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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들이 행복해야 '국가 경쟁력'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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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들이 행복해야 '국가 경쟁력'도 생긴다

[복지국가SOCIETY] '창조적 잉여'와 보편적 복지국가

사전에서 '잉여'를 찾아보면 '쓰고 난 나머지'라고 나온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잉여 인간은 '사회가 필요로 해 쓰고자 하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부 발표대로 40.5%에 불과한 취업률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하고 있다. 요행히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더라도 회사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발견할 수 없어 스스로를 '잉여'라 지칭하는 이도 있다. 많은 젊은이가 스스로를 잉여라고 생각하는 시대임에도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전문지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직접 잉여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로 하고 <월간 잉여> 창간호를 냈다.

지난 2월, 잉여에 의한 잉여를 위한 잡지 <월간 잉여>가 창간 1주년을 맞았다. 1년 동안 잡지를 발행한 결과 지금 내게 남은 건 1년 동안 '버텨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25만 원 남짓으로 줄어버린 통장 잔고가 전부이다. 물론, 그동안 만난 '사람'도 남았다. 잡지를 만들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여러 인터뷰 대상자들, 원고료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고해 주신 필자들, 그리고 재미나게 읽어 주신 독자들이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그리고 <월간 잉여>를 통해 출판을 비롯한 문화 산업의 육성 정책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소중한 성과로 남게 되었다.

예술을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 복지국가가 필요하다

▲ <월간 잉여> 3·4월호 ⓒhttp://monthlyingyeo.com/
<월간 잉여> 창간호를 내고, 그러한 사실이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지원해 주었다. 그러나 1년을 버텨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1인 출판을 한다는 것, 그중에서도 정기적인 월간지를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공익적인 목적으로만 낸다는 것은 헌신적인 희생이 있더라도 "기적"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물론 여러 사람이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노력할 가치가 있었다. 지지해주는 분들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좀 더 버텨볼까!"라고도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방법을 답습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월간 잉여>와 같은 돈이 안 되는 잡지라도, 출판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아니, 제작비라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담보되면 잡지는 격월간으로 내고 남은 시간에 알바를 하며 버텨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지인은 공모하는 공공 프로그램에 도전해 지원금을 타면 인쇄비와 취재비가 해결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검색 신공을 발휘해서 여러 정보를 수집하면서 지원도 하기 전에 낙담해야만 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개는 내가 지원할 자격도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3년 이상 된 출판사, 혹은 몇 명 이상이 함께 설립한 기업 등이 기본적인 지원요건에 해당했다. 설령 선정되어 지원을 받아도 각종 보고와 서류, 그리고 회계 장부 작성 및 증빙 서류 제출 등 늘어날 잡무를 혼자서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출판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문화가 제대로 육성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

상업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문화적 자발성과 다양성에 기여하는 출판물이 계속 명맥을 이어가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다음의 역사적 사례에서 이러한 다양성의 중요성을 환기해보자.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 200여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서는 식량 수탈에 시달린 끝에 다른 농작물의 재배를 포기하고 값싼 감자를 대량 재배하여 주식(主食)으로 삼았다. 그리고 단위 면적당 최대의 수확을 얻기 위해 점차 전체 농가가 소출이 가장 많은 하나의 감자 품종만 재배하게 되었다. 그런데 감자 마름병(potato late blight)이라는 곰팡이 병이 작물을 덮쳤다. 이 감자 품종은 감자 마름병에 취약했다. 병이 창궐한 지 2개월 만에 아일랜드 감자는 씨가 말랐다. 아일랜드 전체가 황폐화되었고, 이 일은 많은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민을 떠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단일 품목 생산 체제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의 하나다.

