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국민의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 산업정책이 유발하는 이러한 고통에 대응하고자 4대 사회보험을 확충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고, 복지재정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였다. 이러한 복지 강화 정책은 참여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이에 더해 보육과 교육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 강화도 이루어졌다. 민주정부 10년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복지가 가장 많이 확충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세와 규제완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일부 가난한 사람들만 선별하여 국가복지를 제공하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체제의 짝이 민주정부 10년을 관통하는 기본 구조였고,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결국, 민주정부 시기였음에도 경제사회는 양극화되었고, 민생불안은 심화되었다. 그런데 당시의 각종 경제지표는 나무랄 데 없이 우수하였고, 청와대도 이를 거론하며 민심을 달래려 하였다. 효과는 없었다. 이러한 경제지표들이 민생불안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임기를 1년 반쯤 남겨둔 2006년 겨울, 비판적 문제의식을 가진 몇몇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 중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에 관여한 분들과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경제학자들과 노동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때 우리는 '한미FTA와 의료민영화'를 추진한 당시의 참여정부를 옹호하는 것 대신에, 이를 비판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비판적 성찰과 토론을 거쳐 한 권의 책을 출간하였는데, 2007년 7월 5일 <복지국가 혁명> 출판기념회 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출범식을 열었다. 당시 우리는 일자리, 교육, 주거, 노후, 의료 등 민생의 5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역동적 복지국가'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국회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고, 지금 창립 4주년을 맞았다. 토건 신자유주의를 기치로 2008년 임기를 시작한 이명박 정부는 의료와 교육 등 공적 영역에서 시장주의를 강화하였던 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각종 토론회를 조직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공론화하는 방식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정면으로 돌파하였다.
한편, 현 정부가 제주도에서 야심차게 추진하였던 의료민영화 정책을 저지하는 소위 '제주대첩'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우리는 제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2008년 여름 짧은 기간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 한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라는 책이 그것인데, 이 책은 지금도 우리나라 보건의료운동의 중요한 '길라잡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2010년 3월 15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그 동안의 연구와 토론 등의 정책적 노력을 모아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을 출간하였고, 그 주요 내용을 정치인들의 입을 빌어 국민에게 제안하는 '복지국가 국민제안대회'를 개최하였다.
우리는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우리의 담론과 정책을 주요 정치인들과 언론을 매개로 하여 국민과 소통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15일의 복지국가 국민제안대회에서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국민 사이를 매개하여 주었던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이후 민주당의 복지국가 좌 클릭을 주도하였고, 심상정과 노회찬 전 대표 등 대표적인 진보정치인들은 2010년 6.2지방선거를 앞두고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를 진보진영의 정치노선으로 채택하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진보개혁진영의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은 6.2지방선거의 승리로 더욱 강화되었다.
또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일어났다. 민주당이 당헌에 '보편적 복지'를 명시하였다. 전통적으로 보수적 또는 중도적 자유주의 정당이던 민주당이 진보적 자유주의 쪽으로 좌 클릭을 단행한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정치사회적 기여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2011년 들어서도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방정부의 역할, 복지국가의 경제와 복지를 역동적으로 매개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조세재정정책, 주거정책에 대한 연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모아 우리는 지금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무크지 형태의 단행본으로, 이 책의 제목은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갈수록 살기가 어렵다. 양극화 때문이다. 중산층이 얇아지고, 실질소득이 줄어서 그렇다. 국가의 보편적 복지가 취약한 가운데, 우리네 삶에 필요한 복지의 대부분을 경쟁시장에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알아서 구해야 하므로 민생불안과 서민의 고통이 커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민생불안은 일자리 불안이다. 우리나라 경제 산업의 구조적 양극화에 기인한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모든 것을 왜곡시킨다. 10%의 좋은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무한경쟁은 대학교부터 초등학교까지 우리나라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확실한 주범이다.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 세계 최저이자, 아동수당이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다.
