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의 경력을 보고 의아했다. 물리학자인가? 공학자인가? 그는 학부에서는 기계공학(서울대학교)을, 대학원에서는 의공학(미국 하버드대학교-MIT 협동과정)을 공부했다. 그리고 박사후연구원 과정 없이 지난 2010년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가 됐다. 지난 5월 28일에 카이스트 E4 건물 4층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도, 그걸 먼저 물었다. 이날 박 교수를 찾아간 건 그가 광학 학술지(Nature Photonics)에 지난 4월 발표한 논문에 대해 묻기 위해서다.
박 교수는 "그 질문을 많이 받는다"라며, "다른 학교 물리학과에서 강연하면 나이 드신 교수님들이 '자네가 하는 건 물리가 아닌 것 같다'는 얘기도 하신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런 반응에 때로 반문한다. "물리가 뭐냐? 새로운 발견, 자연계가 돌아가는 원리 이해가 물리 아니냐? 굳이 경계를 그어야 하느냐?" 박 교수가 양자 컴퓨팅을 예로 들었다. 양자컴퓨팅은 20년 전에는 물리학 취급을 못 받았다. 지금은 물리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다. 그는 경계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는 MIT 박사과정 때 어떤 좋은 실적이 낸 걸까? 분명 그런 게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박사 학위 예정자를 카이스트 물리학과 선배 교수들은 후배 교수로 선발했을 테니까.
레이저 발명 물리학자의 학문적인 증손자
박사과정 때 지도교수(마이클 펠트)는 레이저 연구자였다. 정통 원자물리학/광학자. MIT의 100년 된 '분광학 실험실'의 3대 디렉터(1976-2010)이기도 했다. 마이클 펠트는 레이저 연구를 의학과 생물학에 접목시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도가 '의광학'(biophotonics) 분야를 여는 성과를 낳았다. 박 교수는 "의광학 분야가 지금은 광학 안에서도 비중이 상당히 크다"라고 말했다. 의생물학 연구, 안과의 레이저 수술과 같은 치료, 병리학의 현미경을 통한 진단, 이런 게 모두 의광학 분야다.
박용근 박사과정학생은 염색을 하지 않고도, 세포를 볼 수 있는 기술을 연구했다. 세포는 투명하다. 그러니 빛을 쪼여서는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개발한 기술이 형광 단백질이다. 이 기술은 혁신적이나, 한계가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세포에는 사용할 수 없다. 유해할 수 있으니 사용 금지다. 그래서 신기술이 있어야 했다. 박 교수는 고생 끝에 '염색을 하지 않고도 세포를 볼 수 있는 현미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로 '사람의 적혈구'를 연구했다. "내 현미경으로는 이런 걸 볼 수 있어"라고 자랑하기 위한 대상으로 적혈구를 고른 거다.
박 교수는 "적혈구는 물리로 치면 가장 간단한 원자인 수소 원자와 같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가 공부해 보니, 사람들이 이 간단한 구조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그 시절 두 학파가 적혈구가 탄성을 갖는 이유에 대해 다른 이론을 내고 다투고 있었다. 이걸 해결했다. '2차원 현미경'으로 적혈구의 길이 정보뿐 아니고 두께(높이) 정보까지 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논문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보냈고, 놀랍게도 수정 없이 통과됐다. 박사 5년 차 때였다. 그 논문을 포함해 석박사 과정 중 PNAS에 논문 3편을 출판했다. 그 실적이 카이스트 교수직으로 이어졌다.
홀로그래피 현미경이란 뭔가
박 교수가 태블릿을 켜고, 슬라이드를 띄웠다. 그는 "시간 여유가 있으니 이쪽(현미경) 분야를 설명하겠다. 그러면 글쓰기가 좋을 것이다"라며 "내가 궁극적으로 궁금해 하는 질문은 사람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라고 말했다. 나는 "잠깐만요, 이 질문에 답을 먼저 달라. 대학원 시절에 만든 2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이 뭔가"라고 물었다.
박 교수는 "줄여서 그냥 홀로그래피 현미경이라고 한다. 내 슬라이드에 나온다"고 말했다. 나는 "말이 나왔을 때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생각났을 때 알아두지 않으면, 나중에 깜빡하고 그냥 넘어가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질문을 다듬어서 다시 던졌다. "2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교수님이 세상에서 맨 처음 만들어낸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교수님이 만든 홀로그래피 현미경은 다른 현미경과 뭐가 달랐나. 특징이 뭐였나?"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다.
