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친환경 무상급식을 둘러싼 오세훈 시장님의 최근 언행 때문입니다. 저희 강북구의회의 사례가 오세훈 시장님에게도 '교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총예산은 200억 원 줄었지만, 친환경 무상급식을 위해 20억 원 예산 책정
강북구의회에서는 11월 23일~12월 15일까지 본회의가 있었습니다. 주요 안건은 행정사무감사와 2011년 예산안이었습니다. 강북구는 2006년부터 예산이 300억 원 가량 증액되었지만 올해부터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등의 조치로 예산이 200억 원 정도 급감했습니다.
강북구의 경우 예산의 대부분이 조정교부금(32%)이거나 보조금(32%)일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낮습니다. 그렇지만 2011년부터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위해 2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여 의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교육청-서울시-강북구가 5:3:2의 비율로 예산을 책정하면 강북구 초등학생 6개 학년 모두에 해당하는 1만5537명에 대한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의회의 대치상황으로 인해 강북구 무상급식 '위기'에 봉착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던 강북구의회의 무상급식 예산안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상급식 지원조례에 대해 서울시의회와 오세훈 시장이 대치하게 된 이후부터입니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친환경 무상급식에 한 목소리로 찬성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부자급식은 예산낭비라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아... 한나라당에서 당론으로 내부 단속에 들어갔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북구의회는 한나라당 6명, 민주당 6명, 진보신당 1명, 민주노동당 1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한나라당 의원을 제외한 8명의 동의를 얻어 '의원 발의 조례'로 6개 학년 전부에 대한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을 통과시키는 방향을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판단으로 민주당 의원들에게 "진보신당에서 주도할 생각이 없으니, 민주당 의원 중 1인이 의원 대표 발의를 해 주십시오~"라는 취지로 민주당 구의원들의 협조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표 대결'이 아닌,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설득' 시작
그러나 이후 저는 6개 학년 전부를 대상으로 하는, 의원 발의 조례 및 표 대결을 통해 관철하려는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물론 표 대결을 하면 8:6으로 통과는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4개 학년(1~4학년)에 한해 우선적으로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하되,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표 대결을 하게 될 경우, 의회 내에서 찬반론이 비등해져 소모적인 논의를 하게 되어 향후 의원들 간의 감정적 대립으로 인해 강북구 발전에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1~3학년에 대해서는 서울시 교육청 예산으로 하되, 4학년에 대해서는 강북구 예산 20억 원을 통해 시행하기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서울시 예산의 공백으로 차질이 생긴 5~6학년의 경우 훗날의 과제로 미뤄둔 채 말입니다.
강북구의회는 구의회 의장과 복지건설위원회 위원장이 한나라당 소속입니다. 저는 예결위가 시작된 이후 매일같이 의회에서 일부러 방청을 하고 의장실에서, 그리고 의회 복도에서 이분들을 설득하고 호소했습니다.
처음에는 "의무교육을 찬성하시는 분들이 의무급식은 왜 반대하시느냐고"고 설득하고, 이후에는 제 유년시절 아픈 경험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영세민, 생활보호대상자여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수업료와 의료비를 지원받았는데, 중학교 입학식 때부터 영세민 또는 생활보호대상자는 '따로 남아서 줄 서라는' 말에 어린 시절 느꼈던 상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야간대학을 진학했다고 해서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아예 탈락했던 일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시혜적, 선별적 복지는 이렇게 밝게 자란 저 같은 사람에게도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고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의무교육을 받고, 의무급식을 받도록 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 훌륭한 국민으로 자라나게 하는 데 커다란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 ⓒ프레시안(최형락) |
한나라당 구의원들도 찬성해서 '만장일치'로 무상급식 예산 통과
이후 한나라당 의원들도 하나둘씩 찬성하게 되었습니다. 강북구의 예결위원회 회의는 17시간의 마라톤 심의를 거쳐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결국 한나라당 소속의 복지건설위원회 위원장님과 최종적으로 협의한 내용은 한나라당의 당론이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는 분명하게 하겠지만,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010년 12월 15일 강북구의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은 신상발언을 통해 문제제기는 분명하게 하되 반대표를 행사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 20억 원이 통과된 것입니다.
그 결과 2011년 2월 1일부터 강북구에서는 1~4학년에 대한 친환경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치원의 경우 모든 아이들에게 친환경 쌀을 지원해주기로 했고, 5,6학년의 경우에는 친환경 식자재로 전환할 경우 전환 차액의 상당액을 구 예산으로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오세훈 시장님, 강북구 의회 회의장 '녹화 장면'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정치는 내 편을 만들어가기 위해 작은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를 설득해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북구의 재정자립도는 매우 낮습니다. 그리고 구의회에는 4개 정당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결국 만장일치로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을 올해부터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오세훈 시장께서는 서울시청 광장 조례와 무상급식 조례가 서울시의회에서 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회와 힘겨루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주민투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세훈 시장께서 강북구의회 제2차 정례회 회의록과 회의장 녹화장면을 꼭 보실 것을 권합니다.
강북구 한나라당 구의원들은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해, 당론 준수와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 사이에서 고민이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문제제기는 분명히 하되, 반대는 하지 않는 방식으로 양자 모두를 조화시키는 '정치적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이외에도 강북구의회는 원내교섭단체를 따로 꾸리지는 않았지만 상임위 의장단 간담회 등을 통해 일상적인 의견 조율을 하고 있습니다. 소수 정당의 의원이라고 함부로 무시하지도, 힘으로 누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석에서는 한나라당, 민주당 구의원들과 함께 이구동성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도 강북구의회에 와서 배워야 한다. 우리는 4개 정당으로 갈라져 있지만 서로 잘 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입니다.
대선 후보 불출마 선언을 하시든가, 아니면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합니다
세간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께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 먹는 문제'를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시장께서는 '자신의 순수성'을 의심한다며 볼멘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세훈 시장께서는 이참에 대선 후보 불출마 선언을 먼저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의견 조율, 소통, 통합의 정치가 대한민국 정치에 정말이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오세훈 시장께서 '갈등 증폭형' 정치를 계속 하신다면 과연 그것이 대통령 후보로서 올바른 처신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간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역동적 에너지를 통해 '역동적 성장과 민주화'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치권에서는 복지국가 담론이 한창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역동적 복지국가'로 진입하려는 정치사회적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 당선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강북구의회 의원들의 반응을 통해서도 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께서도 지금이라도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는 대열에 동참하시거나 최소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보다 올바른 정치적 지혜가 아닐까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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