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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연금 적립금 고갈, 과연 문제인가?"

[복지국가SOCIETY]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출산율 저하'

국민연금, 적립금 고갈이 정말로 문제인가?

보수언론이 여야 정당들이 앞 다투어 내놓는 복지공약을 비판할 때 즐겨 들이대는 논거 가운데 하나로 복지재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적립금이 몇 십 년 후(대략 2060년)에는 고갈되는 문제가 있다. 최근의 TV 토론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거론되었다. 작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50.8%가 국민연금에서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연금고갈 문제라고 답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문제는 연금과 관련해서 알고 있어야 할 사항 중 기본에 속한다. 여기서 오해가 있으면 심층적인 문제로 논의를 심화시킬 수가 없다.

결론부터 확인하자. 국민연금의 적립금과 연금 수급은 그 근본정신과 근본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직접 연결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근본적 관점에서 볼 때 적립금의 고갈은 연금의 지급 가능-불가능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뭔가 이상하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독자는 보수언론 때문에 오도된 것이다. 근본정신이란 무엇인가? 세세히 들어가면 재분배기능, 보험기능 등 다양한 기능들이 들어와 있지만, 근본정신에서 보자면 국민연금은 일국의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세대 간 연대를 통해 노후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점은 과거 전통사회에서 노후를 해결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전통 대가족의 세대 간 연대와 국민연금의 세대 간 연대

전통사회의 대가족은 일종의 <세대 간 연대>를 구현하고 있었다. 지금 일하는 세대는 가장의 통솔 하에 모든 다음 세대원을 함께 부양했다. 그리고 이들이 늙으면 지금까지 정성껏 부양받은 다음 세대가 성장하여 생산을 하고 이것의 일부로 노인 세대를 부양했다. 즉, 그해 수확한 것을 전체 세대가 나누어 먹는 것이다. 연대 정신이 노인 세대의 암묵적 청구권의 근거이다. 자식이 효심이 없는 배은망덕한 인간이 아니라면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는 사태란 오직 실업자가 되거나, 사고로 노동 능력을 상실한 경우,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그만한 소득을 얻지 못하게 된 경우 등에 국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통사회의 세대 간 연대를 통한 노인부양이 세대와 세대를 거치면서 원만히 이루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우선 인구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거나 완만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증대해야 한다. 그래야 세대와 세대를 거치면서 일인당 부모를 봉양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이전과 같거나 감소할 수 있다. 만약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과 우리나라에서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보편적 국민연금제도는 바로 이러한 세대 간 연대를 가족을 넘어 전 사회에 확대 적용한 것이다. 전 사회적 차원에서 세대 간 연대를 구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질상 동일하다. 산업사회가 성숙할수록 예외 없이 전체 국민을 포괄하는 연금제도가 생기는 이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심화되면 경제능력을 가진 가족 구성원에 의존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 해결한다 해도 예컨대 인구의 20%가 노후대책에 실패한다면 그래서 20%의 노인세대가 '거지'나 마찬가지로 생활해야 한다면, 그런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적립식 연금은 세대 간 연대 정신에 맞지 않아

연금제도에는 적립식과 부과식이 있다. 적립식은 계속 기금을 쌓아 가는 것인 반면, 부과식은 그해 필요한 연금수급 총액을 매년 일반 세금이나 연금 기여금의 형태로 국민으로부터 거두어 지급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연금의 근본정신에 맞는 제도는 무엇인가? 그 해 수확한 것을 그 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과거나 현재나 연대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면 부과식 연금제도가 이에 잘 부합한다.

