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형식적인 절차를 거친다고 시간을 끌지 마세요." 고속철도 통합 보고를 받으며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10년을 끌던 KTX와 SRT의 통합은 그로부터 1년 뒤 마무리됐다.
"지연이 꼭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미 관세 협상이 1차 타결 이후 석 달째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때, 그가 외신에 한 말이다. 협상 결과는 연간 투자액 상한 200억 달러와 현금 비중 축소였다. 같은 사람이 절차와 시간을 두고 정반대로 말했다.
그리고 지난달 그는 1958년 이후 처음으로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를 국회로 보내지 않은 대통령이 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대법원장 후임으로 법관회의가 제청한 김동현을 거부하고 이우익을 역제청했으나, 법관회의가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4개월 만에 굴복해 재제청된 조용순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했다.
세 장면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한 리더십의 서로 다른 얼굴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절차를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변수로 다룬다. 사안에 따라 어떤 절차는 앞당기고, 어떤 절차는 늦추며, 어떤 절차는 우회한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 가운데 하나에만 능하다. 밀어붙이는 사람은 계속 밀어붙이고, 신중한 사람은 계속 신중하다. 이 대통령은 사안에 따라 속도와 방향을 바꾼다. 그것이 그의 강점이자, 지금 그가 놓인 곤경의 원인이다.
앞당기기
절차 앞당기기의 대상은 관성이다. 절차적 관성이란 제도가 결정을 내리지 않아 기존 관행이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누군가가 막아서가 아니라,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않아서 관성은 남는다.
KTX와 SRT의 분리는 10년간 통합과 존치 사이를 오갔고, 그동안 승객은 두 개의 앱을 깔아야 했다. 의대 정원은 증원과 갈등 사이에서 표류했다. 이런 상태에는 뚜렷한 수혜자가 있지만 뚜렷한 책임자는 없다.
관성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지 않는다. 선거로 위임받은 권력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관성을 깨는 것은 민주주의의 요구에 부응한다. 유권자가 정부를 교체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결정되지 않은 것을 결정하라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상법을 세 차례 고쳐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명문화하고, 전임 정부가 14퍼센트 넘게 깎았던 연구개발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되돌리고, 지역의사제를 포함해 의대 증원을 입법으로 마무리한 것은 그 주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형식적 절차로 시간 끌지 말라"는 지시가 통했던 영역이 바로 여기다.
늦추기
그러나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속도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그는 늦추는 데도 능하다. 관세 협상이 그렇다. 지난해 7월 말 1차 타결 이후 3,500억 달러 투자의 성격을 두고 한미가 맞서면서 협상은 석 달을 끌었다. 그사이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에서 지연이 꼭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고, 미국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겠지만 그것이 한국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정도여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지연이 교착이 아니라 선택이었음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지난 해 10월 경주 회담에서 나온 결과는 연간 투자액 상한 200억 달러, 현금 투자 2,000억 달러 한정, 자동차·부품 관세 15퍼센트였다. 국내 외환시장이 감당할 수 없다는 제약을 협상 지렛대로 바꾼 것이다.
트럼프 전쟁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이란은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에 맞서면 전쟁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고, 미국은 반도체 표적 관세까지 꺼내며 압박했다. 정부는 어느 쪽으로도 입장을 확정하지 않은 채, 국익과 국민 공감대에 기반해 기여 방안을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결정을 미루는 것 자체가 선택지를 살려두는 방법이다.
늦추기는 국내에서도 나타난다.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됐고, 그사이 시행령 정비와 현장 준비가 이루어졌다. 재계 반발이 가장 컸던 사안에서 정부는 속도보다 예측 가능성을 택했다. 취임 당일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을 두고 국가 간 합의는 지켜지는 것이 좋고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밝힌 것도 마찬가지다. 지지층을 거스르는 비용이 따랐지만, 야당 대표 시절 스스로 강하게 비판했던 합의를 유지했다.
