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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 못 참는 한국인, 복지국가 가능성 있다"

[복지국가SOCIETY] 평등주의의 두 얼굴

'국민'을 잘 모르는 지식인들이 간혹 "무지한 국민" 탓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힘든 이유"로 '세금 내기 싫어하는 국민' 탓을 하는 것도 그런 경우라 할 것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원래부터 세금 내기를 좋아했을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은 모든 문제를 내가 직접 해결하고, 정 안되면 가족의 힘을 빌리는 편이다. 나라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 '각개약진', '각자도생'하는 국민인 것이다. 지금까지 시장만능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만을 믿고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럭저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도리가 없을 때에는 어느 나라 국민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개인의 힘으로, 그리고 간혹 가족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사회였다. 그런데 국민의 생활 현실도 의식도 급속히 바뀌고 있다. "시장 중심 사회에 피로를 느끼고 국가 역할의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복지 강화 중에서 복지 강화가 중요하다는 사람의 비율도 늘고 있다. 그것을 최근 <한겨레> 여론조사가 보여준다.

2004년 5월에는 '성장 우선'이 68.9퍼센트, '복지 우선'이 29퍼센트였는데, 2010년 5월에는 48.3퍼센트가 '경제 성장'을, 47.5퍼센트가 '복지 강화'를 우선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6년 사이에 복지를 우선하자는 사람이 29퍼센트에서 47.5퍼센트로 늘어났다(<한겨레>, 2010년 5월 14일자). 왜 그리 되었는가? '각자도생'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열심히 노력하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과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하여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기회는 줄어든 것이다.

한국의 강력한 '평등주의'에는 현실적 근거가 있다

필자는 항상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근거를 충분히 잘 대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겨우 한국 사회에 강력한 '평등주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복지국가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수준이었다. '평등주의'라는 물건이 뭐 그리 대단한가? 잘 모르겠다. 다만 갈수록 그것이 강력하다는, 역사적, 현실적 근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준만 교수가 미국과 가장 닮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 '평등주의'와 '물질주의'라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뜻이리라.

미국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사회이니 이민 이전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전쟁 이전'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전쟁이라니? 그것은 한국 전쟁이다. 그리고 '토지개혁 이전'은 묻지 않는다. 까마득한 '식민지 이전'을 묻지 않음은 물론이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필자는 1954년생이니 전후세대라 할 수 있다. 우리 친구들은 한날한시에 전국에서 꼭 같이 국립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우리에게는 초등학교 동기 동창생이라는 동류의식과 평등의식이 있다.

달리기든 공부든, 아니면 주먹이든 모두가 모두에게 경쟁 상대였다. 간혹 부자 집 아이들을 편애했던 선생님들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비난을 받는다. 그만큼 우리는 공평한 걸 좋아한다. 그런데 누가 감히 "선대에 노비였는지"를 물을 것인가? 신분의 차이가 없으니 이제는 돈, 재산이 최고다. 그래서 대한민국 전 국민은 돈벌이에 나섰다. 그것이 한국인의 생활 속에 맹위를 떨치는 물질주의다. 그렇게 보면 평등주의와 물질주의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물질주의를 천하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 백정 출신 의사를 다룬 드라마 <제중원>의 한 장면. ⓒSBS
최근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제중원>에서 백정이 최초의 한국인 의사가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럴싸한 이야기다.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 모두가 성공적으로 양반이 된 나라가 '구대륙'에서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나라가 망하면서 철저히 망하니, 왕족이니, 양반 귀족이니 모든 지배층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근대화를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니 사대부, 전통 지식인들이 존경받지 못했다. 식민지를 거치고, 토지개혁을 하고, 전쟁을 거치면서 전근대의 잔재는 일소되었다.