그렇다면 적립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그건 위의 예를 가지고 비유하자면 이런 식이 된다. 자식의 부양과 교육에는 비용이 소요될 것인데, 지출이 발생할 때마다 들어간 모든 비용 내역을 부모가 기록하고 이자까지 붙여서 나중에 자식에게 청구권을 들이민다면 그 총액이 바로 적립금이다. 이 때 자식이 부모의 청구권에 응한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자식이 금융회사에서 비용을 대출로 충당하고 나중에 갚아 나가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적립했다가 나중에 돌려받는다는 것은 자식에게 직접 빌려주고 차용증서를 받는 대신 금융회사나 은행에 저축했다가 나중에 이자까지 붙여 노후연금으로 돌려받는 것과 내용상 같아진다. 즉, 자식과 부모가 직접 차용증서(적립통장)를 주고받으며 지원을 하는 것이나 금융회사를 매개로 부모는 금융회사에 저축하고 자식은 회사에서 대출하여 나중에 청산하는 것이나 내용상 같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적립식이란 연대정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도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연금의 본래 정신에 충실하려면 인구 동향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안정화 되는 것에 발맞추어 20-30년 내로 부과식으로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적립금은 그 기간 중 다 고갈시켜야 한다. 적립금이 고갈된다는 것은 축적한 자산을 흥청망청 낭비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부모가 자식 돈 줄 때마다 기록하는 장부를 없애라는 뜻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연금은 언제나 그 해 생산된 것을 재분배하여 나누어 먹는 개념이고 적립금이란 단지 매해 생산된 소득(부가가치)에 대한 청구권일 뿐이다. 어디 곳간에 쌓아놓은 양식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적립금을 고갈시키라(제로로 만들라)는 말은 청구권을 없애고 연대 정신에 입각하여 국가가 매년 그러한 용도의 세금을 매겨 그냥 나누어 먹으면 된다는 뜻이다. 이점에서 일단은 적립금 고갈을 우려하는 것은 완전히 본질을 벗어난 '공갈'이다.

그래서 남는 질문은 만약 최근의 동향처럼 계속 출산율이 낮아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때는 이상적인 제도인 부과식으로 완전히 이행할 수 없지 않나? 적립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등등 질문이 당연히 생긴다. 또, 한국처럼 연금 도입의 초기 단계에서는 적립을 해야 하는 사정이 존재하는 데 이 문제도 살펴보는 것이 논의를 완결시키는 데 필요할 것이다.

선별주의적 부과식 연금이 당분간 필요한 이유

우선, 제도 도입의 초기에는 적립식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자. 즉, 연금제도가 처음 도입되면 초기에 바로 부과방식을 시행하기 어려운 사정들이 존재한다. 우선 지금 노인들은 개인 책임은 아니고 다만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식부양과 교육, 자기 재산 축적에 전념했지 자신보다 앞선 세대를 위해 기여한 것이 없다(연금보험금 등 사회보장 기여금을 낸 적이 없거나 짧은 기간만 냈다). 그러므로 자신의 노후는 자기 자식과 자기재산으로 많은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

특히. 부동산 투자를 잘하여 큰돈을 번 사람이라면 그는 사적으로(시장에서) 이미 사회에 대해 엄청난 청구권을 확보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에게 다시금 국가에서(결국은 현재 일하는 세대가 낸 세금으로) 연금을 많이 준다면 사람들은 정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재산 정도, 자녀의 소득 정도를 고려하여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은 당분간 기초노령연금 같은 데서 배제하는 '선별주의적' 부과식 연금제도가 당분간 불가피하다.

둘째 이유는 인구가 증가하고 자본 축적이 활발한 경제의 발전 단계에서는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며, 가족이 자녀 교육에 투자 하듯이 개인들은 연금이라는 일종의 공적 저축과 이를 통한 투자를 수행해서 경제 규모를 키우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투자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립금이란 바로 이러한 사회적 투자의 일환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연금 지급의 유일한 원본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아니 반복되는 말이지만 적립금과 연금 지급은 본질적으로는 서로 상관이 없다. 비유하자면 적립이란 자식의 교육 투자를 위해, 또 살집을 마련해 주려고 저축을 하고 투자하기 위해, 그래서 몇 십 년 후 자녀가 이 투자를 통해 높은 소득을 얻고 그것으로 부모 자신도 편하게 생활하기 위한 투자로 적립이 필요한 것일 뿐이다. 만약 이 투자가 잘못되어 자식이 돈도 벌지 못한다면 부모의 적립금(청구권)은 한갓 공수표에 불과할 터이다.

그렇지만 과연 현재의 우리나라 국민경제를 놓고 볼 때 저축이 모자라서 생산적 투자를 못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있다. 현재 대기업들은 내부유보금(법인 저축)을 은행에 쌓아 놓고도 생산적 투자를 그에 걸맞게 늘리지 않을 정도이다. 금융시장에는 저축과 예금, 투자 운용금이 넘쳐나고 있으며, 돈 있는 자산가들은 그간 축적한 금융자산을 어딘가 적절한 수익율로 운용할 곳을 제대로 못 찾을 정도로 금융시장의 자금(저축)이 흔하다. 이런 환경에서 '공적 저축'으로서의 적립식 연금의 존재 이유는 크게 반감된다.

