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를 둘러싼 몇가지 논쟁점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첫번째의 주장은 인적자본 외에는 자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은 당연히 수출중심의 개방경제를 추구해야 하며, 기왕에 개방경제를 지향해야 한다면 우리 스스로 보다 능동적으로 이를 주도해가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한미 FTA를 먼저 제기했던 노무현 정부의 주요 요지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논리의 일반성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에 함께 하고자 한다.
한국경제의 규모가 셰계 14위권에 이르고 OECD 회원 중 모범국가로 평가받는 데는 브레튼우드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특히 제3세계에서는 유일하게, 중화학공업과 첨단기술 중심의 산업을 일으킨 수출주도형 산업정책이 성공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일을 진행함에는 배경를 세밀히 살펴 선후와 경중, 그리고 완급의 조정이 필수적임을 명심해야 한다.
상품 중심의 개방경제를 넘어서 금융과 투자, 서비스와 지적 재산권을 강화하고, 이에 반하는 개별국가 단위의 독자적 경제 산업정책을 제약하고자 하는 한미FTA는 단순한 상품 중심의 교역에 경쟁력을 상실한 미국의 새로운 세계 지배 전략 그리고 단순한 경제를 뛰어넘는 정치적 군사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여기서 나는 김영삼 정부의 실책을 되돌아 보고자 한다. 문민정부는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에 걸려, 준비도 없고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세계화를 외치며 안전기제도 없이, 무책임하게 금융시장을 덜컥 개방하였다가 소위 말하는 IMF 상황을 맞이해서 대다수 국민들에게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불과 십여년 전의 일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들은 희망이 없다고 한다. 왜 다시 비슷한 실책을 되풀이 하려 하는가? 제약의 강도가 훨씬 약한 한-EU FTA 효과가 오히려 부정적으로 의심을 받는 이 시점에서 무엇 때문에 한미FTA 그토록 서둘려 하는가?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두번째 주장은 여하한 한미FTA는 한국경제의 양적 성장과 지표의 확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여전히 세계에서 소비시장의 규모가 가장 큰 미국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주요하다는 논리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한미 FTA 추진론자들의 참으로 미숙하고 순진한 측면을 읽어본다. 유치한 장사꾼 논리와 무책임한 직업적 관료들의 한계를 한껏 드러낸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미국의 전략은 이미 경쟁력의 바닥을 드러낸 상품 중심의 교역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우위를 차지하는 무형적 거래 즉, 금융과 유통, 법률과 회계 및 컨설팅 등의 서비스업, 제약과 의료서비스 등에서 세계적 지배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데 있다 할 것이다.
상품교역 시장 영역에서도 평균관세율이 2-3%에 불과한 미국 시장과 7-8% 관세를 포기해야 하는 한국 시장은 출발부터 불평등한 조건이다. 연방정부와 자유무역을 체결한다 해도 미국 예산의 반을 차지하는 주정부 단위의 공공분야에서는 여전히 바이-아메리카 또는 현지화의 요구가 그대로 살아있다. 이미 월등한 경쟁력을 확보한 전자 및 IT 산업에서는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효과를 이야기하나 실제 현대자동차 실무자들의 이야기로는 현대차의 향후 전략이 미국 내 현지 생산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부품산업의 일부 효과 이외에는 별로 이득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가장 효과를 보는 분야는 섬유와 의류분야 등 일부 소비재 산업분야로 한정된 셈이다. 이에 비해서 한국 사회가 미국에게 내주어야 할 분야는 위에 언급한 무형적 서비스 산업과 의료분야, 그리고 산업 경제의 정책적 주권 제약 등 참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한-EU FTA를 체결할 당시 이명박 정부는 그 효과에 대해 핑크색 일변도의 그림을 내놓았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서 보면, 수입은 예상대로 상당히 급증하는 반면, 수출은 오히려 줄어 들고 있다는 보고 기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한-EU FTA를 비난할 의사는 조금도 없으며, 굳이 말하자면 여전히 51점 정도를 주고 싶다. 수출이 줄어드는 배경에는 현재 유럽인들이 겪고 있는 금융위기와 경제 저성장이 주요 요인일 수 있고, 수입이 급증하는 데는 경쟁 상대국인 일본에서의 수입대체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핑크색 청사진을 그대로 승인하기에는 매우 불안하고 부정적인 요소들이 잠재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더욱 강제력이 강하고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한 한미 FTA는 한-EU FTA 효과가 충분히 검중되고 평가된 이후에 체결하여야 순서와 과정에 합당할 것이다.