또,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대학 등록금이 비싸고,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매우 넓어 명목상으론 보편주의이나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계층을 배제하고 있다. 단일보험자 유형의 보편적 국민건강보험이 잘 제도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70%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정도로 의료비 불안이 상존하고 있다. 우리는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4%에 불과하고, 푼돈 수준의 기초노령연금으로 노후가 불안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민생불안을 해소하는 대안적 국가발전모델로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를 주창함으로써 우리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리고 2010년 6.2지방선거와 2011년 8.24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보편적 복지가 승리하는 과정을 통해, 확실하게 보편주의 '복지국가'가 우리나라의 당면과제이자 시대정신임이 확인되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창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는 경제의 양극화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불공정과 불안정성을 극복하려는 민주정부의 조정시장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를 넘어서는 보편적·적극적 복지체제의 통합적 구조물이다. 우리는 20년 안에 반드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두 번의 집권 시기 동안 우리나라를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관제고지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선진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도달해야 할 잠정적 목표로 2011년 현재 25.2%인 국민부담률을 두 번의 집권기간인 10년 만에 OECD 평균 수준인 34.8%로 끌어올리는 것을 구체적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동안 2011년도 기준(명목GDP는 약 1240조 원으로 예상)으로 약 120조 원(GDP의 9.6%)을 추가적인 국민 부담으로 마련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세금과 사회보험기여금을 더 내야 한다.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 달성을 위해 필요한 120조 원의 1/3인 40조 원은 첫 번째 집권기간에 증세를 통해 마련하고, 나머지 2/3인 80조 원은 두 번째 집권기간에 증세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 경제사회의 양극화, 중산층의 하강분해와 실질소득의 감소로 인해 세원을 넓히기가 매우 어려운 조건이니 만큼, 첫 번째 집권기간 동안에는 10%의 상위계층이 주로 추가적 부담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자증세 방식으로는 선진복지국가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어렵고 보편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으므로 두 번째 집권기간 동안에는 세원을 최대한 넓히는 방식으로 보편적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 보편적 증세가 가능하도록 경제적 조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다. 지금은 세금을 더 내고 싶어도 대다수 국민은 낼 형편이 못 된다.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세금을 낼 충분한 여력이 생겨야 한다. 이 일을 집권 첫 번째 기간 동안 해내야한다.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를 통해 우리 경제사회의 균형 잡힌 역동적 발전을 이루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첫 번째 집권기간에 달성해야 할 증세 규모인 2011년 기준 40조 원 중에서 15조원은 국민건강보험료 부담 증가로 조달하고, 나머지 25조 원은 일반조세에서 증세한다. 이 중 10조 원은 기존의 비과세 감면을 정리하고 조세구조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므로, 결국 15조 원 정도를 '복지국가 목적세' 방식 조달하면 된다. 이러한 목적세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조승수 의원이 사회복지 목적세 법안을 제출하였던 바, 개인소득세(종합소득세, 근로소득세, 양도소득세, 이자소득세, 배당소득세 등)를 중심으로 주로 소득상위 10%가 추가적 부담을 누진적으로 지는 방식의 증세를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첫 번째 집권기간의 마지막 연도에는 2011년도 가치로 40조 원의 증세액과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된 10조 원(민주당은 이를 2011년 기준으로 10.7조 원으로 잡고 있음)을 합쳐 약 50조 원을 추가로 복지국가 정책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건강보험 하나로)에 사용될 15조 원을 제외한 35조 원(2011년도 가치)의 사용처를 정하는 일만 남았다. 경제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은 많고, 시급하지 않은 일도 별로 없다. 우리가 당장 추진해야 할 일들과 해당 항목별 연간 소요액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무상급식 : 1.8조 원
② 무상보육 : 4.0조 원
③ 반값등록금 : 4.8조 원
④ 고교 의무교육 실시 등 공교육 강화 : 1.4조 원
⑤ 청년고용, 실업부조와 적극적 노장시장정책 등 일자리 정책 : 10조 원
⑥ 기초노령연금 확충(1인당 월 18만 원으로 증액) : 4조 원
⑦ 아동수당(5세 아동까지 실시) : 3조 원
⑧ 주거복지(공공임대주택 건설 및 주거비 지원 등) : 5조 원
⑨ 사회서비스 공공인프라 구축 : 1조 원
이들 9개 항목에 소요되는 연간 재정을 모두 합하면 35조 원이다. 최대한 이들 항목 모두를 동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어떤 항목은 실행을 준비하는 데 절대적으로 시간이 소요되고, 또 어떤 항목은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정치사회적으로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집권기간의 후반기에는 최대한 이들 정책이 모두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복지국가가 주는 삶의 안정과 행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복지국가 정치세력의 그 다음 집권기간을 국민으로부터 허용 받을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하다. 세금을 더 내지 않는 대신 지금처럼 각자도생의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시장복지를 구입하고 시장만능국가의 국민으로 머물 것인지, 각자의 능력에 맞게 누진적으로 세금을 더 내고 민생의 5대 불안을 해소하고 경제와 복지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인지, 우리 국민이 직접 선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열려있는 토론이 필요하고, 정치적 의사를 결집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의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기대와 열망을 모아내려는 노력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운동'이고, 풀뿌리 수준의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이다.
이러한 '역동적 복지국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세 축의 동시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첫 번째 축(X축)은, 싱크팅크로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국가 담론과 정책생산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 축(Y축)은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전국 각지의 풀뿌리 시민 속으로 확산시키는 것인데, 지난 5월 12일 출범한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의 전국적 확대와 풀뿌리 활동의 강화가 그것이다. 세 번째 축(Z축)은 복지국가 운동의 정치세력화다. 이를 위해 복지국가 운동진영의 활동가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기존의 정치인들이 복지국가 정치세력으로 조직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이러한 방향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 ⓒ프레시안(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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