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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이상한 것 먹이는 어린이집에 아이 맡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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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이상한 것 먹이는 어린이집에 아이 맡길 건가

[복지국가SOCIETY] 어린이집 비리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최근 연이어 터진 어린이집의 아동 폭력 사건과 각종 비리에 대해 충격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이윤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이고, 어린이집 운영자들 역시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라나는 새싹이자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들을 불모로 국가의 지원금을 착복하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비리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근무하지도 않는 교사의 이름을 올려놓고 정부가 지원하는 인건비를 착복하는 것을 넘어 각종 운영 지원금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등 발각된 여러 가지 유형들을 보면, 여기가 정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보육과 교육 사업을 하는 곳인지 의심스러워질 지경이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영양 공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에 있을 어린이집 원장들이 이에 대해 속임수를 쓰고,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할 수준의 음식 재료를 사용했다니,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최근 어린이집 문제의 역사적·구조적 원인들

연이어 발생하는 이러한 사건들을 단순히 시설 운영자의 개인적 비리 때문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복지 및 사회 서비스 전달 과정의 비리와 부패라는 주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나 자신부터 반성하게 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상황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최근 어린이집 문제의 원인 몇 가지를 찾아보았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사회 복지의 역사적인 과정 때문이다. 1950년대 남북 간 민족 상쟁 이후 200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사회 복지는 자체적인 능력과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원조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당시 사회 복지의 성격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사회 안전망의 역할을 하는 보편적 복지의 관점이 아니었다. 지원 대상도 장애인이나 저소득층 등 일부에 한정되었고, 지원 내용도 시혜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서비스 제공 주체들도 마찬가지다. 몇몇 종교 단체와 진솔한 시민들이 운영했던 일부를 제외하면, 다수의 복지 시설 운영권은 부패한 정권과 정치 세력이 자기 사람에 대한 보상으로 부여한 특혜적 성격이 강하였다. 즉, 사회 복지 자체가 착복과 치부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수십 년 전에 지면을 장식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최근 다시 영화 <도가니>로 화제가 된 광주 인화원 사건 등과 유사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 원인에는 이러한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이러한 복지 시설들이 가진 슬픈 역사적 배경으로, 오늘날까지도 복지 시설과 사회 서비스 현장이 한편으로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와 연민을 실천하는 장으로서 감동적으로 다가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비리와 부정, 그리고 착복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과 혼재되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두 번째는 성장 중심 개발 독재의 후유증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한 역사적 경로 의존성만으로 복지 시설들의 각종 비리가 합리화되고 용서될 수는 없다. 특히, 이번에 드러난 어린이집 비리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성장 중심의 경제 발전과 개발 독재 시대의 금전적 성공 신화가 지배해오고 있는 우리 사회의 천민 자본주의적 성격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데 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추가로 결합되면서 더욱 왜곡된 '물질 중심주의'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주류적 경향성으로 지배하고 있다.

전태일의 분신으로 드러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부터,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환경 오염과 각종 정치적 억압까지, 너무나 한계가 분명한 개발 독재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 시대를 지내버린 것이다. 먹고사는 것을 핑계로 미루어 놓으면서 드러난 '철학과 담론의 천박함'으로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거기에 젊은이들의 피와 노동자들의 눈물로 만들어낸 '정치적 민주화'에 조응하는 '새로운 경제 체제의 구축'이라는 시대적 대안을 실천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우리 사회에 굳건하게 뿌리내리게 한 것은 지난 시절의 민주 정부와 아직도 그 이름이 생경한 실용 정부의 명백한 실책이다.

이에 더하여 진보 세력들의 유례없는 총결집에도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안타깝게 패배했다. 이는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정치적 실패를 넘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화, 그리고 물신화의 경향을 심화시키고 있다. 진정한 민주 정부는 소외된 최대 다수가 재정이 허용하는 최고 수준의 교육과 건강, 주거, 환경을 누리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러한 복지 혜택은 극소수 계층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의 말을 다시 한 번 통감하게 된다.