마찬가지로 문화도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상업성에만 맞추어 단일한 방향으로 문화가 창조되면 결국 이러한 문화는 오래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잃는다. <월간 잉여>가 실시한 사생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그림의 작가인 황옥 씨는 본인의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향하는 그곳에 핵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곳으로 향했던 이들은 전멸할 것입니다. 그림의 아래쪽에 '잉여'로운 자세로 컴퓨터를 하고 있던 잉여가 살아남아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잉여들은 대체로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습니다. 못 가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기에,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될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한 방향을 향한다면, 모든 사람이 같은 길로만 간다면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모두 같이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들이 구성하는 공동체 역시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일에 종사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한다면 공동체의 생명력은 더욱 길어지고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돈 안 되는 분야에서 다양하게 자신이 가진 끼를 발휘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창조적 잉여짓'이 바로 문화의 다양성을 만들어 내고, 국가 경쟁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복지국가 방식의 출판 지원 정책이 중요한 이유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자신의 영역에서 필요한 일은 자신이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판이나 잡지업계에서도 당사자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격월간 잉여나 계간 잉여가 될 수도 있지만, 나의 <월간 잉여>도 앞으로 더 노력할 생각이다. 나는 <월간 잉여>를 통해 파편화되어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부여하고, 그로 인해 영혼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다. <월간 잉여>를 통해 살아나가는 데 유용한 정보도 제공하고 싶다. 독자들이 편하게 <월간 잉여>를 접하도록 유통망도 확대하겠다. 하지만 좀 다른 상상도 해 본다. 나의 개인적인 노력만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에 의해 출판업과 인문학을 육성하는 방안은 없을까?

출판업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유통업체가 30% 전후의 수수료를 떼 가는 것이 관례다. 농산물은 농협이나 소비자 협동조합을 통해 직거래하여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이익을 보도록 하고, 중소기업 제품들이 제값을 받으며 팔릴 수 있도록 공공 홈쇼핑도 만든다고 하는데, 출판 분야에서는 그러한 방안이 없을까? 더 많은 도서관에서 <월간 잉여>를 구매해주고, 알라딘이나 예스24, 그리고 교보문고와 같은 거대 인터넷 서점을 통하지 않아도 공공 기관이 만든 공공 인터넷 서점을 통해 수수료가 없거나 적은 직거래 장터를 지금보다 더 많이 개최하는 것도 기대해본다.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아마존 등 다국적 대형 인터넷 서점에 대항하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공공 인터넷 서점을 만든다고 한다.

지금처럼 몇몇 매체를 정부가 선정해서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식보다는 공공 도서관을 확충하거나 이들 도서관에 도서 구입비 지원을 늘려 독립 매체 및 인문학 매체를 구매하도록 하는 방법은 어떨까? 이러한 방법이 특정 매체를 선별해서 지원금을 주는 방향보다 더 근본적이고 공리적인 방식일 것이다. 특정 매체나 업체가 정부의 지원을 독식하는 것도 막을 수 있고, 그 단체가 지원비를 지원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쓸 위험도 방지할 수 있으며, 출판계가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도록 만드는 정책이 바로 보편적 복지국가 방식의 출판 지원 정책이 아닐까?