늦추기는 앞당기기보다 어렵다. 성과가 나기 전까지는 무능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 정부의 대외 성과가 국내에서 저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우회하기
문제는 세 번째다. 지난달 청와대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의 임명동의안을 국회로 보내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여당이 발의한 특검법은, 그 적용과 집행 방식에 따라 대통령이 관련된 다수의 재판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진보 법조계에서도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최고권력자의 사법 리스크를 정리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달 지명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를 추진한 의원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아온 인물이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세 사안은 별개로 보이지만 하나로 묶인다. 대통령 관련 재판을 없앨 수 있는 일, 그 재판을 최종적으로 심리할 법관을 고르는 일, 그리고 그 공소취소를 집행할 수 있는 장관을 고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논리에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 대법관 제청은 오랫동안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비공개로 후보를 조율해 온 사안이고, 이번처럼 사전 협의 없이 서면으로 제청된 것은 그 관행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다툴 만한 주장이다.
그러나 관행 이탈에 대한 헌법적 대응은 이미 마련돼 있다. 대통령은 임명을 거부할 수 있고, 국회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며, 권한 다툼은 헌법재판소가 가린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후보 반려권도 재제청 요구권도 부여하지 않았다. 사법연수원 14기 법조인 84명이 성명을 낸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법이 말하지 않는 것
법이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그 행위를 금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헌법은 그러한 경우를 모두 열거하지 않는다. 지금 다투어지는 것은 대부분 조문이 아니라 그 빈칸을 채워온 관행이다.
인사청문회가 그 전형이다. 장관 임명에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고,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대통령은 임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제도를 만든 이유는 임명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결격 사유를 공개된 자리에서 드러내,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지고서야 임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법적 의무 대신 정치적 부담을 부과한 제도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애초 비례대표 의원직을 유지한 채 장관을 맡겠다고 밝히며,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례의원직 사퇴라는 관례가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리 나눠 먹기로 인식돼 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관례를 존중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야당 의원의 입각이 드문 일이어서 기존 관례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그의 반론에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법률이 금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관례에 무게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후보자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여당에서도 인사청문회에 대한 우려가 가라앉지 않자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법률상 문제가 없다는 논리만으로는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번 사퇴가 보여준 셈이다.
공소취소도 다르지 않다. 검사가 1심 판결 전에 공소를 거둘 수 있게 한 제도는 증거가 무너졌거나 기소가 잘못됐다고 판단할 때 활용하라는 뜻이지, 피고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쓰라는 것이 아니다. 조문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을 뿐이다. 대통령이 관련된 여러 건의 기소를 사건별 증거가 아니라 피고인을 기준으로 한꺼번에 정리하는 설계는 그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부담을 무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법적 의무가 없다고 말하면 된다. 이 방법은 위법이 아니다. 다만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법조문이 침묵하는 자리마다 헌정의 관행이 하나씩 사라진다. 절차를 우회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행동이 아니지만, 법이 말하지 않는 곳에서 관행과 취지가 지녀온 무게를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위법이 아니므로 법정에서 다투기도 어렵다. 그것이 이 방식이 지닌 효율성이자 위험성이다.
두 종류의 절차
헌법이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정한 것은 업무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나누기 위한 것이다. 어느 한 사람도 사법부의 구성을 혼자 결정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절차를 편의상 '정당성 절차'라 부르겠다. 이는 행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권력자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헌법적 장치다. 이런 절차는 결정을 지연시키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결정을 제한하려고 만든 것이다. 이승만 사례처럼.
좋은 결과를 냈다는 사실이 권력 행사의 정당성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절차를 지키는 행위 자체가 정당성을 생산한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대법관 후보를 그대로 국회로 보내는 것,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행위가 곧 헌법을 작동시키는 일이다.
절차를 형식이라 부르는 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형사소송법을 생각해 보면 된다. 무죄추정과 방어권은 선언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구속영장 없이 사람을 가둘 수 없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으며, 증거를 법정에서 다툴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한다. 이러한 절차를 걷어내면 권리도 함께 사라진다. 절차는 가치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가치가 존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정한 임명 절차도 다르지 않다. 사법부 독립은 그 절차 바깥 어딘가에 따로 놓여 있지 않다. 임명 절차 안에 있다.
