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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운전석'에 앉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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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운전석'에 앉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정욱식 칼럼]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의 '운전석'에 앉으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워싱턴 행 전용기에서 '북핵 2단계 해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조건부 대화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대화의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며, "최소한도로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 동결 정도는 약속을 해줘야" 한다는 점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둘째, '행동 대 행동'의 접근법이다. 문 대통령은 "핵 동결을 핵폐기를 위한 대화의 입구라고 생각하면 핵동결에서 핵폐기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단계에서 서로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1단계 목표로 제시한 북한의 핵동결에 대해서는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아니면서 한미가 북한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인 "보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북한의 핵동결과 한미 군사훈련은 연계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2단계, 즉 "북한이 기왕에 만든 핵무기와 핵물질을 모두 폐기하는 단계로 갔을 때 한미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26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이라며 "평화협정은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단계에서 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셋째, 검증이다. 문 대통령은 "각 단계의 하나하나가 완벽히 검증돼야 한다"며 "서로 검증이 확실히 될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단계적이면서도 철저한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끝으로 일종의 경고성 '플랜 B'이다. 이는 북한이 핵동결, 더 나아가 핵폐기 약속을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핵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국제사회에게 완전히 고립돼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명분을 세워주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 미국 방문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이륙한 뒤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해법이 역부족인 이유

이러한 문 대통령의 '북핵 해법'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나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당신이 운전석에 앉으십시오"라고 말해도 막장으로 치달아온 한반도 정세의 반전(反轉)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많지만, 중요한 문제 몇 가지만 거론하고자 한다.

문재인-트럼프의 대북공조는 이명박·박근혜-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두 정상 역시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여러 차례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문재인-트럼프의 대북공조도 '전략적 인내'의 틀에서 맴돌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 중단 및 "핵동결 약속 표명"을,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조처를 하고 도발을 자제하는 것"을 대화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화의 전제 조건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기실 이러한 내용은 한미 양국의 '전략적 인내' 시기에 지겹도록 반복되어온 것이다. 그 결과는 대화의 문은 더욱 굳게 닫히고 북핵은 나날이 고도화된 것이었다.

진정으로 '전략적 인내'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대화를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던 과거와 결별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는 것은 그 출발점에 해당된다. 문재인 정부가 꼭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또한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나쁜 행동", "악행", "불법", "도발"로 규정하고 이를 공식화하면, 역설적으로 한미 양국의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시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근거로 작용한다. 거꾸로 북한이 이런 행동을 중단해도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 축소나 중단과 같은 상응조치를 "악행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하면서 그럴 의사가 없다는 입장 표명으로 이어지고 만다. 그 결과는 '전략적 인내' 시기에 똑똑히 봐왔다. 그런데 위에서 소개한 문 대통령의 발언도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출발은 이러한 반성에서 비롯될 수 있다. 북핵에 대해 도덕적·규범적 이름짓기로 한미 양국의 선택지를 좁히기보다는 북한에 핵과 미사일이 아니라 '다른 방식에 의한 안보'가 가능하고 더 우월하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여 제재와 국제적 고립화를 통한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은 '대북 협상을 통한 최대의 압박'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이 한미 양국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안겨줄 것이며, 실질적인 성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검증 문제 역시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역설한 철저한 검증의 당위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위적인 것이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게 바로 북핵 검증에 해당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북핵 동결 및 검증 논의가 시작되면 당장 불거질 문제가 바로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 여부이다. 이 시설은 은폐가 대단히 용이하기 때문에 북한 전역을 샅샅이 사찰하지 않는 한, 철저한 검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미 양국과 "기술적으로 교전 상태에 있는" 북한이 전면적이고도 강제적인 사찰을 수용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북미간의 적대적인 관계의 평화적인 관계로의 전환이다. 즉, 한미 양국이 군사훈련 하향 조정 및 평화협정 체결에 보다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북한의 검증 체계에 대한 대폭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운전석에 앉으려면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며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원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운전석에 앉는 것이 1차적인 목표라면, 궁극적인 목표는 운전대를 잡고 한반도 비핵평화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실패한 정책, 즉 '전략적 인내'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면서 한국식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식 해법의 사례는 김대중 정부 때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첫해인 1998년 8월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금창리 핵 의혹 사건과 뒤이은 북한의 3단계 로켓 광명성 1호(대포동 1호) 발사로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었다.

당시 미국 내에선 제네바 합의 파기론과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미사일 방어체제(MD) 논의가 극성을 부렸다. 심지어 예방적 대북 선제공격론도 불거졌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대북정책 재검토에 착수한 클린턴 행정부를 집중적으로 설득해 한국 주도의 '페리 프로세스'를 탄생시켰다. 가히 한미관계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북정책 공조가 아닐까 한다. 미국의 정권교체로 종착역을 앞에 두고 탈선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DJ 주도의 페리 프로세스가 오늘날 전하고 있는 교훈은 단순 명쾌하다. '복잡해 보이는 한반도 문제를 단순화하라'. 스티브 잡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잡함의 궁극은 단순함"에 있으며, 복잡해 보이는 한반도 문제의 단순함은 바로 '냉전 구조'에 있다. DJ가 미국에 '한반도 냉전 구조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법을 찾자'고 제안하고 설득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바로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냉전 구조 청산, 즉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출구'로 상정할 것이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도, 평화체제도 과정을 요한다. 그래서 입구에서는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 반환점에서는 '북핵의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동결과 한반도 기본(혹은 잠정) 평화협정 체결', 출구에서는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 완료'와 같은 경로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북핵은 64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정전체제라는 비정상적인 토양에서 자라난 독버섯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북핵이 더 자라지 않고 뿌리를 뽑으려면 정상적인 토양, 즉 평화체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년이면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평화협정 원년으로 삼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이 운전석에 앉을 수 있고, 비핵평화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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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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