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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시민 셋을 죽여도 미국은…"세계 최고다!"
[해방일기] 1946년 2월 24일
1월 19일 새벽 경찰의 학병동맹 습격 사건을 1월 18일자 일기에 적었고, 1월 27일에는 그 사건의 처리 과정을 서술했다. 1월 27일자 일기는 이 작업 시작한 후 가장 길게 쓴 것 같다. 1946년 초의 서울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에 최대한 명확하게 독자들에게
김기협 역사학자
2011.02.24 09:55:00
원자폭탄이 한반도의 운명을 갈랐다
[해방일기] 1946년 2월 23일
여론 조사를 정치에 처음 도입한 것은 조지 갤럽, 1936년 미국에서였다. 초창기 여론 조사 중 재미있는 것 하나가 홉스봄, <극단의 시대> 143쪽에 소개되어 있다. 1939년 1월에 실시된 한 조사에서 소련과 독일이 전쟁을 벌일 경우 어느 쪽이 이기기 바라냐는 질문을
2011.02.23 09:29:00
미국은 미처 몰랐던 '냉전의 아버지'
[해방일기] 1946년 2월 22일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의 공사 고문 조지 케넌이 워싱턴의 재무부로 보낸 '장문 전보'가 냉전 이론의 초석이 된 것으로 널리 인정된다. 5500 단어, 우리 식으로 원고지 약 100매 분량의 이 문서는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련의 본질적 침략성을 규정함
2011.02.22 09:52:00
원조 우파도 지지한 토지 개혁! 미군은…
[해방일기] 1946년 2월 21일
일제 경제 침략의 주역이던 동양척식주식회사를 1945년 11월 11일 군정청이 '신조선회사'로 개편할 때 한국인들은 식민지 시대 탈피의 기대감에 부풀었다. 개편 방향은 아직 막연했지만, 10월 5일 최고 소작료를 3분의 1로 제한한 법령 제9호에서 농업 부문의 모순을
2011.02.21 08:34:00
민주의원, '을사5적' 못지않은 '병술23적'
[해방일기] 1946년 2월 18일
군정청이 국경일을 결정한다? 그것도 남반부의 군정청이? 미·소군의 한반도 진주는 일본의 항복을 접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정부 노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38선 이남을 점령하고 있는 미군 군정청이 한국의 국경일을 결정해? 주제넘은 짓이다.
2011.02.18 08:25:00
38선에서 막힌 독립동맹의 역할
[해방일기] 1946년 2월 17일
초기의 북한 노동당에는 빨치산파, 국내파, 소련파, 연안파의 네 개 큰 인맥이 있었다. 빨치산파는 김일성과 함께 만주에서 무장 항쟁을 벌이다가 1940년대 들어 소련으로 피신, 소련극동군에 편입되어 있다가 해방을 맞은 집단으로, 해방 후 귀국한 교민 출신의 소련파와는
2011.02.17 09:42:00
美는 한국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통일은?
[해방일기] 1946년 2월 16일
2월 2일부터 5일까지 소련 주재 미국 대사 해리먼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해리먼이 하지를 야단치러 온 줄로 생각했다. 3상 회담에서 신탁 통치 제안 책임을 소련에게 뒤집어씌우는 남한 상황 때문에 스탈린에게 불려가기까지 했으니까. 그런 생
2011.02.16 08:14:00
좌우 대결…'선수'와 '링'이 마련되다
[해방일기] 1946년 2월 15일
1월 초순에서 걸친 4당 또는 5당 회담을 통한 통일 전선 결성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좌익에서 중도에 걸친 정당·단체들이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결성에 착수했다. 민전은 이후의 활동 방향으로 보아 좌익 단체로 보는 것이 마땅한데, 결성 당시에는 친일파와
2011.02.15 07:58:00
독립의 상징 임시정부, 누가 무너뜨렸나?
[해방일기] 1946년 2월 14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⑨
해방에서 꼭 반년이 되는 오늘 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민주의원)이 성립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월 4일 김구 선생의 비상정치회의 소집에서부터 비상국민회의를 거쳐 민주의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내내 앞장서서 힘써 왔습니다. 해방을 독립으로 연결하고자 반년간 애써 온
2011.02.14 09:07:00
식민지 시대 순사보다 더 악독한 남한 경찰
[해방일기] 1946년 2월 11일
식민지 시대의 법률 체계와 그 시행 기관인 재판소를 온존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북의 소련 점령군이 일본 지배 체제를 해체하려고 노력한 것과 달리 이남의 미군은 일본 지배 체제를 그대로 두고, 다만 그 운영자인 일본인만을 축출했다. 일본인이 비운 자리 중 꼭대기 부분
2011.02.11 08:4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