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관심 있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일반적으로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 의지와 참여 속에 마을의 물리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개선하여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 사업은 관에서 계획을 세우고 관이 주도하던 기존의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의 주인인 주민들이 계획을 세우고 주도적으로 마을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의미한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다.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 대한 기대와 우려
최근 입법된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마을 공동체 만들기를 "지역의 전통과 특성을 계승 발전시키고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그 기본 원칙으로 ① 주민 간의 긴밀한 관계 형성을 통한 주민공동체의 회복 지향 ② 주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주민 주도 ③ 주민 및 마을의 개성과 문화의 다양성 존중 ④ 주민과 행정기관의 상호 신뢰와 협력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주요 사업으로는 주거환경 및 공공시설의 개선, 마을기업의 육성, 환경ㆍ경관의 보전 및 개선, 마을 자원을 활용한 호혜적 협동조합, 마을 공동체의 복지 증진, 마을 공동체와 관련된 단체ㆍ기관의 지원 등이 있다. 서울시에서는 이 조례에 근거하여 '마을 공동체 위원회'와 '마을 공동체 종합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주거ㆍ복지ㆍ문화ㆍ경제공동체 등 5개 시책 68개 사업에 대하여 1,340억 원을 투입하기로 하였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자칫 새로운 방식의 관 주도 사업이 되거나, 정치세력이 바뀌면 흐지부지될 가능성 역시 없지 않다. 특히 '마을 공동체 만들기'가 단기 계획에 근거하거나, 투입 예산 대비 실적 중심으로만 평가될 경우,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즉, 마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민들은 사업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행정 경험이 풍부한 관 중심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관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일부 민간이 수동적으로 협조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큰 틀에서 과거의 사업방식과 다르지 않게 된다.
'마을 공동체 만들기'가 성공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실질적인 '주민 참여'이다. 하지만, 실제로 생계에 바쁜 주민들이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참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관건은 마을 공동체에서 깨어 있고 조직화된 주민들이 얼마나 형성되고 참여하는 지에 달려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마을 공동체 사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마을을 중심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므로 '역량 있는 주민'을 형성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대중적 지역복지 운동이 중요한 이유
최근 무상급식 운동을 필두로 보편적 복지 운동을 지역으로 확산하며, 대중 속으로 뿌리 내리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는 대중 활동과 동떨어진 상층 또는 전문가 중심의 정책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그 동안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 과거의 복지운동은 대부분이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중적 힘이 뒷받침되지 않아 결국에는 입법 과정에서 누더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간 이루어졌던 상당수의 지역복지 운동은 중앙에서 수립한 계획들을 중앙에서 제시한 일정에 따라 지역에서 수행하는 정도였다. 즉, 팔과 다리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소수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개별적 사안에 따라 서명이나 선전 활동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 결과, 지역복지 운동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과 동떨어진 상태에 있었으며, 지역 주민들은 복지운동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것이라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역복지 운동의 이러한 피동성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복지는 과거의 시혜적 서비스에 불과하며, 복지를 확대하게 되면 나라의 살림살이가 거덜이 나고, 결국 나에게도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대중적 복지운동의 가치는 바로 이러한 추상적 관념을 지역 수준에서의 구체적 활동을 통해 극복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전문가 중심의 복지운동 틀에서 벗어나서(물론, 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대중적 복지운동이 지역 속으로, 대중 속으로 뿌리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앞서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대두된 배경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 성공의 관건은 관의 시각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계획과 이의 차질 없는 수행을 통한 실적의 달성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계획과 그 계획에 더 많은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마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와 맥락을 같이 하여 대중적 복지운동의 지향은 대중들이 복지서비스의 수혜자로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라는 생활의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다양한 복지활동을 하거나 경험함으로써 보편적 복지 실현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에서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핵심이듯이, 대중적 복지운동 역시 '대중의 자발적 참여'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 주민과 대중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복지 공동체 건설 운동에서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로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과 대중적 복지운동과의 실질적 결합을 논의하기에 앞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사업과 보건복지사업 간의 기존 방식의 결합을 생각해보자. - "주거환경이 취약한 마을에서 주거환경의 개선을 목표로 하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열악한 주거환경 이외 마을의 주요 문제를 파악해 본 결과, 보건과 복지 수준 역시 매우 취약함이 드러났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할 보건소와 복지관에 도움을 요청한다. 관할 보건소와 복지관은 그 마을에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몇 가지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보건과 복지 서비스의 이러한 결합은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에의 기계적 결합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특정한 사업 주제를 가지고 수행하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마을의 전반적인 변화가 아니라 부분적인 변화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적 변화 역시 관으로부터 받은 예산의 크기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주거환경 개선'을 주제로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하는 지역은 주거환경 문제 외에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마을의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중적 복지 활동으로서 건강한 '복지 공동체 만들기'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건강한 복지 마을 만들기의 목적은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마을의 전반적인 사회적, 물리적 환경과 규범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여기서 '건강한'이란 단어는 넓은 의미의 건강을 의미하며, 이러한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들로 주거, 고용ㆍ실업, 교육과 같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요인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사회적ㆍ물리적 환경 요인, 그리고 보건의료서비스와 사회복지서비스가 있다.
실제 앞서 지적하였던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만들기 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요 사업 내용들인 마을 주거환경의 개선, 환경ㆍ경관의 보전 및 개선, 마을 기업 육성(고용 창출), 주민의 복지증진 등은 모두 주민들의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들에 다름 아니다.
건강한 복지 공동체는 돈의 힘이 아니라 주민들의 힘에 의해 변화되는 마을을 지향한다. 돈은 주민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예컨대, 건강이 취약한 마을에서 마을 주민들의 건강한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주민건강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수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대부분의 경우에는 '주민건강센터'를 유치하겠다는 기초지자체장의 약속을 받아내고, 예산이 편성된 것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고, 그 이후는 관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이후부터이다. '건강한 복지 공동체 만들기'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주민건강센터'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바로 주인이기 때문에 '주민건강센터'가 지역 주민들의 건강한 생활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운영과 활동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모니터링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비록 처음에는 힘들고 더딜지 모르지만, 주민들은 이를 통해 주민자치의 실현과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된다.
현재 지자체 수준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각종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목적은 결국은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이는 지역의 대중적 복지운동으로 제안된 '건강한 복지 공동체 만들기'의 지향하는 바와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두 사업은 목적 달성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주민 참여'라는 가치를 공유한다. 따라서 두 사업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복지가 나의 참여와 노력과 무관하게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참여와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며, 결국에는 나와 내 가족의 세금 부담으로 다가오는 낭비적인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확실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생활 속에서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복지 실천 전략, 즉 '건강한 복지 마을 공동체 만들기'라는 대중적 활동을 통해 우리의 시대정신인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 기여하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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