위의 두가지 주장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복지국가적 관점에서 볼 때, 설령 한미 FTA가 통상교섭부에서 주장하는 바대로 한국경제의 양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성장의 결실이 어떻게 누구에게로 돌아가느냐는 하는 점에서 심각한 고민의 주제가 있다.
현재의 한국 사회구조 하에서 한미 FTA를 체결하면, 누구나가 인정하듯이 결실은 대부분 재벌과 대기업 그리고 수출 주도 기업에게 돌아가는 반면에, 농어민과 자영업자들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고, 미국과 무형재적 경쟁관계에 있는 대부분의 업종은 종속적 위치로 조락할 것이다.
IMF 이후 아무런 제약없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신자유시장적 기제는 더욱 기승을 부려,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시킬 것이고, 이미 확인된 미국의 월가 행태와 일부 구미국가에서 보듯이 1%를 위한 사회로 질주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생존적 조건에서 꿈을 상실한 일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의 미래상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평가받는 멕시코 형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필자는 한미 FTA를 위시하여 개방체제로 가는 것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나는 오히려 개방체제로 가는 데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데 여전히 한 표를 던진다. 그러나 양적 성장의 이면에 복지를 포함한 사회안전망이 너무 부실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이 매우 불안한 일상적 삶을 살아가고, 매일 40여 명이 생활고에 자살하는 현실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이 선행되지 않고 진행되는 한미 FTA는 그야말로 그 내용 중에 한 대목인 역진불가조항(ratching gear)처럼 한국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시킬 것이다.
이는 단순히 농어민과 자영업에 대한 보상과 대책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분명한 선후와 완급 그리고 경중으로 다루어야 할 일이다. 멕시코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종속을 당하는 것은 멕시코의 역대 정부가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도외시하고 소수의 독점재벌 체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수치는 GDP 대비 사회안전망의 비중이 6%에 지나지 않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완전한 개방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가장 민주적이며 독자적인 국가 운영체제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국가군으로 덴마크와 북유럽 국가들을 볼 수 있다. 이들 국가군의 특징은 경제 산업의 운영체계는 한국처럼 수출 주도적이며 개방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반면, 산업 경제의 운영 성과와 결실이 온 국민 속에 합리적으로 배분되어 선순환되면서 모든 국민이 높은 수준의 삶을 공유하고 있는 데 있다.
당연히 이들 국가군의 GDP 대비 사회안전망 비중은 GDP 대비 30%를 넘어서고 있고, 일반 시민들의 가처분 소득 수입의 30-40%가 국가의 역할에서 오는 사회적 이전소득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OECD 국가들의 사회안전망 평균 비중은 GDP 20%선을 넘고 있는데 반해, 한국 사회는 멕시코 보다 조금 높은 8%선에 머물고 있다. 삼분지 일도 안 되는 수준이다.
한미FTA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재벌과 수출 주도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 국민들을 더욱 열악한 양극화의 조건(rush to bottom)으로 몰아갈뿐만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의 사회정책에 심각한 제약으로 작동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 있다. 만의 하나라도 이럴진대 한국 사회는 필연코 파국지경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를 졸속으로 날치기하듯 비준할 것이 아니라, 우선 사회안전망 수준을 최소한 GDP 대비 15-20%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한국사회의 경제운영의 성과와 결실을 온 국민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배분과 복지 체계를 갖추는 것을 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자 상황 과제인 것이다.
혹자는 한미 FTA와 사회안전망 구축울 동시에 시행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할 지 모르겠으나, 이는 물과 기름처럼 함께 섞일 수 없는 것으로, 한미 FTA를 체결하면서 동시에 사회안전망 구축 운운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망행위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일의 경중과 선후로 보아도 먼저 복지체계를 구축한 후에야 한미FTA 수준의 개방을 논하는 것이 합당하다.
또한 이미 시행되고 있는 한-EU FTA의 성과를 충분한 기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이후의 한미FTA에 대비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제발 서둘지 말라. 급할수록 돌아가길 요청하며, 올바른 역사의 길을 찾아가길 바란다.
▲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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