"빛의 세기로만 보면 투명해서 세포가 안 보일 수 있으나, 홀로그래피는 굴절을 본다. 굴절 정보는 빛의 방향 정보다. 방향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기술이 홀로그래피다. 빛의 세기 정보와 방향 정보 두 가지를 갖고 보니 투명한 세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홀로그래피 현미경 원리는 2000년대 초반에 연구를 많이 했다. 내가 일했던 MIT그룹과 스위스 EPFL(로잔연방공과 대학교)에 있는 그룹이 열심히 했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홀로그래피 현미경 개념만 개발하고 현미경이라는 물건을 못 만들었다는 말인가?" 박 교수는 이에 대해 "2차원 현미경을 너도 나도 조금씩 개발하고 있었다"라며 "나는 거의 초창기 그룹이고, 어떻게 하면 잘 찍을 2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만들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 걸 설명하면, 너무 세부적인 기술이긴 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간단하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교수가 "빛의 간섭 현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2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 원리
빛의 간섭 현상을 일으키는 방법은, 하나의 빛, 즉 레이저를 두 개로 가른다. 두 개를 각각 다른 경로로 보내고, 나중에 한 점에서 다시 만나게 한다. 두 빛은 지나온 경로가 달라, 위상(phase) 차이가 생긴다. 위상은 빛의 상태나 위치다. 그러면 두 빛이 만난 지점에서 빛의 간섭 현상이 일어난다. 상쇄 간섭 혹은 보강 간섭이 생긴다. 두 빛의 파동이 맞지 않으면 두 개 파동이 만나 파동이 약해지는 게 상쇄 간섭이다. 파동이 맞으면 파동의 진폭이 커지는 게 보강 간섭이다. 간섭을 일으켜야 일반적으로 홀로그램을 찍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홀로그래피'가 사진술이라고 하면 그걸로 찍은 사진이 '홀로그램'이다). 그런데 빛이 다른 경로를 지나오니 진동과 잡음에 취약하다. 만들기도 어렵고.
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시에 했던 일은 빛을 두 개로 가르기는 했다. 그런데 경로를 살짝 틀었다가 다시 만나게 했던 거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올 때 홀로그래피를 하려면 하나는 경부고속도로, 다른 하나의 경로는 서해안고속도로로 가게 하고, 나중에 만나게 한다. 그래야 간섭 현상이 일어난다. 완전히 다른 경로로 빛을 갈라서 보내는 거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로만 빛을 보내되, 너는 1차선, 너는 2차선으로 미세하게 갈라서 보냈다. 그렇게 해서 간섭 현상을 일으켰고, 공통 경로이기에 잡음을 줄일 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박 교수 연구실 밖에는 광학자 실험실에서 볼 수 있는 광학 장비들이 있었다. 검은 색 천과 같은 걸로 실험공간을 덮을 수 있고, 그 안에는 레이저를 발생시키는 장치와, 거기에서 나온 레이저의 경로를 이리저리 바꾸는 작은 반사경들이 보였다.
현미경으로 맨 먼저 본 게 세포
박 교수는 자신이 만든 슬라이드를 모니터 화면에 띄우고 사람들이 세포를 알기 시작한 초기로 올라갔다. 슬라이드 제목은 '융합: 광학, AI, 반도체, 창업'. 그는 현미경 탄생에서 유명한 두 과학자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국의 로버트 훅(1635-1703)과, 네덜란드의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1632-1723). 로버트 훅은 코르크의 죽은 세포벽을 관찰하고 '세포'(cell)라는 이름을 붙였다. 박 교수는 "현미경이 나오면서 세포라는 말이 생겼다"라고 강조했다. 레이우엔훅은 현미경으로 적혈구 등 살아있는 미생물을 최초로 관찰, '미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박 교수가 알려준 현미경 역사의 세 번째 사람은 독일인 칼 자이스(1816~1888). 칼 자이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광학 현미경 기업 자이스를 세운 사람이다. 자이스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반도체 공정 상 필요한 광학 기술도 제공한다. 자이스와, 독일 광학 산업의 중심 도시 예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현미경은 좋아졌는데, 세포는 어떻게 보나