이제는 양심적인 시민들조차 미래에 대한 전망을 자발적으로 접기 시작한다. 개혁의 상징이었던 486세대들조차 자포자기한다. 생활과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천민성과 금전적 탐욕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사회적, 문화적 유전인자로 자리를 잡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한때 시민들에게 희망의 끈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한 유명 방송인이 급기야 재벌 종편 방송의 사장으로 포섭되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참으로 침통함을 느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에 우리 시민 사회가 무기력하게 침묵하고 있는 동안, 수구적 언론과 자본에 종속된 방송 매체들이 이제 최소한의 장애물이나 수치심도 없이 설치는 게 용납되는 것을 보면, 우리 한국 사회는 이제 희망이 없는 것 같다. 내각 인선에서 위장 전입과 연동한 부동산 투기, 법인카드를 활용한 사실상의 공금 유용, 논문 표절이나 권력을 이용한 각종 이권 개입들은 이제는 공직 낙마 이유로서 기능도 하지 못하며, 안 하면 바보이거나 무능력자로 생각될 정도다.

더구나 매일같이 언론 매체들을 뒤덮는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각종 부정부패, 비리와 독직, 탈세와 파렴치한 사건들 속에 지내다 보면, 최근에 발생한 어린이집 비리와 착복 사건은 차라리 자연스럽다는 착각마저 든다.

영유아에 대한 돌봄 서비스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며, 해당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참으로 소중하고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다. 당연히 이들 사업을 담당하는 주체는 자긍심과 보람과 자발적 열정을 본질로 지녀야 한다. 또한, 그러한 전제 아래 정부와 시민 사회는 여기에 종사하는 분들이 마음껏 일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세 번째로 이보다 현실적이고 정책적인 원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선적으로 정부의 무능과 책임 방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자라나는 아동들을 위해서 집행하는 재정의 비중이 아직도 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전면적인 무상 보육과 보편적인 아동수당 지급은 근대 국가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정책이고, 국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 책무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아동 정책 예산, GDP의 1% 넘기기'를 진보 진영의 정책 목표로 삼고 있으며, 국공립 보육 시설의 비중이 전체 시설의 11%선에 머물고 있는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민간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 교사들의 근무 환경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교대나 휴식 시간도 없이 5분 만에 서서 밥을 먹어야 하는 등 너무나 열악하다. 급여 수준도 8시간 기준으로 97만 원, 10시간 연장 근무를 조건으로 월 평균 100만-120만 원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대한 속 깊은 애정 표현과 마음이 담긴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당장은 현실적으로 민간 영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민간 보육 시설을 합리적이고 개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민간-정부 간의 올바른 결합 모델'을 연구하여야 한다. 이것이 국민들이 정부에 세금을 내는 이유이다.

보육 서비스 전달 및 운영 체계 제고하고 공공성 강화해야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다른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개선해야 할 방향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관리와 보육 서비스 전달 체계를 이제라도 재정립하여야 한다. 250여 개의 기초 지자체마다 국비와 지방비를 합해 매년 수백 억 원의 보육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있음에도,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몇 명에 불과하다. 또 이들에게는 보육 정책과 관련된 전문성도 별로 없다. 4만 개가 넘는 전국의 보육 시설에 대한 평가와 10만 명이 넘는 보육 교사들에 대한 자격 인정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소속의 보육진흥원은 행정 인력을 제외하면 전담 인력이 100명도 안 된다. 그나마도 서류 업무에 치여 1년에 한 곳도 제대로 된 현장 방문을 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시급하게 관리 운영 체계를 제대로 갖추어야 하고, 감시하고 평가할 적정 수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의 운영과 지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우선 각종 비리 사건이 벌어진 시설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형사 사건에 준하여 공금 횡령과 사기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제 금액은 환수하고 벌금으로 징계하여야 한다. 또한, 이들 시설은 강제로 폐쇄하거나 기부 체납과 청산을 통해 국가로 환수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고 운영되는 시설에 대한 공권력의 최소한의 역할이다. 또한, 보육 시설의 질과 상관없이 아동이 다닌다고 무조건 지원할 것이 아니라 인증 사업과 평가 결과를 근거로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이들 시설들에 대한 적극적인 질 관리를 하여야 한다.

