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곡조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下調無人采 / 고상한 마음에는 또 성을 내는구나 高心又被瞋 / 알수 없도다. 세상 사람들 뜻이여 不知時俗意 / 날더라 어떻게 하란 말이냐 敎我若爲人" (장온張氳 <취음醉吟>, 취하여 지은 시)
청나라 인장가 정경(丁敬)이 새긴 시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서 한문 고전 공부를 시작한 한문 번역가이자 서예사 연구자인 윤성훈 선생의 책 <한자, 문명의 무늬>다. 대단히 방대하고 폭과 깊이가 놀랍다. 한자가 어떻게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었는지를, 본문만 하더라도 무려 799면에 이르는 교과서다. 어떻게 이렇게 한자와 한문과 중국에 바탕을 둔 동양문화사에 대해 연찬해 왔는지 선생의 공부와 수행에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
어느정도 읽다가 ‘아 서문에 주제의식이 있었구나’ 하면서 되돌아왔다 이 부분이다.
"특히 일본의 서예가인 이사카와 규요石川九楊의 성과를 언급하고 싶다. 이 책은 서예사를 문화사와 결부시켜 본 그의 독특한 시각과 개개 작품 및 필획 형태미의 정밀한 분석에 크게 빚지고 있다. 물론 그와 일면식도 없으나, 지면을 통해서나마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읽으면 읽을수록 서문이 명료한 주제의식을 반영한다. 이 관점을 끝까지 유지하면 방대한 분량도 결코 번거롭진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 우리 서예사에서 최치원 선생을 빼놓을 순 없다.
"지리산 쌍계사의 <진감선사비 眞鑑禪師碑>가 그것이다... 최치원의 글씨는 글을 꼭 빼닮았다. 모든 고전적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부조화의 파격은 전체를 지배하는 원칙과 조화를 결코 훼손하지 않으면서 설핏 보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잘 통제된 채 곁들여져 있다."
2년 전부터 그간 수집했던 작품들을 기증하고 있다. 추사의 스승되시는 청나라 완원 선생 관련 탁본과 자료 10여점은 <과천시 추사박물관>으로 보냈다. 한국과 중국의 현대 서예 대가들이 최치원 선생의 시문을 서예 작품으로 남긴 것과 최치원 선생의 친필 혹은 친필로 전하는 석각과 현판 탁본들을 포함한 210건 214점은 전남대학교박물관으로 보냈다. 그래서 작년과 올해 박물관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몇 작품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진감선사비> 탁본.
무슨 미련이 그토록 남았던 걸까. 한자문화, 특히 한자의 변천과 동양서예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또다른 의미의 백과전서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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