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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도 원하는 복지, 이젠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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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도 원하는 복지, 이젠 '합의'가 필요하다"

[복지국가SOCIETY] 복지국가, '이념적 조화' 속에서 태어났다

올해 말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에 복지공약이 점입가경이다. 예전부터 친(親)복지 노선을 견지한 야당은 물론이고, 시장 자유주의의 수호자로 자처하던 여당에서도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에서 사회복지의 확대를 공약하고, 이 공약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지에 대해서 서로 토론하고, 그 결과가 선거에 반영되는 것은 선진정치의 구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고질적인 지역감정에 기대면서 표를 구걸하거나 불필요한 토목사업을 통해서 표를 사는 구태의연한 정치보다는 훨씬 발전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복지 공약은 그저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권력을 잡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구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대선에서 현 집권세력이 약속하였던 대학생 반값등록금은 아예 없었던 일이 되었고, 호기롭게 선언하였던 300만개 일자리 창출은 오히려 300만 명 실직자의 양산으로 귀결되었다. 더욱이 생활물가를 잡아서 서민의 생활비를 30% 절감하겠다는 공약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권기간 내내 서민들은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회복지를 당리당략에 따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결국 민생복지는 실종되고 정략과 불신의 정치만 남게 된다. 지난 해 한국의 정치 지형을 강타하였던 무상급식 논란만 하더라도, 이것이 본질적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대표적인 쟁점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무상급식 여부에 보수주의 이념과 가치의 사활이 걸려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진보적 복지국가가 완성되는 핵심적인 프로그램도 아니다.

무상급식은 그저 단순하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점심을 먹이는" 것으로, 국가재정이 파탄 날 정도로 예산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한국형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이렇게 규모도 크지 않고 주변적인 성격의 복지 프로그램을 마치 한국 복지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제도인 것처럼 진보와 보수가 과도한 진영논리에 빠져 서로를 적대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것은 앞으로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무상급식에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대선이라는 대규모의 선거철을 맞아 무상급식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중요하고 규모가 큰 복지제도에 대해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여당과 야당에서는 이런 저런 공약을 내걸 것이고, 국민들은 "어디 한번 다시 속아보자"는 심정으로 은근한 기대를 하다가 다시 실망에 빠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필자의 생각으로 유일한 방안은 복지를 진영논리에 입각한 과도한 이념의 쟁투장이 아닌, 이념의 비무장지대, 즉 합의의 영토(the terrain of agreement)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원래 인권을 실천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합의의 영토'란 개념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소한 이것만은 지키자"고 합의하는 신사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리 이념적 지향이 다른 정당이라도 '인권의 수호'라는 명분 앞에서는 서로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성숙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합의의 영토'가 넓게 포진되어 있어서 진보와 보수라는 두 날개가 안정적으로 날아갈 수 있는 균형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에서 합의의 영토는 협소하다 못해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즉 합의의 영토를 세우고 가꾸고 지켜온 전통이 없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 세력은 거의 모든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상대방이 찬성(반대)하기에 우리는 반대(찬성)한다"는 소아병적 옹고집으로 일관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무상급식만 하더라도,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울시장 자리를 걸면서까지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찬반 주민투표를 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역사적으로도 복지국가의 탄생과 발전은 어느 한 세력이 다른 세력과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이겨서 얻은 전리품은 아니었다. 복지국가는 진보와 보수 세력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한편, 서로의 공감대를 현실 세계에서 넓혀 가려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복지국가의 모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경우에도, 복지국가의 세 가지 지주(支柱)인 국민보험제도와 무상의료제도, 그리고 무상교육제도는 각각 다른 이념적 신념을 지닌 양심적 지식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즉 국민보험제도는 냉철한 자유주의자인 베버리지에 의해서, 무상의료제도는 열렬한 사회주의자인 베반, 그리고 무상교육제도는 온정적인 보수주의자인 버틀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복지국가는 태생적으로 상대방을 부정과 극복의 대상으로만 삼는 '이념적 투쟁'이 아닌 '이념적 조화'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면서, 이후 '합의 정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복지국가의 시대를 열게 된다.

21세기 한국에서도 복지국가의 건설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명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섣부르게 사회복지를 이데올로기의 전장으로 끌어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좌우로 나뉘어 무한 투쟁하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복지를 이데올로기의 비무장지대, 즉 합의의 영토로 편입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 여야는 서로 비슷비슷한 복지 공약을 발표하고 있지만, 공통점보다는 차이점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온갖 해괴한 복지 브랜드를 개발하고는 선거 이후에는 무책임하게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서 여야의 복지공약에서 서로 공통되는 부분들은 확인하고 합의를 위한 장을 마련하여야 한다. 즉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이번에는 최소한 이것만큼은 실현될 수 있도록 하자"는 신사협정을 맺게 하고, 선거 후에도 실현여부를 꾸준히 모니터하여야 한다. 정치적으로 성숙한 나라일수록 합의의 영토가 넓고 비옥한 법인데, 이러한 합의의 영토는 바로 자각한 시민들의 땀과 열정과 참여로 이루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핀란드의 한 학교에서 교사회의가 이뤄지는 장면. 북유럽 국가 등 복지가 잘 이뤄진 나라의 특징은 소모적인 대립을 넘는 합의 문화다. ⓒ프레시안(성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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