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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트럼프에 직접 편지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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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트럼프에 직접 편지 보내라

[정욱식 칼럼] 김계관의 담화, 트럼프 발길 되돌리기 어렵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사상 초유의 불확실성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3월 8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수락이 전격적이었던 것 이상으로 5월 24일 회담 취소 발표는 충격적이다.

실무 총책임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북미 정상회담에 낙관적인 발언을 했고, 주말이나 다음 주 초에는 싱가포르에서 고위급 실무 접촉도 예정되어 있었다. 트럼프 본인도 "다음 주에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민주주의와 정상간 외교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숙의 과정이 독불장군식의 기질 앞에서 질식한 셈이다.

트럼프는 왜 그랬을까? 일단 24일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단화에 자극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트럼프가 편지에서 "당신들의 가장 최근 발언에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볼 때, 지금 시점에서 오랫동안 계획돼온 이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아울러 최선희가 맹공을 퍼부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의 런닝메이트라는 점도 주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또한 최선희의 담화 가운데 두 가지 내용이 트럼프의 눈에 거슬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우리도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며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있다"고 밝힌 구절이다. 이는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보좌관에 이어 펜스도 리비아의 전철 운운한 것에 대한 북한식의 익숙하지만 거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의 마초 기질을 자극하고 말았다. 그는 정상과의 악수 대결이 상징적으로 보여준 힘겨루기에서 밀리는 것을 대단히 싫어한다. 올해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 단추" 발언에 "내 핵 버튼은 더 강력하고 작동도 한다"고 맞받아치기도 했었다.

이러한 기질은 트럼프의 편지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이 매우 엄청나고 막강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이 절대 사용되지 않기를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고 한 것이다. 이 발언이 공개적으로 "친애하는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노골적인 협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하나는 최선희가 "(미국이) 먼저 대화를 청탁하고도 마치 우리가 마주앉자고 청한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라고 말한 부분이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은 김정은이 3월 초에 방북한 문재인 정부 특사단에 트럼프를 "가능한 빨리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으로부터 이 메시지를 전달받은 트럼프가 "영구적인 비핵화를 위해 5월 이내에 만날 것"이라고 화답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선희는 "미국이 먼저 대화를 청탁"했다고 주장했고, 트럼프는 "북한이 이 회담을 요청했다고 (한국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반박했다. 실체적 진실의 향방에 따라, '중매'에 나섰던 문재인 정부가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릴 수도 있는 대목이다.

▲ 24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 취소와 관련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물론 이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바로 그것이다. 트럼프가 원하는 결과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그리고 대단히 빠른(CVI+Fast) 비핵화'였다고 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탈퇴를 선언한 이란 핵협정보다 더 강력한 합의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고수했고, 김계관과 최선희는 CVID에 대한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의 정상회담 취소 발표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직후에 나왔다. 안타깝게도 트럼프는 비핵화 여정을 향한 북한의 '행동'보다 최선희의 담화 형식으로 발표된 북한의 '말'에 경도되고 말았다. 북한에 대한 무지가 불러온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북미 양측의 공개적인 언사는 서로에게 공을 넘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가장 중요한 회담과 관련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계관은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며 "아무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했다. 서로를 향해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그 의사 표현을 먼저 해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한편 김계관은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의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걸리는 대목도 있다. 트럼프는 "친애하는 위원장" 김정은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는데, 김정은은 김계관의 담화 형식으로 "위임"해 답장을 보낸 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편지에 대해 한참 직책이 낮은 김계관이, 그것도 북미정상회담 "재고려"를 처음으로 언급한 인물의 답변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임에 따라"는 곧 김정은의 담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북한의 독특한 전략 문화는 잘 모르는 반면에 인정 투쟁 욕구는 대단히 강하다. 이에 따라 북한의 답변에 트럼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거꾸로 김정은이 트럼프를 잘 모르는 것도 매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김계관의 담화에 담긴 것처럼 김정은은 북미정상회담을 강력히 원하고 있고, 또한 '트럼프 방식'도 논의할 의사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본인 명의의 담화가 훨씬 효과적이다. 하루빨리 김정은이 직접 담화를 발표하거나 트럼프에게 답장을 보내야 할 까닭이기도 하다.

가장 난처한 입장에 직면한 쪽은 문재인 정부와 우리 국민들이다.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가 한미 정상회담 이틀 뒤에 나왔을 뿐만 아니라, 정의용 실장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두고 "99.9%"라고 말했던 것과 너무나도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 발언의 행간에는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확신했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의 변심 가능성에는 대비하지 못했다. 이른바 '운전자론'과 낙관론에 도취된 나머지 시야가 흐려진 것은 아니었는지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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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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