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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4대 중증질환' 공약 수정, 비판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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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4대 중증질환' 공약 수정, 비판만 할 건가?

[복지국가SOCIETY] 건보 보장성 확대 위해 새 정부 견인해야

박근혜 당선인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4대 중증질환 치료비 전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던 공약에 대해서 요즘 말들이 많다. 암 환자, 심장 질환자, 뇌 질환자,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의 경우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를 포함한 진료비 일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으로 이해됐던 공약이 인수위 검토 단계에서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다소 모호한 표현들로 기술했지만 박근혜 당선인과 비슷한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데 비하면 박근혜 당선인으로서는 다소 억울함을 가질 수도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박 당선인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누차 강조해 왔고, 지킬 수 있는 것만을 공약으로 고르고 골랐으므로 공약에 토를 달지 말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기 때문에 말을 바꾼 것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5년 전과 달리 복지국가 실현과 복지 프로그램 확대가 중요한 정치적·정책적 쟁점이 되었고,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거기에 더해서 전체 유권자 48%의 지지를 획득한 문재인 후보와 벌인 TV 토론 공방으로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국가 부담'은 국민적 인지도도 높은 사안이었다. 그만큼 박 당선인으로서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 28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고용복지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 홈페이지

사실 박근혜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국가 부담' 공약은 문재인 후보의 공약보다 급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국가에서 치료비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질환의 범위가 문재인 후보의 공약(연간 총 건강보험 입원진료비 중 100만 원을 넘는 비용에 대해서는 질병에 관계없이 건강보험에서 보장한다)보다 좁다는 점과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만 국가가 100% 보장하겠다는 정책 시행의 타당성과 적절성 논란을 제외하고 보자면, 현재 건강보험 급여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는 상급병실료, 특진료, 간병비까지 포함하여 모든 치료비에 대해 '무상 의료'를 시행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시행 방법이나 결과의 측면에서 공히 잠재적 급진성을 지니고 있는 공약이었다.

만약 박 당선인의 공약대로 실현되어 우선적으로 4대 중증질환에 대해 무상 의료가 가능한 기반과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앞으로 추가 재원이 확보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무상 의료를 다른 질환으로 확대해나갈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에 잠재적 파급력이 만만치 않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집 내용과 후보 간 TV 토론에서 발언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4대 중증질환부터 단계적으로 무상의료를 추진'하는 것이 공약의 기조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했다. 따라서 이 공약은 박근혜 후보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유권자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 100%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일이 보험료를 인상하든지 아니면 증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든지 간에 재원만 확보하면 쉽게 시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신의료기술의 지속적인 도입과 확산에 따른 원가 상승과 고령화에 따른 중증환자 증가로 인해서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재원 부담이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치료비 자체를 100% 무상으로 하면 실질적인 의료비 부담이 0원이 되기 때문에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서 수요는 늘고 의료 공급 또한 늘어나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가파르게 증가할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서구 복지국가들은 이미 다 시행하고 있는데 재원만 확보하면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서구 복지국가들의 보건 의료 시스템은 역사적 발전 과정, 문화적 토대와 성취, 현 의료시스템에 녹아 있는 공공적 인프라와 역량 측면에서 우리나라 실정과 큰 차이가 있다.

서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의료 이용 과정에서 일정한 단계와 절차가 제도적·문화적으로 정착되어 있고,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 간에 일정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 국가는 의료인과 병의원들이 개인과 조직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기보다는 환자의 건강과 질병의 상태를 우선하며 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선한 대리인의 역할에 더 충실하도록 공공성이 높은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일정한 인구 집단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예측하고 그 비용을 산출할 수 있기 때문에 재원 운용에 대해 예측하기 수월하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서 4대 중증질환에 국한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100% 무상 의료를 적용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미 전 국민의 80%가 가입했다고 하는 실손형 민간 의료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실손형 민간 의료보험 가입자는 병의원 이용 시 본인이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이 얼마 되지 않아 부담 없이 의료를 이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보험회사의 급여비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험회사들은 늘어난 비용 부담과 앞으로 늘어날 비용까지 추가하여 보험 갱신 시점에서 가입자의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만약 국가가 4대 중증질환에 대하여 100% 무상 의료를 시행한다면 민간 보험회사처럼 지속적으로 불어나는 급여비 부담을 충당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치료비 100%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행정적·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게 떠맡아야 할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의료 공약을 부실 공약이라 공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이라는 '정치 게임'은 끝난 상황이고, 문재인 후보, 아니 '무상 의료'의 원조라는 진보 정당이 집권했다고 하더라도 공약을 현실화하는 데 더 높은 현실의 장벽 앞에 부닥칠 운명이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민주노동당을 필두로 그동안 진보 정당이 외쳐왔던 '무상 의료'의 성과는, '무상 의료'로 대변되는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보수 정당의 대통령 후보조차 그 정책 기조를 따르는 내용을 공약으로 내놓도록 만든 것까지였다.

우리 사회가 무상 의료의 가치에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내세웠던 진보 정당과 무상 의료를 차용한 민주당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보건의료 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박근혜 정부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정부를 견인할 필요가 있다.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완수하라는 정치적 압박과 비판만으로는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타협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정권이 뒤바뀐들 이념을 달리한 편 가르기 공방만 반복할 공산마저 있다.

무상 의료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서구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나가기 위해서라도 어떤 형태이든지 보건의료 토대의 개혁은 필수적이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보장성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조성된 재원이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판단이 전제되고 일정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실제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장과 경쟁의 논리를 앞세워 효율적 행동을 강요하거나 미완의 규제 틀로 효율적 행위를 강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보건의료 체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목표, 그리고 실행 전략에 대한 정치적 합의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실질적이고 단계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제도를 다듬고 운영의 노하우를 익혀 나아가야 한다.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정치권이 국민의 표를 놓고 경쟁과 합의의 장을 벌이는 것.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가져보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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