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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제'에 대한 보수 언론의 공격, 속을 뜯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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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제'에 대한 보수 언론의 공격, 속을 뜯어보면…"

[복지국가SOCIETY] 근로빈곤 문제의 원인과 올바른 해법

며칠 전 보수일간지들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을 잃게 될까봐 하던 일을 그만둔 사례를 크게 부각시킨 기사들이 보도되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들어가는 예산의 규모와 수급자의 수급기간별 분포를 함께 늘어놓았다. 물론 기초생활보호제도가 수급자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복지국가를 공격하는 데 단골로 이용되는 메뉴라서 새삼스럽게 들리지는 않는다. 공격세력은 언제나 납세자의 이름을 빌어 수급자가 일을 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따지고 든다. 일을 못하는 경우라서 소득지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도, 일하는 사람에 비해서는 열등한 처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사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보호제도는 이런 종류의 비판에 항상적으로 노출된다. '도덕적 해이' 사례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하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지원받을 자격이 있는 빈곤과 그렇지 않은 빈곤에 대한 구분을 둘러싼 논쟁은 서구에서도 아주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권리로서의 보편적 소득보장이 우월한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곤층에 대한 보호제도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제도를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가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극단적인 빈곤상태를 벗어나더라도 교육비나 의료비, 주거비 같이 목돈이 들어가는 부분은 따로 일정기간 지원하는 제도적 개선은 이미 논의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수급자의 근로의욕을 문제 삼는 비난이 불편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이런 비난이 좁게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제도에 대한, 넓게는 복지국가 전반에 대한 축소를 요구하기 위한 공격의 신호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레이건대통령이 복지제도를 축소시키면서 들고 나왔던 "welfare queen(복지여왕 또는 수급자여왕)"은 가장 전형적인 선례가 될 것이다.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이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회보장급여를 받는 사람이 얼마짜리 차를 타고 다닌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일수록 잘 먹혀들었다.

수급자의 근로의욕을 문제 삼는 것이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이런 비판이 '근로빈곤'의 문제에는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1월 25일자에 사례로 등장한 기초생보 수급자 구모씨(26세, 남, 지체장애3급)나 주모씨(60세, 여)가 생계급여에 안주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는 있다. 실제로 이들은 각각 편의점 알바와 요양보호사로 일해서 작년 한 해 동안 167만 원과 150만 원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일을 해서 '탈 수급'을 하라고 요구하려면, 먼저 '일을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말 할 자신이 없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고, 또 실제로 일을 하는 데도 자신과 그 가족이 빈곤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근로빈곤층이라고 부른다. 한국노동연구원 이병희의 연구에 의하면, 전체 빈곤계층 중에서 가구 내에 근로능력이 있는 가구원이 있는 경우는 약 40% 정도 된다고 한다. 근로능력 있는 빈곤층 10명 중에서 6명은 일 년 중 적어도 1개월 이상을 취업해 있었던 사람들이고, 이중에 3명은 심지어 1년 내내 취업해 있었다. 이런 통계를 놓고 일할 의지가 없어서 가난하다는 얘기를 늘어놓지는 못 할 것이다. 그러면 근로빈곤은 왜 나타나는가?

근로빈곤의 문제, 나아가 빈곤의 문제는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이런 원인 진단 하에서는 경제성장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중심적인 정책대안이 된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주장으로 다른 모든 복지와 소득보장의 문제를 일자리 문제로 환원시켜 버리는 오류마저 범한다.

그러나 일자리 부족이 근로빈곤의 원인이라는 진단은 절반만 옳은 진단이다. 일자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좋은 일자리, 일다운 일자리가 아니라면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따로 증거를 댈 필요도 없이, '근로빈곤'이라는 개념어 자체가 보여주는 바다.

실직이 빈곤을 초래하는 중요한 기제인 것은 사실이다. 취업을 함으로써 빈곤을 탈출하게 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로빈곤의 위험은 실직에 기인하기 보다는 고용불안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일을 하는 데도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거의 대부분 임시직, 일용직, 영세자영업자, 공공근로이니 이들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황이 이러한데, 이들이 실직해서 가난해 지는 것이니 일자리를 찾아주면 된다고 진단하는 것으로 정말 문제해결이 가능하겠는가?

근로빈곤을 초래하는 첫 번째 요인이 고용불안정이라면, 두 번째 요인은 저임금이다. 제 아무리 저임금 일자리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건 어떤가?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근로빈곤층을 비빈곤 근로자와 비교해 보니 연간 근로일수나 일일근로시간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차이는 시간당 근로소득에서 벌어졌다. 빈곤여부를 설명하는 데 기여한 비율로 따지자면, '시간당 근로소득'이라는 요인이 설명하는 비율이 75%를 넘는다고 한다.

근로빈곤을 초래하는 세 번째 요인은 일자리가 사회보장체계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즉, 사회보험 미가입이 그것이다. 일을 해서 소득이 있는 동안에 사회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다면, 일자리의 상실이 곧바로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가 사회보험에 가입된 일자리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취업(근로)빈곤층 인구 4명 중에서 3명은 사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공식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요컨대, 근로빈곤의 원인은 일자리 부족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해답도 취업알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근로빈곤의 원인은 '좋은 일자리의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 근로빈곤을 초래하는 원인은 고용의 불안정성, 저임금, 그리고 일자리와 사회보장 간의 연계 단절에 있다. 이러한 근로빈곤 문제의 원인에 대응하는 정확한 해법, 즉 좋은 일자리를 광범위하게 창출하고 유지하려는 정치사회적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때다.

연령대별로 빈곤율을 따져보면 노인빈곤율이 45%로 가장 심각하여, OECD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기도 낯부끄러운 상황이다. 근로연령대의 빈곤율은 당연히 이보다는 훨씬 형편이 나아서 약 10% 정도이다. 하지만, '일을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사회라면 국가의 정당성 위기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상황 인식은 더 할 수 없이 진지해야 할 것이다.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고, 납세자가 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가 시대정신으로 삼아 만들고 싶어 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도 그 위에 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서울 보문동에 사는 어느 할머니의 집. 이 할머니가 종이 상자를 모아서 버는 돈으로는 기본적인 의료비를 감당하기에도 무리다. 이 할머니는 치료비가 없어서 한 쪽 눈의 상처를 방치하다가 시력을 잃었다. ⓒ인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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