2차 산업혁명 때 독일에서는 염료 산업이 일어났다. 헤마톡실린이라는 보라색 천연염료가 발견됐고, 이후 인공염료도 내놨는데 그중 하나가 에오신이다. 에오신은 빨간 색을 낸다. 세포에 이들 염료를 집어넣어봤다. 놀랍게도, 헤마톡실린은 핵을 염색하고, 에오신은 세포질을 염색했다. 그러니, 세포 형태를 볼 수 있게 됐다. 박 교수는 "이게 되면서 염료를 이용해 의사가 암 진단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환자 몸에서 떼어낸 조직을 가져다가 염색을 하고 잘게 자른다. 현미경 위에 놓고 병리학자가 본다. 암에 걸리면 세포핵 모양이 바뀐다. 핵이 커지고 쭈글쭈글해진다. 박 교수는 "암 진단의 역사는 헤마톡실린으로 염색을 해서 세포핵 모양이 바뀐 걸 확인하는 거다"라며 "이 기술을 근 100년 넘게 계속해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염색이다. 염색을 한다는 건 죽은 세포를 보는 거다. 조직을 몸에서 떼어나 가늘게 썬 다음에 유리 기판에 올려놓고 보는 거니까. 과학자는 세포를 염색 없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 위상차 현미경이라는 게 개발되고, 개발자인 네덜란드 과학자 프리츠 제르니케가 195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현미경 연구자가 물리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받은 노벨상이었다. 박 교수는 "요즘도 생물학 실험실을 만든다고 하면 제일 먼저 구입해야 하는 게 위상차 현미경이다"라며 "투명해서 안 보이던 세포가 기존 현미경에 필터(위상 필터) 하나만 추가한 위상차 현미경으로 보면 보인다"라고 말했다. 세포의 경계와 핵을 볼 수 있게 됐다. 박 교수는 "이때는 빛의 위상 차이를 강도 대비로 바꾸어 투명한 세포를 볼 수 있게 했지만, 숫자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개념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정량 위상 현미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거다.
세포 내 단백질을 보고 싶다, 3D로 보고 싶다
박 교수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다음 단계는 세포 내 단백질을 보고 싶다가 된다"고 말했다. 해파리에서 형광을 내는 단백질을 발견했고, 2008년에 세 사람이 노벨 화학상을 받는다. 세포를 3D로 보고 싶다는 게 다음 단계다. 이래서 나온 게 공초점 형광현미경이다. 공초점 현미경은 마빈 민스키라는 과학자가 개발했다. 박용근 교수가 "이름 들어봤느냐"고 묻는다. 많이 들었다. 그는 "마빈 민스키는 AI 분야 창시자 중 한 명"이라고 했다. 뭐지? 컴퓨터과학자인 마빈 민스키가 왜 공초점 현미경을 개발? 박 교수 설명을 들어본다.
"마빈 민스키는 뇌의 신경망을 이미징하고 싶어 했다. 뇌 신경망을 3D로 보고자 했다. 뇌의 피질에 있는 신경세포를 3차원으로 보려고 했다. 그러면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신경세포의 3차원 이미징에는 실패했다. 빛의 산란이 너무 많아서 공초점 현미경으로 안 됐다. 이 사람은 망했다, 해서 기술을 버렸다. 그런데 다른 과학자들이 뇌 이미징은 안 되지만 세포 이미징에는 쓸 수 있겠다 해서 가져다 썼다. 이게 공초점 현미경 역사다."
▲투명한 세포 보기, ▲단백질 보기, ▲3D로 세포를 보기, 그 다음 단계로 사람들이 꿈꾼 기술은 해상도 한계를 넘어서기였다. 광학 현미경의 해상도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까? 그래서 나온 데 초고-해상도 현미경이다. 물리적인 한계는 그대로 놓고, 우회로를 찾았다. STED(유도방출억제)현미경 등이 나왔고, 연구자들이 노벨화학상(2014년)을 받았다. STED 현미경을 계기로 너도나도 물리적인 한계를 깨는 연구를 했고, 수 백 개의 초고-해상도 현미경 기술이 나왔다.
그 다음 단계로 사람들이 꿈꾼 건 데이터를 잘 해석하고 싶다이다. 2010년대 이후 흐름. 물리적인 하드웨어 개선을 넘어, 얻어진 데이터를 AI로 정교하게 해석하고 복원하여 해상도를 극대화하자는 거다. 구글의 AI가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여기까지가 현미경의 역사다. 박 교수가 "내 연구 이야기는 20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박 교수의 연구 이야기를 들으러 왔는데, 20분으로 충분할까 싶다.