무엇보다 토지개혁의 영향이 실질적이다. 그것은 당시 인구의 70퍼센트를 차지하던 농민 가운데 70퍼센트에 가까운 소작농들을 자영농으로 바꾸었다. 바로 그 자영농이 대한민국 국민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그들의 독립불굴과 근검절약의 정신이야말로 국민정신이 되었다. 역사는 역설로 가득하다. 남한, 대만, 일본의 토지개혁은 중국의 토지개혁, 북한의 토지개혁에 밀린 수동적 조치였다. 그러나 그 효과는 실로 심대한 것이다. 특히 남한은 그 중에서도 출발선에서 토지소유가 가장 평등했고, 그런 만큼 경제성장율도 가장 높았다.*주1)

30년 후 등소평이 집단 농장을 해체하여 농민들에게 땅(의 경작권)을 나누어 주었으니 오히려 중국이 남한, 대만, 일본을 뒤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북한은 바로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도 바로 역사의 역설, 그 자체다. 숱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 파괴와 희생이 있었지만, 바로 그 전쟁을 통해서 어떤 혁명도 이루지 못할 만큼 전근대적 전통과 신분 질서의 잔재를 철저히 청소하였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그것은 거대한 사회혁명이었다.

지금, 생활 현실에서 도전받는 한국의 '평등주의'

그동안의 경쟁의 결과 토지개혁의 효과도 거의 소진된 듯하다. 이제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 지수는 토지개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강남의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으로 대비되는 부동산 소유의 양극화도 결국 토지 소유의 양극화로 볼 수 있다.*주2)

그리고 금융 자산의 양극화 역시 심각함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거기다 더하여 이제 고용과 소득의 양극화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가계 소득을 기준으로 보아도 중산층의 비율이 1980년대까지는 70퍼센트를 넘어섰지만 이제 60펀센트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대학진학율은 85퍼센트라는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떨어지고 있다. 경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 사회가 대물림되면 바로 계급 사회, 보통의 자본주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의 한국과는 매우 다른 모습의 나라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위기가 있고, 그 위에서 격렬한 정치적 변화도 일어나고 있으며, 문화와 현실, 의식과 생활의 격렬한 충돌이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 양극화 사회, 격차 사회, 계급 사회를 현실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종종 "'큰 미국'과 '작은 스웨덴' 가운데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식으로 던져지는 질문이다. 자본주의 선진국의 문턱에 선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과연 한국은 복지국가로 갈 수 있을까?

지역 연고를 가진 보수 양당이 대립하는 정치구도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보수주의+자유주의' 세력이라는 점에서 여야가 다를 바 없다. 유럽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강력한 사회민주당이 없다. 진보파 지식인들은 사회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멋으로 안다. 노동조합의 조직율은 겨우 10%밖에 되지 않아 미국보다 낮다. 개인주의, 연고주의 문화는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대학과 언론은 미국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요컨대 유럽식 복지국가를 실현할 힘과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역사,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근거한 주장이다. 어떤 외국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한국의 특수한 사회경제적 발전 과정이, 그 경로가 복지국가를 가리키고 있다. 그것을 국민이 잘 알고 있다. 2004년 5월, 한겨레신문은 창간 기념 여론조사를 하였다. 그 조사에서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사회상으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44.8퍼센트,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39.2퍼센트로 응답하였다.(<한겨레>, 2004년 5월 17일자)

2010년 5월의 조사에서는 질문의 표현을 조금 바꾸었는데 '북유럽식 복지국가 사회'에 손을 든 사람이 무려 67퍼센트에 이르고, '미국식 신자유주의 사회'에 손을 든 사람이 24.2퍼센트에 불과하다. 표현을 바꾼 영향도 있겠지만, 6년 사이에 생각이 바뀌기도 하였다.*주3)