정부와 전문 기관이 보육료를 지원하고 교사 인건비를 지급할 어린이집을 정기적으로 선정하고, 미흡한 시설이 발견되면 유예 기간을 두어 개선을 명령해야 한다.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가와 지방 정부의 지원을 중지하여야 한다. 최소한의 보육 서비스에 대한 질적 수준을 충족시키지도 못하는 곳에 국가가 계속 재정 지원을 하거나,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맡기도록 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 정부의 직무 유기이기 때문이다.

셋째, 국공립과 민간 보육 시설들을 운영하고 평가하는 전 과정에 걸쳐 사업 주체와 해당 지자체의 공무원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학부모와 전문가, 그리고 시민 사회가 참여하고 결합하는 '참여적 거버넌스' 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지역 사회에서 밀접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사업 운영 주체와 결탁하거나 비리를 묵인하게 해서는 안 된다. 투명화의 가장 좋은 방법은 민간 참여를 통한 공개와 '민-관 협치'의 참여적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보육 시설의 평가와 운영에 시민 사회와 학부모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역량이 부족한 곳에는 전문가들의 지원을 반드시 결합시켜야 한다.

▲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고, 어린이집 운영에 학부모를 참여시켜야 한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넷째, 지역별로 국공립 보육 시설의 비중이 장기적으로 30%를 넘어야 민-관의 이상적인 결합과 선의의 경쟁 관계가 형성된다. 대부분 민간 시설의 비중이 과도하며, 동시에 인구 감소로 보육 시설의 공급이 과잉 상태다. 따라서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간 시설을 인수하여 국공립으로 전환함으로써 민간의 숫자를 줄이면서 동시에 국공립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지역 사회 공동 육아 등 진정성이 검증된 단체들은 민간 시설을 설립하기보다 기부 체납을 통해 공공 보육 시설로 전환하고 운영권을 위탁받는 방법이 유효할 수 있다.

공익성이 검증되고 보장된 종교 단체도 국가나 지방 정부에 기부 체납을 통해 국공립으로 보육 시설을 설립하도록 하고, 민간 시설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구대로 통합되면서 남은 파출소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거나, 학생 수가 줄어든 초등학교의 교실을 지자체장이 임대하여 국공립 보육 시설을 설립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평가 과정을 엄중히 해서 부적격 판정이 내려진 어린이집은 예외 없이 지자체나 정부 또는 공공 기관이 합리적 보상을 통해 인수하여 국공립 시설의 비중을 높여나가야 한다.

"참여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다"

민주주의자였던 고 김근태는 이렇게 말했다.

"참여는 현실적 상황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다. 분노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하는 온갖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비리와 부정부패를 인지하고 각성하면서 격발된다. 동시에 분노는 한 번에 불태우고 마는 일회성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 가치를 고양하고 확장시키려는 고귀한 행위로 유도되어야 한다."

복지국가는 개발 독재가 만들어 놓은 잔재를 일소하며 천민 자본주의의 불의한 탐욕을 극복하는 새로운 동력이다. 또한, 복지국가는 인류가 20세기를 거치면서 획득한 시민 사회의 보편적 권리이자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다. 반생명적인 것,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모든 비리와 부정에 대항하여 싸워나가고자 하는 것이 복지국가 운동이며, 이에 함께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시민들의 소명이다.

어린이집 사태를 단순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또 하나의 비리 사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에 대해 반성하고,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을 성찰하고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를 조직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동시에 아이 하나가 나라의 소망을 키운다'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 최근의 어린이집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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