우선 현재 특정 매체를 선별하여 지원하는 정책의 예산을 전국 750곳 정도 되는 공공 도서관에서 도서 구입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당하면 어떨까?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도서관을 통한 인문학 육성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전국 1만1300개의 학교 도서관을 학과 시간 외에는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대신 사서 인건비와 도서 구입비를 지원해 전문 사서들이 <월간 잉여>를 포함한 다양한 잡지나 책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렇게 하면 국민들은 일시에 동네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하나 이상의 공공 도서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도서관 이용객들도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들 도서관의 도서 구입을 통해 더 많은 출판업자와 작가 등 콘텐츠 생산자들이 두루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잉여 인간이 많을수록 국가에 기여하는 영역이 예술이다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출판계 전반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아동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는 조금 낫지만 인문사회 분야 책은 특히 안 팔린다. 마찬가지로 잡지의 미래도 비관적이다. 이 분야는 시장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한계에 이르렀고 사양 산업으로 '도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그냥 망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출판을 포함한 인문과 예술 분야는 인류에게는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영역이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이미 고도화되었고, IMF 시기를 거치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1996년)을 통해 예견한 것처럼, 기계·전자·통신의 발달은 GDP는 팽창시켰으나 인간의 일자리는 계속 축소시키고 있다. 대형 크레인과 덤프트럭이 건설 현장의 노동자를 대신하고, 현금 인출기와 전자 뱅킹 그리고 자판기가 사무원과 서비스직의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물론, 기술 발전과 연구 개발의 성과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도 계속 생겨나겠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고용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수 경제도 활성화되기 어렵고, 복지에 대한 수요 증가, 범죄 증가 등 여러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이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복지 확대를 통한 사회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시민 사회, 종교, 예술 등 제3의 영역(the Third Sector)의 확대를 통해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 요구되는 시기다. 제3의 영역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계에 의해서 대체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인간관계, 동료 의식, 형제애, 봉사 정신 등에 그 존재적 기반이 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과 '문화' 분야 역시 그러한 제3의 영역에 속한다. 이들 제3의 영역에서 시장으로부터 '팽(烹)' 당한 잉여들의 노동력을 흡수하고, 이들에게 기초적인 사회 서비스와 문화 생활을 보장하는 등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삶의 안정을 제공해야 한다. 즉, 현대 사회가 양산해 놓은 잉여들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제3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여도 먹고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이다. 예술이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나는 <월간 잉여>를 통해 자신이 잉여라고 밝힌 미술 작가, 소설가,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고단한지를 알 수 있었다. 나의 고민은 결국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의 확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 이후 지속적으로 복지 정책을 추진했고, 심지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대처 정부에서도 복지 정책 자체는 축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3의 길'을 표방한 토니 블레어 정부도 다른 복지 분야에서는 구직하거나 취업하는 등 개인의 노력과 연동하여 복지를 지원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경우에는 구직 노력이나 재교육 수강 여부와 상관없이 복지 지원을 계속 받도록 하였다.

예술인들은 직장에 취업하여 주어진 일을 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면서 여유를 가져야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계속 지원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복지 정책이 수십 년 계속되면서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조엔 롤링과 같은 사람이 미혼모 신분으로 아기를 키우면서도 전업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당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뮤지컬이나 영화의 근본이 되는 컨텐츠의 창작이 복지 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한류가 국부 창출의 유망한 길이라고 국가적으로 장려되고,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 국고로 수십억 원의 예산이 지원되었지만, 정작 한류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은 아직도 요원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유망한 작가로 손꼽히던 최고은 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사망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예술인을 위한 제대로 된 지원 정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잉여들이 굶어 죽을 걱정 없이 다양한 창조적 활동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보다 촘촘한 사회 보장을 하는 복지 국가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꿈꾸며

현재의 한국 사회는 버려진 잉여는 많지만, 창조를 할 수 있는 '잉여'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전일제(full time) 근무를 해야 기본적인 삶을 지탱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한국 사회는 많은 이들이 잔업이나 주말 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추가 근무를 하며 건강을 해치고 자아를 잃어버리고 사는 '나쁜 사회'다. 대학생 시절부터 등록금과 생활비, 하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였기에 이제는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구성원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자살률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저소득 취약계층 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함한 많은 이들이 삶의 불안감을 느끼는 보육, 교육, 의료, 주거, 그리고 일자리와 노후 소득 보장 문제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담당해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창조적 잉여'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이지 않도록 보편적 복지 정책과 문화·예술 지원 정책을 시행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얼마나 다른 사회가 될까?

나는 복지국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감정을 어루만져주며, 국민 모두가 자존감과 행복을 느끼는 세상이 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창의적이며 자유로운 '잉여'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창작에 전념해도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 그리고 '잉여짓'을 통해 국가의 성장과 발전에도 기여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나라가 보편주의 원칙의 역동적 "복지국가"라고 생각한다. 우리 잉여들은 그러한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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