독일 예나와 한국 대전
박 교수가 칼 자이스가 광학업체를 시작했던 독일 예나 얘기를 다시 꺼냈다. 예나는 인구 약 11만 명의 도시지만, 자이스, 쇼트(SCHOTT), 옌옵틱(Jenoptik) 같은 세계적 광학·포토닉스 기업의 발상지이자 거점이다. 이들 세 기업은 전 세계에 6만 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다. 연 매출이 자이스 18조 원, 쇼트 4조 원. 옌옵틱 2조 원. 옌옵틱이란 기업이 낯설다. 박 교수는 "우주항공 광학 쪽에서 잘하는 기업"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예나와, 카이스트가 있는 대전을 비교했다. 대전은 과학기술도시. 인구는 150만 명. 박 교수가 대전의 대표 기업을 조사했다. 대전의 매출 1위 기업은 한라공조(에어컨 부품, 9조 원), 2위는 KT&G(담배 인삼, 5조 원), 3위는 계룡건설(건설, 3조 원)이다. 성심당(빵집)이 2000억이다. 박 교수는 "대전이 과학기술도시인데 딥테크(deep-tech) 기업 하나가 없다. 좀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산업화 역사가 젊으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딥테크 기업이 대전과 같이 좋은 과학기술 인프라가 있는 도시에서 나와야 한다. 박 교수는 "그래서 내가 토모큐브(Tomocube)를 2015년에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대전 유성구 죽동에 기업이 있다.
현미경 기업들
올림푸스, 라이카, 칼 자이스, 니콘이 광학 기술 기반의 글로벌 빅4기업이다. 박 교수가 이들 시장 말고 일반인은 잘 모르는 거대한 시장이 있다고 했다. B2B기업들이다. HCS(High Content Screening)을 공략한다. 미국 기업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GE헬스케어, 독일 기업 사토리우스(Sartorius)다. 이들은 수천, 수만 개의 세포 샘플을 자동 형광 이미징으로 촬영하고, AI 기반 소프트웨어로 세포 내 미세한 변화(단백질 이동, 세포 사멸 등)를 고속으로 분석하는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그는 "이 회사들의 매출과 시가총액이 올림푸스와 같은 전통적인 광학 기업보다 10배 더 크다. 공초점현미경을 자동화해서 제약사에 팔면서 시장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딥테크 기업을 만들려면 이미 있는 시장에 들어가서는 할 게 거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 시장이 작지만 앞으로 시장 성장이 굉장히 가파르고 클 수 있는 분야에 들어가서 표준 기술을 만들어야 글로벌 기업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뭐가 중요해질까를 생각할 때 3차원 생물학이 유망하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생물학 연구와 신약 개발과 진단치료는 모두 2차원 기반이다"라며 "그런데 최근에는 생명을 3차원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3차원 생물학에서 기회를 보다
오가노이드는 미니 장기라고 한다. 3차원으로 생체 조직을 배양하는 기술. 박 교수는 "오가노이드가 연구와 신약 개발을 바꾸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약 개발을 위해 현재는 세포 실험을 먼저 한다. 신약후보물질에 독성이 있나, 효능이 있나를 본다. 그런 뒤 동물 실험을 한다. 약에 독성이 있는지를 본다. 독성이 없으면 사람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시험으로 간다. 임상에서 독성이 있는 걸로 나오면 그때까지 쓴 돈 수 조원을 날린다. 동물 시험에서 독성이 확인되지 않은 건 다른 동물과 사람의 면역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 기업 로슈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간 개발에 실패한 약물을 끄집어내, 사람 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에 쳐봤다. 그랬더니 독성이 보였다. 동물 시험에서는 독성이 보이지 않아, 사람 대상 임상에 갔으나 독성이 나와서 포기한 약물이었다. 그렇다면 동물 시험을 건너뛰고 바로 오가노이드에 쳐보면 된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에서는 FDA에 신약 판매 신청을 할 때 동물 실험을 요구하지 않는 쪽으로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이미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만을 필수로 요구하던 규정이 완화됐다(FDA Modernization Act 2.0). 이어 FDA는 2025년 동물실험을 줄이고 오가노이드, 장기칩, AI 기반 독성 예측 등 새로운 접근법을 활용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관련 규정을 더 명확히 정비하는 관련 법(FDA Modernization Act 3.0)도 2025년 말 상원을 통과해 하원으로 넘어갔다. 이게 입법화되면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든다.