적립식 연금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와 기금운용 상의 위험요소

다음으로 출산율 저하 문제를 살펴보자. 만약 두 명의 부모에서 자녀가 한 명 밖에 출산,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 한 명의 자식이 부모 두 사람을 부양하는 것은 두 명의 자녀가 부담을 나누는 것보다 두 배로 힘이 든다. 이런 사정이 존속하는 환경에서는 세대 간 연대는 깨어지기 십상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또 얼마나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과거 흉년이 지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부모를 고려장을 시켰다는 기록도 있는데, 전통사회에서 조차 세대 간 연대가 깨어질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이다.

또, 부과식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서구에서 연금 삭감과 관련하여 갈등이 자주 표출되고 있는데, 이것도 인구감소, 노년층 증가에 따라 젊은 세대의 부담이 증가해서 생기는 문제이다. 사실 자기 부모라도 그럴 터인데, 노인세대 전체에 대한 의무라고 들이민다면 젊은 세대는 기급을 할 것이고, 불만을 표출할 것이다. 둘이 아니라 혼자 애지중지 공주, 왕자로 자랐으니 "부모님 모시는 것은 당연해"라고 하면 본래 공주 왕자는 자기밖에 모르니 더 반발할 것이다.

하물며 자기와는 상관없이 노인 세대 전체에 대한 의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 국가는 일부 적립금을 국내외의 투자 수익성이 높고 안정적인 곳에 투자하고, 그것으로 노후 세대의 연금 수급에 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2060년까지도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적립금의 고갈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구감소의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 경향이 멈추지 않고 때때로 급격히 악화된다면 국민연금제도 자체가 유지될 수 없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적립금만 쌓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한국처럼 인구 5000만의 대규모 경제에서 어마어마한 적립금을 국가가 쌓아서 그것을 운용, 투자하게 된다면 국가 자체가 거대한 투자회사, 은행이 된다는 뜻이다. 국가가 전 세계를 상대로 투자하는 민간 금융회사의 성격을 갖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현행 제도 하에서도 한국은 2040년경에 GDP의 70-80% 규모인 2000-3000조원이 쌓이고, 이것을 2060년경 고갈될 때까지 운용해야 하는데, 과연 안정적인 운용이 가능할 것인지 확신이 없다. 이렇게 되면 국가보다는 전문 금융회사가 기금을 더 잘 관리할 것이니 노후문제는 차라리 각자 알아서(시장을 통해) 해결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미 건강보험은 사실상 부과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적립을 하지 않으므로 자금의 운용과 관련된 위험이 없다.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적립금 고갈이 아니라 출산율 저하

▲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는 국민연금 적립금 고갈이 아니라 '출산율 저하'다. ⓒ뉴시스
결론적으로 하루 빨리 출산율 저하, 즉 인구감소를 막고 인구를 안정시키는 것이 연금과 관련해서도 긴요하다. 그래서 인구 안정 기조가 가시화되면 보다 빠른 시일 내에 적립식을 버리고 부과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2007년부터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이 바로 부과식 제도이며, 이것을 서서히 확대 강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문제는 인구문제, 즉 출산율 회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금기금의 고갈이 아니라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 진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숙한 부과식 연금제도를 정착시키고 안정된 노후가 보장된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연대정신은 20-30대 출산 연령에 있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환경부터 하루빨리 마련해 주는 데서부터 발휘되어야 한다. 이는 나중에 노후부양에 대한 권리, 즉 보다 완전한 부과식의 연금에 대한 청구권을 주장하고, 또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투자'이기도하다.

이들을 도와주면, 이 세대는 미래 산업을 책임질 자녀의 출산과 정성어린 양육으로 보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자라나는 세대는 다시금 그 보답으로 부모 세대의 노후를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세대와 세대를 이어 '연대의 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문제를 호도하는 보수언론의 '뻥'에 주눅 들지 말고 본질을 직시하자. 이렇듯, 사회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수록 사회연대성에 기반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가 우리가 나아갈 길임이 더욱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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