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은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23일 판문점에서 갖자는 제안에 대해 두 가지 수정 제안을 내놓았다. 적십자 실무접촉에 앞선 22일 금강산 관광재개를 위한 회담을 금강산에서 열고 적십자 실무접촉도 금강산에서 하자는 내용이다. 금강산 관광재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자 남측은 금강산 관광 문제는 검토해보고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적십자 실무접촉을 판문점에서 갖자고 다시 제안했다.
남북한이 계속 공을 상대방의 코트에 넘기면서 자신의 우선순위를 관철하려는 듯한 태도를 여전히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지난 7월에도 있었다. 북한이 7월 10일 금강산 관광 재개 및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별도의 실무회의를 제의했을 때, 남측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회담은 수용하면서도 금강산 회담 제안은 거부한 바 있다. 그러자 북한은 두 가지 회담 모두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해왔었다.
▲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열린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 마지막 날, 이산가족들이 헤어짐이 아쉬운듯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유연해진 북한, 고심하는 남한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측이 이산가족 상봉 회담 제안을 했을 때 북측이 금강산 관광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남측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난달 정부가 북한의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을 거부하면서 내세웠던 이유가 "남북 당국간 개성공단 회담이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는 개성공단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이었다는 것에 비춰볼 때,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8월 14일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한 만큼, 금강산 문제를 더 이상 기피할 이유도 수그러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의 이면에는 두 가지가 깔려 있다. 하나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고(故) 박왕자 씨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신변안전을 위한 제도적 보장 등 '3대 선결조건'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에 대해 북한이 유연해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안들이 이미 해결되었다는 당초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재발방지, 신변안전, 재산 문제 등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해왔기 때문이다.
DMZ 평화공원도 금강산에서부터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박근혜 정부 내에서 일고 있는 '남북관계 속도조절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 내 일각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남북관계 사업들을 '퍼주기'로 보는 부정적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강해져온 대북 제재와 압박 구도에 파열음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존재하는 것 같다. 아울러 천안함 침몰 직후 발표한 5·24 조치도 마음이 걸리는 듯하다. 남북관계를 북방한계선(NLL) 등 국내 정치 투쟁이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재연기 등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는 보다 능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합의하더라도, 상봉 장소로 금강산 면회소를 제외한 다른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북한이 개성공단 중단 재발방지를 확약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 기간에 남북회담을 수용한 것 역시 북한 내에서 실용주의적 태도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은 체제가 7월 이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에 대한 언급이나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브랜드인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역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전제로 한다. 세계 최대의 군사 밀집 지역을 평화공원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남북한 사이의 상당한 수준의 신뢰를 전제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유력한 후보 지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금강산으로 가는 관문인 고성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려되는 것은 악순환의 재연이다. 남측이 금강산 회담을 또 다시 거부하고 북한이 이를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 회담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 당국은 또 다시 고령의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기게 된다. 상호 비방전이 재발되면 어렵게 합의한 개성공단 정상화에도 난관이 조성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상황 전개를 예방하고 남북관계의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금강산 관광재개 회담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대북정책을 '남북관계 속도조절론'에 가둬두기에는 지난 5년간 잃어버린 세월이 너무나도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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