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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병원의 공공성 포기 선언이 잇따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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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간 병원의 공공성 포기 선언이 잇따른다면…"

[복지국가SOCIETY] 위기의 공공의료, 미래는?

우리나라에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법에서 공공보건의료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활동을 일컫는다. 이 때 공공보건의료기관이라 함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단체가 설립 및 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으로서, 여기에는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와 같은 공공보건기관과 공공병원들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보건의료서비스는 공공재 또는 가치재로 불린다. 보건의료서비스를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보건의료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공익성과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건의료서비스의 제공 주체가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간에, 이들이 제공하는 보건의료서비스는 공공재로서의 특성, 또는 가치재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보건복지가족부의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관점의 전환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즉, 현재 법률로 정의되고 있는 공공보건의료의 범위와 기준이 '공공보건의료기관 만이 수행하는 일체의 활동'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공공보건의료 체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근거하여, 최근 공공보건의료에 공공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의료기관까지도 아우를 수 있도록 하는, 공공보건의료의 개념을 확장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의료기관의 설립 주체가 공공인지 민간인지의 측면이 아니라, 필수적이고 공익적인 의료서비스의 제공이라는 의료기관의 기능에 초점을 두어 국가가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지원, 육성, 평가, 감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들도 진행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이 현실화된다면, 앞으로는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만 한다면 민간의료기관도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보건의료서비스 공급체계 내에서 공공부문이 지극히 취약한 국가의 경우, 전체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높이고 정부의 보건정책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민간의료기관의 협조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공공보건의료의 영역에 민간의료기관이 참여하는 기전을 만들고, 이를 법적으로 제도화 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정립과 관련하여 최근 제출된 안들과 관련 논의들을 살펴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첫째,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개념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점이다. 최근 제출된 안에 따르면, 공공보건의료는 지리적 접근성 보장을 위한 보건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보건의료, 수익성이 없어 원활히 제공되지 못하는 보건의료, 기타 국가의 지원 및 평가가 필요하다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보건의료 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들은 분명 공공보건의료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 중요한 사업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수익 극대화 원칙'에 따라 민간의료기관이 주도하는 보건의료체계 하에서는, 양질의 비용-효과적인 적정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공공보건의료의 중요한 사업 영역임이 강조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의료기관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기관으로 당연 지정되어 있어서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일반 진료서비스에 질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 영역을 공공보건의료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취약계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뇌경색으로 인한 입원 일당 진료비의 경우, 국공립 종합병원은 민간 종합병원에 비해 34%나 낮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대학병원들의 경우 건강보험 환자이든 의료급여 환자이든 간에 일당 진료비는 외래, 입원 모두 국립대학교 병원이 사립대학교 병원보다 낮다. 뿐만 아니라 2008년 4/4분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질환의 중증도를 보정하였을 경우에도 종합전문요양기관들 중 국립대학교 병원들은 사립대학교 병원들보다 진료비 수준이 낮았으며 재원일수도 짧았다.

이는 현재 상태에서도 공공의료기관들은 민간의료기관들보다는 양질의 적정 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므로 양질의 비용-효과적인 적정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공공보건의료의 영역으로 포함시킴으로써 민간의료기관들의 진료 행태를 이러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국민의료비의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효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의료기관의 운영과 관련해서도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운영 방안을 실현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것 역시 공공보건의료의 영역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업 내용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논의에서 빠져 있는 중요한 공공보건의료 사업의 내용들을 채우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논의들이 필요할 것이다.

▲ 어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서울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흔하지만, 지방에는 의료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곳이 아직 많다. 의료 공공성이 낮은 탓이다. 민간 의료기관 중심 의료 체계에서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돈벌이가 잘 되는 도시로 쏠리는 까닭에, 의료자원 분포의 지역적 불평등이 심각한 상태다. ⓒ뉴시스

둘째, 설립 및 운영 주체로서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보건의료의 범위를 확장하여 민간의료기관들도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애초에 공공보건의료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이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하였던 바, 만약 공공보건의료의 개념을 민간부문이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한다면 굳이 법 안에서 공공보건의료기관에 대한 개념 규정을 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의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고, 극단적으로는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개념 규정을 법률에서 삭제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정부가 국민들의 혈세를 들여서 국공립 의료기관들을 설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민들과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보건정책을 집행할 직접적 정책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병원이라는 직접적 정책수단이 너무나 부족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매우 많다. 의료기관들은 돈이 되는 도시에 집중되어 의료자원 분포의 지역적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만성질환을 중심으로 한 현대의 보건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차원의 서비스 제공이 강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민간부문 공급자들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등한시한다.

또한, 일부 민간의료기관들은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과잉진료, 비급여 진료를 통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데 급급하여 국민의료비를 증가시키고 건강보험재정의 안정성을 지속적으로 해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민간의료기관들에게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수행하게 하고 일정한 기준을 정하여 지원하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만약 민간의료기관들이 어느 순간에 더 이상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이러한 상황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이 경우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 중 중요한 것의 하나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양적으로 확충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공공의료기관을 30%까지 확충하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를 쳐도 되지 않는 마당에, 법률 조항에서도 폐기된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양적으로 확충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된다. 최악의 경우,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공공보건의료기관조차도 이제는 민간의료기관의 경우처럼 공공보건의료를 선택사항으로 해석하여 이 기능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편, 막연하게 공공보건의료기관은 선한 것이라는 논리도 문제가 있으며, 현재의 공공보건의료기관 중에는 민간의료기관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공공보건의료기관이 공공답지 못한 모습으로 운영되는 것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자가 없고 독립채산제라는 굴레 때문이며, 이것이 공공보건의료기관의 구조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적 조류에 힘입어 공공보건의료기관은 비효율적이며 무조건 시장방식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낙인도 타파해야 할 과제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간의료부문이 공공보건의료 기능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최근의 정부 논의와 노력이 공공보건의료도, 공공보건의료기관도 없는 기형적 국가보건의료체계를 낳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발전적인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인 바, 그 발전적인 논의 중에는 현재의 공공보건의료기관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및 투자를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기관들을 국제적 수준에 부합하도록 양적으로 확충하고 질적으로 강화할 전략이 무엇인지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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