자성에 관한 최종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교섭 전체를 중단하면, 재심과 행정소송이 장기화되는 경우 노동자의 교섭권이 사실상 소멸할 수 있다"며 "하청노조가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기초사실을 소명하면 교섭 개시에 필요한 '절차적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사용자성과 관련한 법적 다툼이 진행되기 전 노동위원회 판정을 이행하게 하기 위한 적극 행정의 필요성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세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부장은 "노동위원회 제도의 의의는 법원에 가기 전 분쟁을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라며 이를 실현하려면 "노동위 결정이 있었음에도 교섭을 거부하는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노동부가 가진 처벌 권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노위, 중노위까지 사실상 5심제를 만드는 노동위 제도를 폐지하고 노동법원을 두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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