이미 2004년의 조사 결과도 놀라운 것이었다. 지식인들도 대답하기 힘들어하는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 길거리를 다니는 남녀노소 일반 국민, 보통 사람들이 응답을 한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그 대답이 45대 40으로 균형이 잡혀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러나 이제 그동안 느끼고 보고 들은 바로, 즉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를 보고, 미국의 형편없는 의료보험 실태를 듣고, 그것을 개혁하려는 오바마의 힘겨운 노력을 전해 듣고, 국민들은 미국식 사회경제체제는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실현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러한 응답자의 비율이 지지 정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자연히 보수니 진보니 하는 정체성과도 상관없다. 지금의 이념적, 정치적 귀속감이 새로운 시대적 과제 앞에서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혹시 국민들이 잘 모르고 대답하지는 않았을까? 복지국가로 가려면 세금 많이 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까? 아니다. 일관되게 응답하였다. 전체 응답자의 72.1퍼센트가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모든 국민에게 복지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세금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만 돕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2.7퍼센트에 그쳤다. 국민은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에 대한 찬성 의사와 함께, '세금 더 낼 의사'도 있음을 명백하게 밝힌 것이다. 이런 기류는 소득수준, 학력,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했다. 우리 사회의 미래상으로 46.6퍼센트가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라고 응답하여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라고 응답한 21.6퍼센트보다 훨씬 많았다.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은 평등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토지개혁으로 자영농이 된 사람들의 자식, 손자들인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에 대해서 일관되게 복지국가 노선을 지지하고 있으므로 국민이 원하는 길은 복지국가 노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보수파 지식인들로서는 갑갑한 노릇이고, 아마 국민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양극화 앞에서 우리 국민은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근본적 대책, 즉 복지국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불평등에 대해서 민감한 이유는 그 불평등과 격차가 형제와 친한 친구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를 예언하기는 무척 어렵다. 아무도 내일의 일을 장담할 수 없다. 필자는 30년 전에 오늘의 우리가 이렇게 풍요롭고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을지를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누구도 30년 후의 대한민국을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무지한 국민이 잘 몰라서", "국민이 원하지 않아서", "국민들이 세금을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보수적이라서"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식인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지식인은 이제 '국민 탓'을 그만 두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형의 토종 복지국가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헌신할 각오를 다져야 한다. 과거 민주화 투쟁에서 헌신했던 만큼의 자세를 가진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그들의 노력은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다. 건국하면서 토지개혁하고, 전쟁으로 전근대의 잔재를 일소한 한국은 1965년부터 1996년까지 31년간 연평균 7.3퍼센트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초고속 경제성장을 하였고,*주4) 지난 30년간 민주주의를 실현하였다. 앞으로 30년간 복지국가를 실현할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싶다.*주5)

* 주1) 전강수, <농지개혁과 조봉암, 그리고 한국의 경제성장>, 2009년에서 재인용, Deininger, Klaus, <Land Policies for Growth and Poverty Reduction, A world Bank Policy Rearch Peport>, 2003년. 이 보고서는 전 세계 26개국을 대상으로 1960년 현재의 토지 분배 상태와 1960년부터 2000년까지의 연평균 경제성장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는데, 매우 뚜렷하게 초기 토지 분배의 지니계수가 낮을수록 장기 경제성장율이 높은 관련성이 확인되었다. 한국은 26개 나라 중에서 1960년 당시의 토지 분배가 가장 평등하고, 그 후 40년 동안의 경제 성장 속도는 대만 다음으로 빠른 나라였으며,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 등은 초기 토지 분배가 가장 불평등하고 그 후 40년간의 경제성장율이 가장 낮은 나라들이었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과 남미의 정체를 가장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요인은 박정희(한국)같은 지도자도 포퓰리즘(아르헨티나)같은 정치행태도 아니고, 바로 토지개혁의 승패라고 말할 수 있다.

* 주2) 전강수, <양극화 해소를 위한 토지정책 방향>, 2005년. 토지정의시민연대 창립총회에서 발표된 이 발제문에서 전강수 교수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것은 아파트 건물이 아니라 강남이라는 좋은 위치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 위치는 토지의 본질적 요소. 따라서 2000년대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했다는 것은 아파트 대지 가격이 급상승한 것으로 해석해야 함."이라고 쓰고 있다. 또 전강수 교수는 2002년의 우리나라 토지소유의 지니계수를 0.764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Deininger에 의해 0.3을 약간 상회하는 것을 추산된 1960년 우리나라의 토지 분배 지니계수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서, 이를 두고 필자는 "토지개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 주3) 이하 여론조사 결과는 <한겨레>, 2010년 5월 14일자에서 인용

* 주4) <연합뉴스>, 1998년 4월 17일자에서 인용, 세계은행, <세계경제개발지표 보고서>, 1998년

* 주5) 이 시기에 진행될 '통일'이라는 과정도 복지국가를 미룰 핑계가 되거나 복지국가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복지국가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되고 복지국가 실현을 앞당기는 조건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유럽에서도 2차 세계대전이라는 국민국가의 위기가 복지국가로 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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