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가 갑작스럽게 대선레이스를 중단했다. 너무나 갑작스런 사퇴였기 때문에 '해석'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민주당에서는 안철수의 사퇴를 '아름다운 단일화'로 해석하고,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저질 공격이 초래한 '좌절과 포기'로 해석하고 있다.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 최초의 흐름이 어떻게 잡히느냐에 따라 여론은 큰 방향성을 잡기 때문에 사퇴 이후 첫 2~3일 동안 양측은 피 말리는 대응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권의 해석 투쟁과 함께, 실제로 안철수 지지층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안철수 지지층의 본질은 애당초 새누리당 지지 성향이 아니었다. 언제라도 민주당을 지지할 생각은 있지만, 당장은 민주당의 구태와 엉터리 짓에 비판적이던 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 성향들이 하나의 정치적 근거지로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은 안철수가 기존 정치권의 빈틈을 극대화 하는 포지션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안철수의 포지션이란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짧은 언급으로 상징되는 바로 그 포지션이다.
안철수는 대선 출마선언 직후에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안보 의지를 다졌다. 안철수의 정책 비전 중 제일 마지막 부분은 '강력한 안보'였다. 안철수의 사퇴를 두고 일부 안철수 지지층에서는 '종북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생각하는 흐름도 나왔는데, 이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중에 다소 혼란을 야기하긴 했지만, 안철수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유력 대선 후보 중엔 유일하게 '보편적 증세'를 제기했다. 안철수의 약속으로 명명된 안철수의 정책 비전은 총 7개의 범주 중에 3개를 교육, 보육, 노후, 의료 등 복지 영역에 할애하기도 했다.
결국 복지와 안보로 요약되는 '안철수의 생각'을 민주당이 얼마나 계승하느냐에 따라 대선결과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안철수의 복지정책을 상징적으로 끌어안고, 그의 안보 의지를 계승하는 것이 향후 대선 게임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민주당의 안철수 계승 투쟁은 안철수 지지층을 모두 즉각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안철수 지지층에게 문재인 후보로 갈아탈 '핑계'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이후의 상황 정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지지층이 문재인으로 옮겨갈 적당한 핑계가 주어진다면, 과정상에서 이런 저런 뒷얘기는 나오겠지만, 안철수의 사퇴는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단일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안철수가 정몽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사퇴 시점에서 되새겨 볼 것은 그의 사퇴 선언문 보다는 대선 출마 선언문이다. 안철수는 출마 선언 당시 "앞으로 계속해서 정치 인생을 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민주당과의 단일화라는 거대한 틀에 들어 온 이상, 계속 정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기존의 단일화 프레임 안에서 정치적 활로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안철수의 가치는 순간적으로 잠시 하락하겠지만, 일정 시점 이후 대선 마당에 복귀하면서 다시 안정세를 찾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모든 전망은 민주당이 적극적인 안철수 계승 투쟁을 전개했을 때의 일이다.
안철수 후보는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지만, 그의 정치는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이나 김영삼 같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무려 30년 동안 온갖 핍박을 무릅쓰면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다. 그 과정에 비하면 안철수가 최근 1년 동안 쌓아올린 정치적 자산은 거의 날로 먹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실물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전의 원칙'을 고수하는 데 있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자세는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이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미래를 먹고 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다년간에 걸쳐 불가능한 출마를 반복하면서 여러 번 가슴 아픈 패배를 반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반면, 2012년 진보 정치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단기적인 기동으로 눈앞의 당선에는 성공했지만, 그 지지층은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한낱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정당'이 아니라 '개인'이 정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아마추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소속 후보였던 안철수 개인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되었건 결과적으로 안철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감동을 준다. 정치는 자신이 내뱉은 말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만, 실상 이런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위 진보 정치인들도 대중과의 약속을 헌신짝 던지듯이 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았다. 안철수의 약속과 안철수의 실천은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안철수의 사퇴는 오히려 한 측면에서 정치인 안철수에게 합격점을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안철수는 후보직을 내려놓았지만,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로 상징되는 안철수 지지층이 퇴장한 것은 아니다. 이를 담아낼 정치적 그릇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언젠가 돌아올 안철수의 미래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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