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2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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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9>
저녁 햇살 등에 지고 반짝이는 억새풀은 가을 들판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차가워지는 바람에 꽃손을 비비며 옹기종기 모여 떠는 들국화나 구절초는 고갯길 언덕 아래에 있을 때 더욱 청초합니다. 골목길의 가로등, 갈림길의 이정표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
도종환 시인
목백일홍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8>
피어서 열흘을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
불안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7>
칸나꽃 빛깔 같던 여름의 열정이 아직도 화단 구석엔 짙기만 한데 벌써 가을바람이 잎새들을 흔듭니다. 세월은 바람처럼 아무것에도 막힘이 없이 흘러갑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 흐르는 것이 이처럼 살갗에 와 닿을 때면 까닭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 솟곤 합니다.
귀뚜라미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6>
늦게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또 깨었습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방안 가득 울리고 있었습니다. 저 소리에 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는 귀뚜라미 한 마리가 톡 튀어 구석으로 몸을 피하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울어댑니다. 불을 끄고
박달재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5>
고개를 넘다 바라보니 안개꽃 같은 별들이 모두 제 있을 곳에 떠 있다 숲 사이를 지나다 바라보니 그 별들이 어느새 추위에 떨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내려와 나무들의 빈 자리를 따뜻하게 메우고 있다 우리 가는 길 앞을 거친 모습으로 막고 서 있는 검푸른 산맥
빛깔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4>
기차를 타고 산 옆을 지나가면서 산 아래를 끼고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면 눈에 띄는 게 있습니다. 큰 강물이든 작은 여울이든 푸른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 근처의 물빛은 나뭇잎을 닮아서인지 나뭇잎 빛깔입니다. 늘 하늘을 누워 보면서 흐르는 바닷물은 아마 하늘을 닮아
마음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3>
지금 이 나라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기보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고 억지만을 부립니다. 마음을 움직여서 함께 일을 하게 하기보다 폭력과 우격다짐으로 자기를 따르게 하려는 듯합니다. 권력기관을 이용해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늘 하루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2>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책 한 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솔길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1>
차를 타고 가거나 낯선 지방을 여행하다 오솔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물줄기를 따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내려오는 길이나 낮은 고개를 넘어가는 들꽃 피어 있는 길, 또는 동네 어귀를 향해 낫날 모양으로 감돌아 가는 길, 아래배미 논과 윗배미 논 사이로 나 있는 논길을
목자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0>
지금 이 나라에는 대통령부터 정치인 검찰 경찰에 이르기까지 목자의 본분을 망각한 이들이 많습니다. 폭력과 강압으로 양들을 다스리려는 어리석은 목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자기에게 목자의 직분을 맡겼다는 것만 알고 있지, 지금 자기들이 어떤 목자로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