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늘고 있다. 출생률 역시 반등했다. 코로나19 이후 미뤄뒀던 예식이 몰렸다거나 출산을 주도하는 30대 인구의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는 구조적 분석을 고려하더라도, 하향 곡선만을 그리던 지표들이 상승세로 돌아선 현상은 분명 이례적이다.
1997년생 소띠, 만 나이로 스물아홉이면서 관습적 나이로 30대가 되니 이 현상을 피부로 느낀다. 또래 친구는 물론 동생들조차 연인과의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나둘 고백한다. 결혼식은 어디서 할지, 신혼집은 어디에 차릴지 고민이라 한다. 연애하고 있지 않은 친구들조차 '결혼'이라는 과업을 이루겠다고 진로를 조정할 정도다.
결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나는 주위에 늘어난 결혼바라기 친구들을 보고 놀란다. "어쩌다 결혼을 결심하게 됐을까?" 슬쩍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이 사람과는 헤어질 것 같지 않아서" 그러면 평생 연애만 해도 되지 않나? 신혼집 마련에 골머리를 앓는 친구에게 꼭 집을 구하고 결혼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아"는 답이 돌아온다.
모호한 대답이 답답하지만, 꼬치꼬치 캐물을 수는 없다. 친구들의 답변은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 대다수가 공유하는 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직업이 기자라도 친구들에게 모난 질문을 거듭하면 '손절'당하기 십상이다. 매번 찜찜한 침묵으로 대화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나만의 의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화인류학 연구자 안희제 작가는 결혼했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을 원하지만 하지 못하는 아홉 명의 1990년대생을 만났다. 이를 토대로 펴낸 신간 <사랑과 안정>은 이른바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청년들이 결혼을 욕망하고 또 좌절하는 이유를 파헤친다.
작가가 결혼적령기 청년들에게서 주목한 개념은 '안정'이다. 자유로운 만큼 불안정한 '연애'에 비해, 법적·사회적 구속력을 갖춘 '결혼'은 관계의 지속성을 담보해 줄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처럼 보인다. 미혼 청년에 비해 신혼부부에게 수많은 재정적 혜택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결혼은 실체적 이익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여기에 기혼자에 대한 '사회적 인정'까지 고려하면 결혼은 '삶의 최저선'을 보장하는 사실상 유일한 장치다.
그러나 안정을 위해 선택한 결혼, 결혼에서 이어지는 출산은 역설적으로 '극심한 불안정'을 낳는다. 여성에게는 출산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위험과 출산 전반에서 발생하는 경력단절 등 리스크를 짊어지게 한다. 남성에겐 그 리스크를 재정적으로 보좌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얹어준다. 제도적 보완은 여전히 미봉책에 머물러 있고, 청년들은 과업을 수행하는 동안 불안과 좌절을 반복해 겪는다.
결혼 제도 중심의 사회가 '결혼 밖'에 있는 이들의 삶과 관계를 훼손한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미혼이든 이혼이든, 결혼의 울타리에 진입하지 못했거나 튕겨 나간 개인은 순식간에 '탈락자'이자 '하자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또 사회는 1 대 1 핵가족 외에 다른 형태의 친밀성을 상상하는 이들에게 차가운 시선만을 보낸다. 가부장제가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청년들은 삶을 포기하려 들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을 비웃을 뿐이다.
작가는 이런 한국 사회 결혼 이데올로기를 '죽음의 나선'에 비유한다. 개미들이 앞선 개미의 페로몬만을 따라 돌다가 결국 지쳐 죽고 마는 ‘앤트밀(Ant Mill)’, 정상성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무작정 열을 맞춰 걸어가는 행위가 결국 모두를 공멸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혼을 당장 거부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이 아니다. 핵심은 모든 관계가 오직 '결혼'이라는 단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하는 빈곤한 현실을 깨고, 삶을 지탱할 다른 언어를 발굴하자는 데 있다.
책에서 제시한 언어 중에 '피어남'과 '믿음'이 눈에 띈다. 작가는 청년들에게서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고 조언하며 가능성을 피워내는 경험, 최악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선뜻 손을 내밀어 준 스승의 믿음을 찾아낸다. 이런 온기와 연대는 분명 우리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줄 수 있는 단단한 기틀이 될 수 있다.
명쾌한 해답이나 완성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애당초 정답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K-타임라인'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 사회의 정상성 압박은 강고하다. 대안적 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발걸음인 ‘생활동반자법’조차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청년들의 관계 형성을 '출산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도구적 기준으로만 보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결혼의 의미와 한계를 끊임없이 묻고, 궤도 밖의 삶을 상상하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결혼을 유일한 구원책으로 여기는 관념, 이탈한 이들을 향한 비난을 깨고 더 많은 이들이 삶을 긍정할 수 있게 하려면 더욱 공들여야 할 일이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과 서로의 다른 단면을 발견하며 그에 맞는 다른 자리를 만들어 두고, 여러 자리에서 여러 사람을 맞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자리들이 모두 동등하거나 평등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단면들을 통해 서로의 입체성을, 나아가 서로에게서 가능한 다양한 관계의 양태들을 파악할 수 있따면, 우리가 실패해도 괜찮고 져도 죽지 않는다면, 분명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334~3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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