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행정부는 자원 확보와 지정학적 중요성 등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고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해야 하는 중동의 퍼즐을 어떻게 풀 것인가. 건국대 중동연구소(소장 최창모 교수)는 2일 국내 전문가들과 함께 향후 중동 정세를 두고 토론회를 열었다.
强敵 이란, 美의 이라크-아프간 관리에 긴요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정책 중 최우선 순위에 있는 나라는 누가 뭐래도 이란이다. 지역 강국이자 반미국가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회랑'의 중심국가인 이란은 핵개발 문제로 미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 오바마는 2일 외교안보팀 발표 자리에서도 이란으로의 핵확산 저지를 최우선 화두로 내세웠다.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오바마는 이란 핵개발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며 "오바마가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포기하지 않는 한 관계 개선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유달승 교수는 "오바마는 이란 지도자와 조건 없는 직접 대화를 주장하면서 외교적 해법을 강조한다"며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이란의 반체제 단체 무자헤딘 할크에 대한 테러단체 지정 해제 등 가시적인 조치가 있다면 이란과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특히 오바마가 강조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미-이란 관계 개선의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시아파를 적으로 보는 탈레반을 공동의 적으로 삼아 시아파 국가인 이란이 미국과 반(反)탈레반 연대 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도 "미군 철수 후 이라크의 관리와 아프간 사태의 해결을 위해 이란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라며 관계 회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서 교수는 "오바마의 이란 정책은 내년 6월 이란 대통령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보수 강경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해서 현재의 경제난으로 인한 인기 하락을 만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 ⓒ로이터=뉴시스 |
이라크 미군, 철수는 하겠지만 뒷덜미는 '켕겨'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중동의 '뜨거운 감자'는 이라크다. 초지일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함으로써 '일관된 지도자'의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2010년 여름까지 미군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공약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철군에는 찬성하면서도 '시한을 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으나 장관에 유임되면서 "현지 사령관들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더 빨리 철수할 수도 있다"고 오바마의 계획에 동조했다.
그러나 대규모 기지를 이미 건설해 둔 미군이 병력을 전원 철수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소한 주한미군 규모의 병력을 남겨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정책 목표로 △단일 이라크 연방 국가 유지 △이라크 발(發) 테러리즘 근절 △민주주의 확립과 이를 통한 중동 안정화 구축 △이란 영향력 확산 방지 △이라크 내 반미감정 해소를 꼽으며, 이러한 지향점은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남식 교수는 그러나 오바마의 이라크전 반대 입장으로 볼 때 "취임 후 구체적인 상황과 현실에 조우하게 되면 부시 행정부의 노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며 결국은 철수 공약이 지켜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인 교수는 "외교적 노력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군사력의 뒷받침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이라크에서의 무조건적이고 전면적인 철수라는 오바마의 확고한 입장은 미세한 조정이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그는 "오바마 당선인의 공약대로 16개월 내에 철군이 전격 이뤄질 가증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며 "미국의 이라크 정책 목표에 조응하는 순수의 단계적, 전략적 철수를 진행하며 상황을 관망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정민 교수도 오바마의 공약 이행을 예견하면서도 "미국은 현재 주둔군지위협정(SOFA) 체결을 추진하면서 일부 병력과 장비를 장기 주둔시킬 것이 확실하다. 완전 철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또한 "이라크 철군은 이란의 이라크 진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우디 등 걸프국가들의 우려를 자아내 중동에 다시 긴장이 조성될 수 있다"고 전망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이라크 정치인들이 석유 수입을 공유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미국이 공들여 놓은 석유 생산 주도권의 상당 부분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철군으로 나아가는 오바마의 발목을 잡을 요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 오바마는 선거 운동 기간 파격적인 친이스라엘 발언을 쏟아 냈었다. ⓒ로이터=뉴시스 |
중동 갈등의 원천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그 깊은 뿌리만큼 설령 풀리더라도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더군다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램 이매누얼 백악관 비서실장 등 친(親)이스라엘 인사들이 주도하는 오바마 외교는 이스라엘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묻지마 지지' 못지않게 사태를 꼬이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건대 중동연구소의 홍미정 박사는 매우 비관적이었다. 그는 "오바마 시대의 협상도 국경 획정, 예루살렘 주권, 난민 귀환권, 점령촌 철거, 이스라엘군 철수 등 이-팔 분쟁의 주요 주제들을 회피함으로써 분쟁 해결 방안을 제시하긴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홍미정 박사는 그 근거로 램 이매누얼 비서실장 등 오바마 정부에서 중동 정책을 주도할 인사들이 과거 클린턴 행정부에서 오슬로 협상과 캠프데이비드 협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인사들이기 때문이라며 "오바마 행정부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기보다 기존의 로드맵 틀에서 분쟁 해결을 위한 '몸짓'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홍 박사는 오바마가 설령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으려 하더라도 선거 운동 기간 했던 이스라엘 편향 발언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오바마는 지난 6월 미국 내 최대 로비단체인 미국 이스라엘 공공위원회(AIPAC)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는 신성불가침이고 협상 대상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분할은 있을 수 없다"는 '파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음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와 연대 의사를 누차 천명했다.
그러나 최영철 서울장신대 교수는 '진지하고 적극적인 분쟁 해결 노력'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그런 노력 없이는 "이라크전과 이란 핵개발 문제 등 다른 사안의 본질적인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영철 교수는 "예루살렘 문제 등에서 친이스라엘적 입장을 표명한 바 있지만 오바마는 오래 전부터 중동 정책 및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대한 관심과 이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그렇다 하더라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오바마가 부시 행정부와 달리 △팔레스타인의 다양한 대안과 의견, 정서를 비교적 충실히 고려하고 반영할 수 있고 △이라크전에 집중했던 부시와 다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으며 △소프트 파워적인 접근을 한다는 데서 문제의 진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서정민 교수는 "오바마의 발언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 분쟁에 적극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전제로 한) 2국가 체제는 임기 내에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강경파의 집권 가능성이 있는 내년 2월 이스라엘 총선 결과가 중대 변수라고 분석했다.
▲ 건국대 중동연구소가 주최한 '버락 오바마 시대의 중동' 토론회 장면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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