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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 당사자, 한국 배제되지만 않으면 유연해도 된다"

[한반도평화아카데미]<3강>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인제대학교와 한반도평화포럼, 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하는 제1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 "한반도 평화체제: 피스메이커들이 보는 쟁점과 과제" 제3강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9.19 공동성명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주제로 진행했다. 프레시안은 1강과 2강에 이어 이 전 장관의 강연 내용을 정리해 지상 중계한다.

오는 11월 1일 4강은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이명박 정부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쟁점'을 이야기한다. 11월 8일에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이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주제로 종강 강의를 할 예정이다.

한반도평화아카데미에 관한 문의는 한반도평화포럼(www.koreapeace.co.kr 02-707-0615)으로 하면 된다. <편집자>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25일 한반도평화아카데미에서 강의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9.19 공동성명과 한반도 평화체제

6자회담은 북한 핵문제를 북·미 양자간의 문제로 푸는데 부담을 느꼈던 부시 행정부가 다자관계를 통해 풀기 위해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이 동아시아의 운명이 달린 문제를 혼자 책임지기 싫고, 중국·일본·러시아·한국을 동원해 북한을 '5대 1'로 압박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6자회담이 진행되면서 미국의 뜻은 관철되지 않았고,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기구가 됐다. 북핵 문제가 풀린 이후에도 6자회담은 동북아시아의 다자간 안보 협력을 위한 기구가 되어야 한다.

6자회담에서 한국은 중국과 역할을 분담하면서 의제를 선도하는 국가였다. 노무현 정부는 합리적인 논의를 위해 북미 직접대화를 주선하고, 북핵 문제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으며,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 과감하고 포괄적인 주고받기를 제안했다.

2005년 채택된 9.19 공동성명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길에 대한 합의를 본 것으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최초의 다자간 합의였다. 9.19 성명은 핵 포기와 체제 안전 보장 및 경제적 보상을 주고받는 것을 기본 구도로 하는 동시에, '행동 대 행동' 원칙에 합의하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는 2002년 10월 북핵 문제가 재발된 것을 계기로 6자회담의 진전 여부와 긴밀히 결부되며 논의되어 왔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활성화시킨 것도 6자회담이요 9.19 공동성명이었다.

북한은 9.19 성명 이전 미국과의 접촉에서 간헐적으로 평화협정 문제를 언급했다. 미국은 1차, 2차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가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되면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하는 장으로 6자회담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그처럼 6자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한반도 평화체제, 동북아 다자안보체 등 평화 기제를 창출하는 동력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6자회담 재개로 대화 메커니즘 복원을 통해 일탈적인 북핵 상황을 관리 국면으로 전환하고, 북한의 핵 능력이 커지는 것을 억제하며, 북핵 해결을 위한 진전을 이뤄야 한다.

평화체제와 평화협정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단순히 물리적 폭력이 부재한 상태를 말하는 '소극적 평화'와 전쟁의 근원이 되는 구조적 폭력을 제거해 집단 간의 협력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적극적 평화'로 평화를 구분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전쟁을 법적으로 종결하고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는 한편, 한반도에서 각 주체간의 상호 적대적 긴장관계를 초래했던 긴장 요인들을 해소함으로써 항구적 평화가 실질적으로 실현되는 상태'라고 개념을 규정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정전 상태의 종식이라는 과거사 정리와 함께 평화 구축의 미래지향적 의미를 중첩적으로 지닌다. 법률적·제도적 차원에서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고, 실질적으로 남북한 간의 군사적 대결 상태가 해소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하며, 남북한의 자유 왕래가 실현되는 상태를 뜻한다. 물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필수다.

한편 평화협정이란 것은 '현재의 정전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그 어떤 협정'이라고 개념을 정리할 수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 상태로의 회복을 합의하고 △당사자들 사이의 상호 불가침 및 무력행사 포기를 약속하며 △비무장 지대를 일반 경계선으로 바꾸는데 따른 관리 규정을 만들고 △휴전선에서의 대결적 군사관계를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조치를 취하며 △미래지향적 평화 구축을 위한 평화 관리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협정 체결은 최소한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전력의 재배치를 포함하는 운용적 군비통제가 실현되거나 실현이 약속되어야 가능하다. (운용적이 아닌) 구조적인 군비통제는 보다 장기적인 평화체제의 심화 과정과 연동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조성될 평화 상태는 북핵 문제의 해결과 북미관계의 정상화 같은 외재적 전제조건들이 일정 수준에서 동시에 충족되어야 가능하다.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필수적인 단계이며, 핵심적인 구성 부분이지만 평화체제와 동의어는 아니다. 당사자 문제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당사자(주체)는 남·북한이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당사자는 정전협정의 실질적인 당사자인 남·북·미·중이 되어야 한다.

참여정부의 평화체제 논의와 9.19 공동성명

북한은 2005년경까지 북미 양자의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5년 9.19 공동성명을 계기로 남한도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북한은 4차 6자회담에서 '남측의 평화협정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북한은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의 당사자 위상을 공식 인정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목표를 상정했던 국민의 정부 이래 한국 정부의 당면한 기본 목표가 되어 왔다. 그러나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이 북핵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국제사회에서 의제화할 수 있는 계기를 포착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북·미 양자가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항해 '2(남·북)+2(미·중)' 방식의 평화협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 인수위원회는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2+2'라는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기 어려워 '2+2' 주장을 답습했다.

그 후 참여정부는 2004년 3월 '평화·번영과 국가 안보'에서 "남북이 중심이 되고 국제사회가 이를 지지·보장하고 적극 동참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명시함으로써 기존의 '2+2' 방식 평화협정론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이후 참여정부 내에서는 역사적·논리적 맥락에서 남·북·미·중 4자가 동등한 협상의 주체로 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판단과, 기존 부처들이 견지해 왔던 '2+2'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절충적으로 사용됐다.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4차 6자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2005년 7월 중순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문제를 논의할 의향이 있음을 한국 측에 타진해왔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교장관에게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미국의 이 제안을 적극 환영하고 의제화의 호기로 활용했다.

2005년 7월 당시 정부 방침은 한국이 배제되지 않는 한 당사자 문제에서 유연성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참여를 상정해 '2+2'에서 '4자 당사자'로 전환을 꾀했다. 이에 '2+2' 입장에 기초해서 6자회담에서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던 외교부를 설득했고, 북한 역시 설득했다.

NSC는 7월 하순 6자회담 우리 대표단에 △평화체제 문제를 적극 공론화하고 △구체적인 협의는 당사국간 별도의 협의 틀을 만드는 쪽으로 유도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평화협정을 논의할 경우에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논의에서 제외하고 △휴전선이 평화협정 체결 후 남북간 경계선으로 바뀌게 되면 남북이 공동 관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9.19 공동성명 4항에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는 점을 명기했다. 이는 2007년 2.13 합의에서도 재확인됐지만, BDA 사건이 발생하면서 논의가 지연됐다.

참여정부는 2005년 가을 미국 측에 '평화협정의 참여 주체는 남·북·미·(중)으로 하고, 협상의 최종 결과물로서 남·북·미·(중)간 기본협정을 체결하며, 필요할 경우 부속협정으로 남·북, 북·미간 협정 등 쌍무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개념을 담은 'CONCEPT PAPER'를 제시했고, 미국도 동의했다.

이후 2007년 2.13 합의에서는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를 논의할 실무그룹을 설치하기로 하는 등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국제적 이행 사항들을 포괄적으로 명시했다.

한편 남북간에는 10.4 선언에서 인식의 일치를 봤다. 이 선언 4항에서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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