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일부 외신들은 한국의 이런 상황을 전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군사 보복, 유엔 안보리, 한국 독자 제재 모두 '글쎄'"
<워싱턴포스트>는 29일 사설에서 "북한이 천안함 사고를 일으켰다는 게 거의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미 행정부가 어떤 대응을 할지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보복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야기할 위험이 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추가 대북 제재는 중국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 신문의 전망이었다.
신문은 또 개성공단 폐쇄와 같이 한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는 "북한이 이미 대외무역의 70%를 의존하는 중국에 더 의존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더 엄격한 제재가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중국이 받쳐주는 한 북한은 생존해 갈 것 같다. 왜냐면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또 한국의 국방장관이 이번 주가 돼서야 "어뢰가 천안함 폭발의 원인일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면서도, 누구로부터의 어뢰 공격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신문은 그처럼 조심스러운 언급조차도 국제적인 사고 조사에 참여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의해 곧바로 격하됐다며(played down)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가 "(한국 국방장관의 말은) 조건부 발언"이었다며 "조사가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논평했다고 전했다.
▲ 29일 천안함 영결식 후 '대함경례' 장면.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는 격문이 붙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개성공단 폐쇄 오히려 북한이 위협하는 상황"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28일 기사에서 북한이 서울을 폭격하는 것과 같은 '진짜 미친 짓'을 하지 않는 한 한국과 미국 등이 북한의 국지적 전쟁 행위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천안함 침몰 사고 후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제한적 군사 목표물 타격 등을 주장하지만 한국이 먼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 잡지는 천안함 사고 후 한국 사회에 가득 찬 분노와 슬픔도 '전쟁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으면서 한국인들도 북한이 처벌받길 원하지만 군사적인 조치는 원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잡지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국이 선택할 제재 수단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금강산 관광도 이미 중단되어 있고, 대북 식량 지원도 거의 없으며, 개성공단은 가장 확실한 제재 수단이지만 오히려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를 위협하는 상황이라는 게 그런 분석의 이유다.
'어뢰 아니라 기뢰' 분석도
영국의 <BBC> 역시 '전함 침몰을 둘러싼 한국의 딜레마'라는 29일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BBC>는 "무기 파편이 발견되면 결정적이겠지만 (서해의) 강한 조류를 감안하면 증거가 멀리 흘러갔을 수 있다"면서 "증거가 있더라도 한국 정부가 대응하기에 정치적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더 선호할지 모른다"는 시각을 전했다.
한국의 군사적 보복은 확전의 위험이 있고 시장에 충격을 줘 한국 경제에 해를 주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이미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됐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기 때문에 유엔을 통한 외교적 대응도 한계가 있다는 게 <BBC>의 지적이다.
아울러 <BBC>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그런 행동이 얼마나 도발적인 건지를 알면서도 북한이 해군 방어를 강화하지도 않은 채 공격을 감행했을 리 없다"며 어뢰 공격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해상전투 전문가 노먼 프리드먼은 <BBC>에 "만약 3차 세계대전을 시작할 의도가 없었다면 (북한은) 그렇게 못한다"며 "이것이 바로 (북한의 어뢰가 아닌) 기뢰라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천안함이 어뢰가 아닌 기뢰에 의해 파괴됐을 수 있다는 분석과 관련해서는 지난 26일 <LA타임스>가 이미 주목할 만한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국제위기관리그룹(ICG)의 북한 전문가 대니얼 핑크스톤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워싱턴의 관리들이 자신에게 천안함이 어뢰 공격을 받았다면 매우 경악할 것(absolutely astounded)이라고 말했다며 "관리들은 기뢰(mine) 가능성에 더 신뢰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핑크스톤은 이어 "각각의 시나리오에는 모두 구멍이 있다"며 "어떤 시나리오들은 제임스 본드의 영화에나 나올법한 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파들이 현 상황 초래"
천안함 사고가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져도 대응할 수단이 없고 북한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뉴욕타임스>는 28일 한국과 중국, 미국의 전문가들을 인용해 북한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중국의 전략적 의도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상하이 세계엑스포를 계기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도 천안함 사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는 계획에 대한 지지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북한을 압박하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고, 한반도의 안정을 가장 중시하는 중국의 입장 때문이란 것이다.
앞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지난 15일 북한 전문가인 에이던 포스터 카터 영국 리즈대 연구원의 기고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카터 연구원은 '북한을 잃어버리고 있다 : 한국은 북방정책 펴야'라는 기고문에서 "한국의 우파들은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된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면서 "한국의 근시안적 보수파들은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쌀을 보내는데 필요한 적은 액수의 돈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이 대통령을 G20 정상회의 의장이 아니라 북한을 잃은 남한의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밖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2일 국제사회는 당근과 채찍 어느 것에도 반응하지 않은 북한 정권을 다룰 묘책이 없다면서 "남한은 통일을 갈망하면서도 경제·사회적인 비용을 감내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힐러리 "전쟁 얘기 원하지 않는다" 발언과 같은 맥락
영미권 주요 언론들의 시각은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해도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고 △미국 관리들 중에는 어뢰가 아니라 기뢰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들이 있으며 △북한이 중국에 쏠리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요약된다.
최근 외신들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보도를 쏟아 내는 것은 일차적으로 천안함 사고라는 대형 사건이 터진데 따른 자연스러운 관심의 반영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도의 방향이 비교적 유사한 것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오바마 행정부를 포함한 미국 조야의 시각이 투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얘기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23일 발언에서 드러났듯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반대한다는 미 행정부의 메시지가 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해 손을 못 쓰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만 △북한과 중국의 긴밀한 접근에 관한 경계심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피격당했다고 보는 한국 내 여론에 대한 우려 등 복잡한 요소가 보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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