법조문에 적히지 않은 입법 취지가 무게를 갖는 이유도 여기 있다. 입법 취지란 그 절차가 지키려는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고, 가치를 덜어내면 남는 것은 빈 형식뿐이다. 그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는 항변은 답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 절차를 구별하는 기준은 간명하다. 그 절차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관성은 결정 회피의 결과물이고, '정당성 절차'는 자의적 결정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앞의 것은 앞당기거나 늦출 수 있다. 그러나 뒤의 것은 다르다. 번거롭고 느리다는 이유로 건너뛸 수 없다. 빠르게 할 수도 느리게 할 수도 없고, 그냥 따라야 한다.
절차를 변수로 다루는 데 탁월한 이재명 대통령이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도 바로 이 '정당성 절차'다.
닫힌 회로
헌법적 민주주의는 두 개의 회로로 작동한다. 하나는 수직적 회로다. 권력은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서 나오고, 임기가 끝나면 국민의 심판으로 돌아간다. 다른 하나는 수평적 회로다. 임기 중의 권력은 다른 제도로부터 견제받는다. 의회가 묻고 법원이 판단한다.
정치학자 오도넬은 선거만 제대로 치러지고 이 두 번째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체제를 '위임 민주주의'라 불렀다. 선출된 대통령이 임기 동안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대로 통치할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여기고, 자신을 견제하는 기구들을 성가신 장애물로 취급하는 유형이다.
지금 제기되는 우려는 두 회로가 동시에 약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통령을 향한 사법 판단이 제거되면 수평적 회로가 끊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유권자가 다음 선거에서 쓸 재료이기도 하므로, 수직적 회로도 함께 약화된다. 국민은 심판할 근거를 잃는다. 남는 것은 권력이 스스로를 심판하는 닫힌 구조다. 어떤 개혁의 명분도 이 닫힌 구조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명분이 좋을수록 위험은 커질 수 있다.
정당성은 어디서 왔는가
이 정부가 놓치고 있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상법 개정이 정당한 이유는 그것이 옳은 정책이어서가 아니라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통합이 정당한 이유는 그것이 효율적이어서만이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와 법정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다. 관세협상의 성과가 평가받는 이유는 유리한 조건을 얻어서만이 아니라 그 조건이 공개되고 검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당기기와 늦추기로 얻은 모든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치르고 획득한 것이다. 그 정당성을 다른 곳에서 훼손하면, 이미 얻은 성과의 근거까지 흔들린다.
더구나 이 정부는 계엄과 탄핵이라는 헌법 파괴의 경험 위에서 출범했다. 그 존립 근거는 헌법 절차를 지키는 쪽에 섰다는 사실이었다. 헌법 절차의 수호자로 등장한 권력이 헌법 절차를 우회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정치적 실책이 아니라 자기 존립 근거를 침식한다.
남은 시간
신뢰의 문제는 미래의 비용으로도 돌아온다. 지난 6월 정부는 반도체와 피지컬 AI,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임기 안에 끝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기업의 투자와 지자체의 인프라와 국회의 뒷받침이 정권을 하나 이상 건너 이어져야 한다. 다음 정부가 이 사업을 이어받게 만드는 것은 발표된 투자 규모가 아니라, 그 결정이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는 사회적 합의다.
남은 임기에 필요한 것은 속도를 줄이는 일도, 높이는 것도 아니다. 절차를 구분하는 일이다. 앞으로도 관성은 얼마든지 깨야 하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버텨야 한다. 다만 법이 침묵하는 자리에서 관행이 지녀온 무게 앞에서는, 그리고 자기 사건과 관련된 사법 절차에서는 대통령이 먼저 물러서야 한다.
그것은 양보가 아니라 교환이다. 내려놓는 것은 자신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이고, 얻는 것은 자신의 정책을 다음 정부도 수용하게 하는 정당성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에 산업의 미래를 맡긴 판단이 옳았는지는 10년쯤 지나야 드러난다. 그 10년을 버티게 하는 힘은 투자 규모에서 나오지 않는다. 헌법이 정한 대로 대법관을 임명하고 자신의 재판을 법원에 맡기는 일, 그리고 그렇게 지킨 정당성 위에서 사업을 완주하는 일. 지금 대통령이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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