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다섯 살.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나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올가을 다시 학생이 됐다. 삼육대학교 사회복지·디지털통합돌봄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섰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 나이에 왜 다시 공부하느냐고.
내게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그 숙제의 한가운데에는 내 아이가 있다. 올해 스물아홉 살이 된 아이는 발달장애가 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위해 살아왔다고 믿었던 엄마가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이야기, 생각을 바꾼 작은 변화가 어떻게 지역사회와 제도를 향한 질문으로 커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오랫동안 나는 좋은 부모란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워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치료와 훈련을 통해 아이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라고 믿었다. 무엇을 얼마나 해낼 수 있게 되었는지가 내 노력의 척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마음 한구석에서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내 아이는 행복한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동안, 정작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지 충분히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무렵 만난 것이 ‘사람중심생각(Person-Centered Thinking·PCT)’이다. 그동안의 익숙한 생각을 뒤집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이를 끊임없이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대신, 아이가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과 환경을 마련하는 것. 변화의 출발점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었다.
아이의 선택을 조금 더 기다리고, 작은 반응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가족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무엇보다 아이를 위해 결정한다고 믿었던 많은 일에서 정작 아이의 뜻을 놓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사람중심생각은 한 사람을 장애나 진단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저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소중히 여기는 관계와 이루고 싶은 바람을 지닌 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잊히는 원칙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질문이 함께 놓인다. ‘그 사람을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와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건강과 안전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보호자가 생각하는 안전하고 바람직한 삶이 당사자가 원하는 행복한 삶과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중심실천은 어느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를 함께 살피며 가능한 길을 찾자는 것이다. 좋아하는 활동을 무조건 막기보다 안전하게 즐길 방법을 찾고, 미리 정해 둔 생활에 아이를 맞추기보다 아이가 원하는 생활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다.
말로 자신의 뜻을 충분히 전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는 더욱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말이 적다고 바람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표정과 몸짓, 되풀이되는 선택, 사소해 보이는 반응 속에도 분명한 뜻이 담겨 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그 언어를 읽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아이를 살피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내가 아이의 표현을 더 주의 깊게 살피고 존중하자 아이도 자신의 뜻을 한층 적극적이고 다양하게 드러냈다. 나는 아이에게 표현 능력이 부족하다고만 여겼지만, 어쩌면 부족했던 것은 그 표현을 알아듣는 내 능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중심실천은 아이를 잘 안다는 확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겸손에서 시작한다. 묻고, 살피고, 기다리고, 다시 묻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내 질문도 더 넓어지고 확장됐다. ‘내 아이는 행복한가’에서 ‘발달장애인이 자신이 살아온 지역사회에서 온전한 시민으로 원하는 삶을 살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로.
발달장애인 부모회 대표로 활동하며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부모들을 만났다. 한 가족의 애씀만으로 넘기 어려운 벽이 곳곳에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회의 환경과 제도, 지원체계가 함께 달라져야 했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발달장애 당사자와 부모가 함께하는 ‘함께봄’ 협동조합을 꾸렸다. 당사자의 삶을 옹호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갈 길을 함께 찾기 위해서였다. 2021년 사람중심생각(PCT) 트레이너가 된 뒤에는 전국의 어머니들을 만나 교육했다. 교육이 일회성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도록 참여자들이 자조모임을 만들고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일도 도왔다.
2025년부터 2026년에 걸쳐서는 ‘Charting the LifeCourse(CtLC·생애주기 설계)’ 앰배서더 과정을 이수했다. CtLC는 당사자가 바라는 ‘좋은 삶’을 중심에 두고 생애 전반에 필요한 지원과 자원을 함께 설계하는 틀이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일의 삶까지 그려 보는 접근이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2026년 4월 삼육대학교 윤재영 교수와 공동위원장을 맡아 ‘사람중심실천과 좋은 삶의 비전’을 주제로 ‘2026 K-PCP SUMMIT’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발표한 8대 의제의 방향은 분명했다. 발달장애인을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전 생애에 걸쳐 자기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로 존중하자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부모회와 협동조합, 전국의 교육 현장으로 나를 이끈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다. ‘내 아이는 행복한가.’ 그 질문 하나가 내 삶의 반경을 넓혔고, 마침내 연구의 문 앞에 세웠다.
현장은 내게 가장 큰 배움터지만 동시에 현장의 목소리만으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현실도 보았다. 부모들의 절박한 호소가 곧바로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경험을 공유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경험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하며 변화의 근거를 마련할 필요를 느꼈다. 현장의 언어를 연구의 언어로 다듬고, 다시 제도의 언어로 옮기고 싶었다.
박사과정에서 탐구하려는 주제는 ‘발달장애인의 좋은 삶을 모색하는 가족구성원의 사람중심 실천 경험’이다. 가족들이 사람중심생각을 일상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달라지고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는지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그 결과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과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뒷받침하는 정책과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데 작은 근거가 되기를 바란다.
연구가 논문 속에서만 머문다면 내가 다시 공부하는 이유도 반쯤 사라질 것이다. 현장에서 길어 올린 질문이 연구를 통해 깊어지고, 그 성과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것. 현장과 연구, 제도 사이에 그런 다리를 놓고 싶다.
나처럼 현장에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고 서로 연결되었으면 한다. 이 글에서 내가 공부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육대학교 사회복지·디지털통합돌봄학과는 2023년 문을 연 대학원 계약학과다. 사회복지학과를 모체로 새로운 돌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재교육형 과정으로, 대학과 협약을 맺은 기관의 종사자가 일을 계속하면서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운영된다. 교육의 중심에는 돌봄의 당사자를 수동적인 보호 대상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체로 존중하는 사람중심실천이 있다. 디지털 기술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연계해 통합돌봄(Integrated Care)을 구현하는 것도 중요한 지향점이다.
이 과정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장을 떠나지 않고 현장에서 품은 질문을 학문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운 것을 실천하고, 실천에서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는 공부다. 석사과정은 1년 단기과정, 박사과정은 2년(4학기) 과정으로 운영되며, 본인 부담 수업료는 전체의 약 30%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현장 종사자라면 경제적 부담을 덜고 학위에 도전할 수 있다. 2027학년도 전기 원서 접수는 2026년 12월 18일 시작되며, 자세한 사항은 삼육대학교 일반대학원 교학팀에서 안내받을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단지 대학원 진학 자체가 아니다. 현장의 경험이 배움으로 단단해지고, 그 배움이 다시 현장을 바꾸는 선순환이 더 많은 곳에서 이어지는 일이다.
앞으로도 ‘함께봄’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사람중심실천을 이어 갈 것이다. CtLC 부모 실행공동체 ‘라이프코스 커넥터스(LifeCourse Connectors)’를 넓히고, 삼육대학교 사람중심실천 연구소(IPCP)를 기반으로 실천 인력을 양성하고 연구를 발전시키는 일에도 힘을 보태려 한다. CtLC 프레임워크를 개발한 미국 미주리대학교 캔자스시티 캠퍼스(UMKC) 등과의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한 가족의 경험이 다른 가족의 길잡이가 되고, 현장의 작은 실천이 제도의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내 공부의 출발점은 학위가 아니었다.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바꾸려 했다. 이제는 아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아이를 둘러싼 세상을 바꾸고 싶다. 사회복지사와 연구자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그 모든 이름보다 먼저 나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엄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발달장애인이 남이 정해 놓은 삶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세상이 아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꿈꾸고 선택하며, 그 선택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한 아이의 행복을 묻던 질문이 더 많은 사람의 좋은 삶을 향한 연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예순다섯 살의 내가 다시 책을 펼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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