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6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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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생명정치'를 지향하며
나를 향한 제사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 (向我設位 吾心則汝心) 현대 서양에서 최고의 신비가요 지혜자로 추앙받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다음과 같은 유언이 있습니다. '인류문명사의 거대한 전환기에는 반드시 새로운 삶의 원형을 제시하는 성배(聖杯)의 민족이 나
김지하 시인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예감"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6> '동학당 시인' 김지하의 결론
북한의 저 유명한 김정일 위원장이 어느 날 가라사대 '컴맹은 모두 반동분자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으허허허허. 아마도 나는 오적을 위시해 젊은 시절에 쓰다가 버린 우스꽝스런 풍자시를 다시 쓰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또 퍼뜩 지난다. 이 역시 결론이다. 아! 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5>
바로 이 근처에서 어디 한 번 질문해 보자. 집단지성과 개체적 창의력 사이의 모순합일의 역설은 무엇인가? 디지털 과학 문명과 불교의 화엄적 우주관, 그리고 신화나 원시적 사유의 부활로서의 개벽적 문화와의 미래의 결합관계는 어떠한 것일까? 우선 불교와 원불교에서
사회적 공공성을 넘어 우주적 공공성으로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4> '이명박 퇴진론'에 대해
나는 며칠 전 원불교 은덕문화원에서 공부 모임인 소태산 아카데미에 원장으로 참여해 첫 번째 공부 과정의 수료식 자리에서 9월 9일부터 시작되는 두 번째 공부 과제를 제안하는 자리에 있었다. 방향 문제에 대한 내 인사말에 대해 한 뉴미디어 경영자의 논평이 있었다.
"모든 반대 되는 것은 상호보완적이다"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3>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촛불시위 이후인 7월 3일 아침 청계광장에서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은 수십 명의 원불교 여성교무들의 침묵기도회가 있었다. 플래카드는 "비폭력으로 생명과 평화의 길을!"이었다. 여기에 대한 촛불의 반응은 "정갈하다. 마음이 편해
"아마도 이들은 진짜 개벽을 이룰 것 같다"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2>
촛불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무엇일가? 우선 엉터리로라도 대충 때려잡아 본다. 한 가지 공부 방식이다. 내용과 형식으로 나눠본다면 그 내용은 쇠고기, 대운하, 의료 등 '생명'이고 그 형식은 비폭력, 불복종, 비타협, 무저항, 유머와 여유, 춤과 노래, 미소의 부
"나의 이념은 목숨이다"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 <1>
나는 지난 3일 <프레시안>에 '줄탁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연설문 겸 기고문을 통해 7월 4일 불교의 촛불참가와 원불교의 그 나름의 행동을 보고 난 뒤 다시 또 한 번의 기고를 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지난 번 '줄탁'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대강 들
줄탁(啐啄)을 생각한다
[김지하 칼럼] '촛불'은 후천개벽의 시작이다
줄탁(啐啄)을 생각한다 줄탁(啐啄). 정확하게는 줄탁동시(啐啄同機)란 무엇일까? 생명의 세계에서는 달걀 속의 병아리가 때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달걀 속에서 어떤 한 부위를 부리로 쪼기 시작하면 어미가 밖에서 그 쪼는 부위를 아주 정확히
사형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사형제도, 이젠 폐지돼야 한다·2] 사형에 대한 사보타지들을 보라!
나는 법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교양수준 정도에서도 너무 먼 거리에 있다. 문리과 대학에서 공부하던 대학시절에 한 두 차례쯤은 청강했을 법한 법철학강의조차도 내 기억엔 별로 없다. 아! 있다. 딱 한번 최재희 교수의 헤겔법철학 강요를 들은 것. 그리고 기억의 연
누굴까
김지하 달마展-가을에서 봄까지 <29ㆍ끝>
아주 멀다.그러나 가까워온다.눈보라 속인 듯 안개 속인 듯 희미하다.누굴까?달마가 서쪽에서 오는 것인가!(達磨西來意)아니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니 곧 무궁무궁의 길인가!(環中無窮)검은 점은 그친다.흰 여백만 남는다.문득 유달산(儒達山) 기슭의 한 정원이 떠오른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