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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책 논쟁 사라진 선거, 그래도 차이는 있다"

[복지국가SOCIETY] "4.11 총선, 어느 당을 선택할 것인가?"

이번 4.11 총선에서 복지국가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 작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촉발한 무상급식 확대를 둘러싼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복지 포퓰리즘 논란이 주요정당 간의 논쟁에서 거의 사라졌다. 복지 포퓰리즘을 사납게 비난하던 한나라당이 몇 달 만에 '보수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주장하며 당명을 바꾸고, 당을 대표하는 색깔까지 빨간색으로 바꾸면서 '복지 대 반복지'의 프레임을 포기한 탓이다.

그렇다고 복지 확충 프로그램에 관한 정당 간의 차이가 불식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각 정당이 내 놓은 공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 실행 프로그램에 관한 좌우 서열과 간극이 상당하다. 확충할 복지 프로그램의 범위가 다르고, 복지 확충에 투여할 재원의 조성 규모와 조성 방법에 차이가 있으며, 복지국가를 실현할 전략과 실행계획이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현해나갈 주체로서 정치인의 대표성에도 차이가 있다. 네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각 당의 주요 공약과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확충할 복지 프로그램의 범위부터 살펴보자. 새누리당은 무상보육과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에 방점을 두고 있는 반면, 무상의료를 복지 확충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더불어 전면적인 반값등록금 실현에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 다른 당과의 차별점이다. 무상의료는 연 14조~20조의 보험료 폭탄을 불러올 재앙이라고 비난하면서, 암, 심장질환, 뇌졸중, 희귀질환 등 4대 질환 100% 건강보험 보장을 내세우고 있다.

진보·개혁정당을 대표하는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은 공히 의료비 걱정 없는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즉각적인 반값 등록금 실현을 내걸었으며, 진보신당은 대학까지 단계적 무상교육 확대와 국립대학을 시발로 한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를 만들어 대학의 평준화를 실현하겠다는 공약까지 제시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확충할 복지 프로그램의 범위를 보면 여전히 그 차이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둘째, 복지 확충의 범위에 차이가 있는 것만큼 복지 프로그램 확충에 투여할 재원의 규모와 조성 방법에도 큰 차이가 있다. 새누리당의 복지 프로그램이 연 11조원 규모이고, 민주통합당의 복지 프로그램이 연 32조원, 통합진보당이 연 63조원 규모로 제시되어 있다. 재원 조성 방식도 차이가 있는데, 새누리당은 증세 없이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것이고, 민주통합당은 1% 부자증세와 재벌과 대기업 증세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는 고소득자 중심의 소득세율 인상과 법인세 인상, 종부세 강화, 자본 이득에 대한 과세를 내걸었고, 진보신당의 경우에는 통합진보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종교인에 대한 과세 방안까지 포괄하여 연 50조원 규모의 증세 방안을 내놓고 있다.

각 당이 내놓은 복지확충 재원의 규모와 조성 방법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드러난다. 이러한 차이는 향후 우리나라 국가 운영 방식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좌우할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부실하고 관련 쟁점에 대한 논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 하겠다. 언론, 정치인, 관련 전문가들이 이러한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공론의 장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관심과 의지의 부족 탓이기도 하거니와 복지라는 화두가 너무나 갑자기 부상한 탓에 세부 내용을 잘 아는 이들이 부족한 탓도 적지 않을 것이다.

