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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은사'는 사민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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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은사'는 사민주의자였다!"

[복지국가SOCIETY] "리영희 선생이 가르친 길은…"

지난 12월 5일, 한국 현대 지성사의 큰 별이자, 전후 세대에게 '사상의 은사'였던 리영희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슬프고 또 슬픈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서로에게 묻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사상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 질문은 후학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그러므로 "리영희 선생은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휴머니스트"(김삼웅)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답변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리영희 선생의 사상의 궤적을 '있었던 모습 그대로' 추적하면서 공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가지를 손가락으로 짚고 싶다. 1974년에 펴낸 <전환시대의 논리>가 주었던 지적 충격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20년 후인 1994년에 펴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언급하는 사람은 적다. 그것은 과연 온당한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아직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고 유신독재가 한창이던 1974년에 쓴 책과 자본주의 경제발전이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진행되고 정치적 민주화까지 이루어내었으며, 때마침 세계사적으로도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체제가 무너지는 대변혁이 있었던 시기 이후인 1994년에 쓴 책은 그 시대적 배경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리영희 선생만큼 정직한가?

리영희 선생은 1991년 1월 26일, 연세대 장기원기념관에서 "변혁시대 한국 지식인의 사상적 좌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그리고 강연의 요지를 정리하여 <신동아>에 기고하였는데, 그 글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날 리영희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지식인들의 과거의 지적 활동을 돌아보면서 인간이 과연 '이성적 동물'인가 하는 회의에 빠지는 때가 많다." "지금의 나는 과거와는 달리 인간 이성에 대한 신념이랄까 확신 같은 것이 약화되었다고 고백해야 하겠다."

이어서 이런 말씀도 하였다. "나는 괴로운 심정으로 생각하곤 한다. 인간성은 본질적인 것으로서 사회 환경의 개조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기주의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제도를 낳은 바로 그 인간성이다." "도덕주의적 인간과 사회의 실현은 꿈일 뿐이란 말인가?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 믿고자 하고 믿기도 했던 나는 비과학적인 이상주의자(또는 심하게 말해서 몽상병 환자)였던가? 지난 얼마 동안의 나의 자기비판과 고민은 이 문제를 놓고 계속되었다." 이 얼마나 정직한 고백인가?

역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 실려 있는 것으로, 1991년 6월 25일 한국일보 장명수 편집부국장과의 인터뷰에서는 리영희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거대한 역사적 변혁 앞에서 지적 갈등을 겪고 있고, 지적 오류와 단견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이미 객관적 검증으로 부정된 부분을 사상적 일관성이라는 허위의식으로 고수하려는 것은 지식인다운 태도가 아닙니다." "(동유럽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그의 철학적 성찰에 이르고 있는가?

요컨대, 그는 동유럽과 소련의 공산주의 붕괴를 보면서 깊이 인식론과 인간관에 이르는 철학적 성찰을 하였고, 이성주의를 넘어서서 경험론에 이르고, 성선설에서 벗어나서 성악설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사회경제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자'로 입장을 재정립하였다. 한국일보 인터뷰에서도 선생은 다시 한 번 "나의 노선은 사회민주주의"라고 분명히 밝혔다.

장기원기념관 강연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서독은 자본주의이지만 사회주의 사상, 학문, 운동의 전통이 깊고, 사회주의 정당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집권까지 하는 국가이다." 다시 말해서 서독이 사회주의라고 자칭하던 동독보다 더 사회주의적인 나라, 인민이 더 살기 좋은 복지국가였다는 사실이 독일의 평화적 통일의 기본 조건이고 힘이었으며, 그러한 사실이야말로 독일 통일의 교훈이라는 것이다.

또 선생은 "남한은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북한은 시장경제를 수용하여 사회의 기본적 성격을 수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선생은 '통일의 열정'에 들뜬 통일 논의에 찬동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진정 통일을 앞당기는 일은,…남, 북의 사회를 서로 융합할 수 있을 만큼 변혁시키는 노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많은 "언제나 선생의 뒤를 따르던"(2010년 12월 6일자 <한겨레> 사설) 사람들 가운데 사회민주주의자가 된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20년 전부터 선생을 따르지 않았다는 말인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대부분 리영희 선생만큼 깊은 철학적 성찰을 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선생만큼 용기가 없었던 건 아닐까?

돌아가신 후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시대를 선생과 같이 살았던 '제자'들보다 오히려 젊은 신세대 기자가 쓴 글에서 그를 '사회민주주의자'로 자연스럽게 부르기도 한다. 그것은 아직 선생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이 그에게서 너무 멀리 뒤쳐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1991년 연세대 장기원기념관 강연에 대해 많은 제자들이 반발하였다. 그래서 오히려 그걸 예상하고도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은 선생을 우리는 정직한 사람이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지식인이라고 본다.

또 다른 의문도 가져본다. 선생께서 책의 이름을 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고 붙이셨을까? 그는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깊이 성찰하고 크게 수정하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좌파로 남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상의 은사'는 사회민주주의자였다

▲ 고(故) 리영희 교수. ⓒ프레시안(김하영)
우리는 이렇게 본다. 반공주의만이 유일하게 허용된 사상으로 청년들의 머리를 지배할 때, '사상의 은사'는 반공주의의 우상을 깨트렸다. 그리고 80년대 말 동유럽이 무너지고 75년간 계속된 인류사의 대실험이 종료되었을 때, 그는 공산주의 우상을 깨트리고 사회민주주의를 말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선생의 정직한 고백에 힘입고 용기를 내어 사회민주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고, 사회민주주의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먼 훗날 이 땅에 꽃피울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리영희 선생에게 크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사상의 은사'는 다른 무엇보다 그가 남긴 사상으로 추억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사상가 리영희 선생의 사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럼에도 그를 사회민주주의자라 부르면 혹시 고인에게 실례가 되고 그분에 대한 추모의 대열을 축소시키지 않을까 걱정한 건 아닐까? 그래서인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사회민주주의자로서 리영희를 말하지 않는데, 멀리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쉽게 사회민주주의자로서 선생을 말한다.(위키백과사전을 찾아보라!)

비록 지금은 사정이 이러하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누구나 리영희 선생을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가르친 지식인으로 기억하는 날이 올 것이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추도사에서 "우리들은 선생이 가르친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고 해도"라고 말하였다. 선생이 가르친 길은 사회민주주의의 길이요, 복지국가 건설의 길이다.

이미 20년 전에 선생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실현가능한 목표이자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기도 하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지적인 정직성도, 용기도, 철학적 사유의 깊이도 부족한 후학들이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 10년 동안 선생은 건강이 악화되어 문필 활동을 하시지 못하였다. 만약, 선생이 건강하셨다면 21세기 초에 나타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건설에 나선 젊은 지식인들을 격려하시고 큰 도움을 주셨을 것이다.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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