치료 시장의 잠재력은 더 크다. 암 환자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암 치료는 여러 가지 발전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에 가깝다. A약을 먼저 쓴다. 안 들면 B약을 쓴다, C약을 써보자, 는 식이다.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환자 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다면, 치료 방향이 달라진다. 환자 세포로 환자의 조직 오가노이드를 수십 개 만들고, 거기에 각각 다른 약을 쳐본다. 그러면 어느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3D생물학이 앞으로 커질 텐데, 그러려면 3차원으로 봐야 하고 염색을 하면 안 된다. 이게 토모큐브가 본 시장에서의 기회다"라고 말했다.
3차원 생물학 시장
그에게 "홀로토모그래피란 용어는 직접 만들 걸로 알고 있다. 언제 만들었느냐"라고 물었다. 박 교수는 "내가 만들었다. 이렇게 하자. 쭉 설명을 드릴 테니, 그리고 궁금한 내용들이 대부분 슬라이드에 있다. 그게 가장 쉽게 내 연구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질문을 멈추고 그의 설명을 계속 청취했다.
오가노이드 내부를 보는 기술이 홀로토모그래피다. CT가 여러 방향에서 얻은 X선 정보를 컴퓨터로 합쳐 몸속 3차원 구조를 재구성하듯, 홀로토모그래피는 여러 각도에서 빛을 비춰 세포 내부의 3차원 굴절률 지도를 만든다.
박 교수의 연구 분야 이름이 뭔가? 홀로그래피 현미경? 박 교수는 "QPI(정량 위상 이미징) 분야"라고 말했다. '위상(phase) 이미징'은 오래 됐고,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게 '정량 위상 이미징'이다. 투명해서 안 보이던 세포를 보이게 만들려고(위상 통제),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해 3차원 정보를 기록하는 기술(홀로그래피)을 결합한 분야다. 그 결과, 세포의 무게와 두께를 숫자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QPI)이 탄생했다. X선 촬영 분야를 보면, 2차원 엑스레이가 있고 3차원 CT가 있다. 위상 이미징 분야에도 2차원 이미징, 3차원 이미징(홀로토모그래피)이 따로 있는 거다.
정량 위상 이미징 분야를 대표적으로 이끌어온 연구자는 누구인가? 박용근 교수,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의 크리스티안 드푀르생주(Christian Depeursinge),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의 개브리엘 포페스쿠(Gabriel Popescu) 등이 꼽힌다. EPFL 연구자는 은퇴했고, 그의 제자가 창업을 했다. 박 교수는 기술력에서 토모큐브와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개브리엘 포페스쿠는 박 교수와 같은 MIT 분광학 랩 출신. 박 교수가 박사과정 때 그는 박사후연구원이었다. 그는 얼마 전 사고로 사망했다.
지금은 QPI 분야가 커졌다. 미국의 주요 대학에는 '정량 위상 이미징' 연구자가 있다. 1세대 연구자인 박용근 교수는 지난 2015년 관련 국제 학회(QPI conference)를 만들었고, 의장을 맡고 있다. 매년 학회를 열고 있고, 올해의 경우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학회를 열었다. 500여명이 참석했다. QPI 기업도 20개 정도 된다. 한국에도 QPI 연구자가 10명 정도 된다. 분야가 계속 커지고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들어오니, 분야가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
홀로그래피 현미경 만들어주기
현미경을 만들어 찍는 것마다 논문이 나왔다. 적혈구, 백혈구는 아무도 안 찍어본 것이었다. 논문을 쓰는 게 재밌었다. 1년에 논문을 수십 개씩 썼다. 공동 연구자가 샘플을 맡기면 이미징해줬다. 그러다가 이게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박 교수는 아예 공동연구자들의 실험실에 장비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을 보내서 그 연구자가 자신의 돈으로 3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 부품을 사놓은 걸 조립해줬다.
문제는 한 달 정도 지나면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레이저가 틀어진다. 그러면 튜닝을 다시 해줘야 한다. 1주일을 또 못 버틴다. 그래서 생각한 게 제품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토모큐브를 창업했다.
초기에 영업이 쉽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산 장비 두고 굳이 한국산 쓸 필요가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 고객은 2017년 일본의 세포 생물학자였다. 제품 이름은 HT-1H. 1세대 제품이다. 지금은 2세대 제품. HT-X1이란 이름으로 팔고 있다. 2022년에 2세대 장비를 내놨고, 세 종류가 나와 있다. 200여개 기관에 팔려나갔다. 바이엘, MIT, 미국 메이요 클리닉, 미국 공군연구소 등. 제품은 고가이나, 비싸서 안사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제일 좋은 마케팅은 고객이 출판한 논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최상위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 3편이 나왔다. 지금까지 나온 고객들 논문은 410편이고, 올해 들어서만 29편이다.