복지 확충 예산과 관련해서 하나 더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새누리당이 복지 포퓰리즘 공격을 포기한 사이에 정부가 각 정당의 복지확충 예산을 검증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것이다. 각 당의 복지 프로그램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5년간 최소 268조원(연 53조 6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발생한다고 하면서, 각 정당의 무분별한 복지 확대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복지 포퓰리즘을 비난하지 못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대신해서 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엄호에 나서고 있는 형국인데, 투표장에서 기표하기 전에 국민들이 한 번 더 염두에 두고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셋째, 복지국가 실현 전략과 세부 실행계획에 관한 각 정당의 공약에도 일정한 차이가 있다. 복지국가 전략에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같은 복지서비스와 보건의료 프로그램 이외에도 교육, 노동, 여성, 문화·예술 등의 다양한 영역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 글을 통해 세밀하게 논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각 정당이 제시한 내용들을 보면, 이것들이 부문별로 각 정당이 추구하는 큰 방향과 거시적 전략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구체적 실행계획이 세부적으로 제시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뭉뚱그려 넘어갈 수는 없다.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과 같은 현금서비스 중심의 의제들은 상대적으로 세부 실행계획 마련이 쉬운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의제 설정 단계에 들어서면 공보육시설의 확충 범위와 운영방식,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과 같은 쉽지 않은 쟁점들이 남아있고, 반값 등록금 같은 경우에도 적정 대학등록금 수준을 둘러싼 치열한 논란 거리들이 있기 때문에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반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서비스의 확충과 무상의료 실현 같은 현물서비스 중심인 경우에는 더 복잡하고 어렵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확충하고자 할 경우에는 기존 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개혁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인력을 충원하며, 서비스 제공 단계별 세밀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재원 마련, 정책 개발과 집행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정책 개발과 집행 과정에서 상당한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무상의료의 경우에는 더 어렵고 복잡하다. 의료기관 간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한 공급체계 안에서 생존을 위한 이윤 추구 행위가 보편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에서는 의료이용에 대한 보장수준이 높아질수록 공급자와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서,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개편이 필수적이고 이에 따른 의료이용 절차와 방식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여기서는 이러한 변화는 의약분업 시행보다 진폭이 훨씬 더 큰 사안이라는 정도로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럼에도, 지금까지 각 당이 제시한 정책 방향만으로도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되느냐에 따라서 대부분의 구체적인 정책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고, 국민생활이 크게 달라질 정도의 내용들이 담겨있다. 여기서 말하는 차이가 단지 국민들이 받게 될 서비스의 종류와 범위가 달라진다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롭게 만들어질 일자리의 양과 질에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복지가 확충된다는 것은 그 만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수준으로 보건과 복지 분야의 일자리를 늘린다고 했을 때, 단계적으로 70~80만명 정도의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계된다.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복지 프로그램의 확충과 신규 일자리의 창출은 우리네 삶의 조건과 문화를 하나하나 바꾸어 나가게 될 터이니, 그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기존 복지시스템 위에서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서 복지 프로그램을 확충할 계획을 갖고 있고, 민주통합당의 경우에는 기존 복지국가 체계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개편을 전제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은 그 변화의 진폭이 더 크고 색체가 강하다.

그래서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실제 국민들에게 새롭게 제공될 복지 프로그램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고, 결과적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가 적은 반면, 사회적 변동과 변화의 크기가 크지 않을 것이다. 보수적이며 기존의 질서에서 약간의 보완이 가해지는 정도라 하겠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에서 진보정당으로 갈수록 국민들에게 제공될 복지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고, 조세 및 재정 운영시스템의 변화와 서비스 전달체계를 비롯하여 수반될 논란과 변화의 진폭이 커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 당이 내세운 복지국가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대표 주자들, 정치인의 면면을 통해 각 당의 전략과 의도를 살펴보자. 지역구 의원의 경우 직업정치인 중심의 인물 구성이기 때문에 비례후보를 중심으로 언급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새누리당(1번)의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복지국가와 관련해서 우리사회의 보수를 대변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통합당(2번)의 경우에는 관련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진보적 학계 인사와 시민사회 명망가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색체 면에서 새누리당 보다는 개혁성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로 대표되는 민주노동당의 맥을 잇는 한 축인 통합진보당(4번)은 정당인, 정규직 노조 간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의 진보적 정체성이 민주노총과 전농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대중조직에 기반을 둔 당의 존재 형태 속에 녹아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민주노동당의 맥을 잇는 다른 한 축인 진보신당(16번)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여성 청소노동자를 비례 1번으로 내세우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직 국회의원 한명 없는 열악한 당의 처지가 반영된 결과이기는 하지만, 비정규직·여성·청소노동자라는 우리사회 차별의 3대 요소를 대표하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우리사회가 복지국가로 가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와 의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총선을 맞아 보수정당인 새누리당까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게 되면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중요한 쟁점들이 사장되고 있다. 지금 선거판에서는 누가 더 도덕성에 흠이 있느냐, 어느 정권이 더 심판받아야 하는냐를 둘러싸고 여야 간에 네거티브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가히 진흙탕 싸움이다. 그러는 만큼,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삶의 변화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되고, 정책선거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도 중요하고, 누가 더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가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는 우리의 시대정신이자 공통의 목표를 향해 어떻게, 얼마나 나아가게 되고, 변화하게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투표일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이 글이 독자들의 현명한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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