박 교수는 "우리 연구실은 3D 이미징과 AI를 결합해 생명현상을 더 잘 관찰하고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고 있고,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라고 자랑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 거다. 사람이 영상을 보고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을 넘어서고자 한다. AI가 세포와 조직의 변화를 더 정밀하게 인지하고 그 의미까지 해석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마빈 민스키의 꿈을 실현해주다
그가 동영상 몇 개를 보여줬다. 간암 세포주를 홀로토모그래피로 찍은 4D 영상이었다. 3차원 입체 사진(3D)을 시간 흐름에 따라 연속 촬영(타임 랩스)하여 만든 영상이다. 세포 안에서 미토콘드리아가 실타래처럼 뭉쳤다 풀렸다를 반복한다. 박 교수는 "미토콘드리아가 교과서에서 본 이미지에서는 강낭콩처럼 보인다"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죽은 미토콘드리아만 찍어서 그렇다. 세포를 죽이고 진공상태로 금속 코팅을 해서 미토콘드리아를 봐 왔다. 그러면 미토콘드리아 구조가 깨진다. 우리는 그동안 비정상적인 미토콘드리아만 봐 왔다. 또 미토콘드리아를 보려고 형광단백질을 쓰면 미토콘드리아 모양이 변한다. 정상적인 미토콘드리아가 실타래 모양이라는 게 알려진 게 몇 년 안 됐다. 얘네들이 서로 붙었다가 합쳤다고 춤추듯 한다는 게 얼마 안 된 지식이다."
왜 붙었다 떨어졌다 할까? 박 교수는 "모른다. 우리가 세포에 대해 대부분 모른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동영상 속의 하얀 색 방울들은 지방 덩어리라고 했다. 방울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박 교수는 "암세포들은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지방까지 최대한 끌어다 쓴다. 암세포에는 지방이 많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본 동영상은 신경세포 네트워크의 3차원 이미지다. 사람 뇌의 신경세포를 떼어다가 3D 배양을 했다. 박 교수는 "AI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빈 민스키가 보고 싶었는데 못 봤던 거다"라고 말했다. 신경세포들이 화면에 몇 개 보이고, 신경세포간에 수 없이 많은 물질이 오가는 게 보인다. 한 신경세포에서 돌기를 뻗어 다른 신경세포로 연결되는 모습도 있다. 새로운 신경망을 만들고 있다. 박 교수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면 뇌 속에 새로운 신경망이, 새로운 연결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놀랍다. 놀랍기 짝이 없다. 나의 입이 쩍 벌어진다. 이럴 수가! 이 영상은 토모큐브 제품을 사간 고객이 찍은 거다. 논문을 현재 쓰고 있다고 했다.
홀로그래피 현미경과 AI 접목
지금 박 교수 연구실이 집중하는 문제 중 하나는 체외수정(IVF)에 쓰이는 수정란 선별이다. 가장 건강한 수정란을 골라야 하는 게 난임 클리닉에서 하는 일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전문가들이 현미경으로 보고 예뻐 보이는 걸 고른다. 경험으로 하니, 병원들마다 착상 성공률이 다르다. 3차원 홀로토모그래피 장비로 찍으면 과거에 못 보던 3차원 정보가 나온다. 정량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좋은 수정란을 골라내주는 AI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차병원, 영국 에비뉴 병원과 공동 연구 중이다. 이밖에도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바이오/의학 응용, 줄기세포 품질 관리, 3D 암 진단 등에 힘쓰고 있다.
네이처 포토닉스에 발표한 신 기술
박 교수를 찾아간 건 지난 4월 최상위 광학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에 발표한 내용이 무엇이냐를 묻기 위해서였다. 사전에 자료를 찾아보니 새 기술 이름은 'iDTT'(incoherent dielectric tensor tomography)'였다. 인터뷰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났다. 박 교수에게 자꾸 걸려오는 전화가 있었다. 고객 전화였다. 인터뷰를 끝내야 했다. 끝내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iDTT는 박 교수가 추구해온 방향을 잘 보여주는 기술이다. 기존 현미경이 세포의 모양을 보는 데 그쳤다면, iDTT는 물질 내부의 방향성까지 3차원으로 측정하려는 시도다. 박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더 잘 보고, 더 정확히 해석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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