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스웨덴과 여건이 다른 나라가 우리뿐이겠는가. 복지국가를 실현한 나라들은 각각 그 나라에 특유한 경로를 밟아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우리도 우리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스웨덴의 경우에서처럼 우리도 '보편주의'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의 틀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그들의 경험을 참고하여 핵심적으로 필요한 자원과 전략을 구사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가능하며, 토종형의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우리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 복지에서 보편주의란 일차적으로 수혜대상의 문제이다. 누락되는 사람 없이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복지로서, 수혜대상을 저소득층으로 한정하는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나아가 보편주의는 시민권에 근거하여 모든 국민에게 '기본선'을 보장한다. 이에 비하여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에서 수급권은 '빈곤인증'을 통해 주어지며, 그 논리상 급여수준은 생계를 간신히 이어갈 수 있는 정도의 '최소선'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은 적어도 기본적인 수준의 생활은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 복지의 핵심 이념이다.
하지만 보편주의가 정의롭고 선하다는 것이 우리가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우리가 더 나은 복지국가를 만들어 보자고 나선 이상, 계층 간 이해의 조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보편주의는 그 길로 가는 데 필수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북유럽 복지국가의 형성기에도 보편주의는 중요한 전략이었다. 스웨덴 사민당은 "생사를 건 정치게임"을 했다고 연구자들은 전한다. 산업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사민당은 처음에는 농민과 연합하기 위하여 양보를 감행하였고, 나중에 화이트칼라와의 결합이 필요했을 때 이들과 타협해야 했다. 우리가 복지동맹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타협의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보편주의 복지이념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백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계급구도는 복지국가 형성기의 스웨덴과는 전혀 다르다.
▲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라또까르따노 학교 식당 위에 있는 조형물. 자율과 평등이 공존하는 북유럽 모델은 특히 교육 부문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프레시안 |
그러나 집단의 이해를 조정해야만 친복지세력이 집권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단순화해서 생각하자면, 우리나라에는 사회경제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네 집단이 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 정규직 조직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영세사업장 종사자 포함), 자영업자(농어민 포함)가 그들이다. 이들 네 집단은 사안별로 각각 이해관계를 달리 하겠지만, "어떤 복지국가를 요구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화이트칼라와 정규직노동자가 한 그룹으로, 비정규직과 자영업자가 다른 한 그룹으로 묶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체계는 소득보장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빈곤인증'을 통해 수급권을 획득하는 공공부조와 '일자리인증(기여)'을 통해서 수급권을 획득하는 사회보험이 기본적인 두 축을 이룬다. 사회보험은 원리적으로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지 않는 운영원리를 가질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임금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보장체계의 틀에서 가장 소외되고 있는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이다. 이들은 일자리(고용관계)를 통하여 국가복지까지 연계되도록 하는 현재와 같은 복지체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전혀 혜택을 볼 수 없는 집단이므로, 보편주의 원리에 일차적인 지지그룹이 될 것이다. 사실 보편주의 복지를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국가가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에게 일정한 보호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이트칼라와 조직노동자들도 새롭게 얻는 것이 있어야 보편주의 노선에 결합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보편주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서비스의 전면적 확대를 통해서 이전의 소득보장제도를 넘어서는 국가복지를 약속해야 할 것이다. 이들도 사실 실직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큰 병이 걸리면 이를 감당할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다. 자녀양육과 교육의 부담을 크게 느끼지만 그렇게 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자녀가 안정된 일자리를 얻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노후 준비가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문제를 온전히 개인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복지를 통해서 위험에 함께 대응하는 보편적 복지시스템은 중산층에게도 당연히 열려있다.
스웨덴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한 복지동맹의 한 축이 계급타협이었다면 다른 한 축은 젠더포섭이었다. 노동운동이 젠더관점(페미니즘)을 수용하여 복지국가 전략에 포함시킨 것은 스웨덴 복지국가가 여타의 다른 복지모델에 비하여 우월하고 지속가능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이들은 돌봄노동을 공공서비스로 전환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공공부문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여성도 임금노동자가 되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우리에게 지금 요구되는 것도 남성 가장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를 깨고 여성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이다. 젠더관점에 입각하여 여성의 요구에 대응하고자 한다면, 자연스럽게 특정 계층의 이해를 넘어서는 보편주의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젠더관점은 특히 보편주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서비스의 확대를 요청한다.
보편주의는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 전략으로 반드시 채택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소득보장보다 사회서비스가 전술적으로 우선한다. 이 점은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적 경험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소득수준을 따지지 않고, '빈곤인증'이나 '일자리인증' 없이 보육과 교육과 의료서비스 등의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복지국가로 가는 첫 번째 단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민주당의 3무상 시리즈는 탁월한 정치적 선택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부자복지' 논란은 우리가 넘어야할 산이다. 보편주의가 부자복지라는 공격에 대해서는 기본권 논리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빈곤인증'뿐만 아니라 '귀족인증'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자를 뺀 복지를 현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학교급식에서 돈 내고 먹을 아이 30%를 골라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 과정은 위화감을 조성하면서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소득수준 상위 30%는 주로 보수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일 터인데, 이들만 쏙 뺀 복지를 한다는 것은 '70%복지'의 자가당착이 될 것이다. 한편,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는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복지'라고 하는데,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다만, 한 가지는 물어봐야겠다. 대상이 누구인지? 즉, 소득수준이나 근로여부에 상관없이 우리 국민이면 누구든지 각각의 생애주기에서 필요한 복지를 제공한다는 뜻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복지국가는 단순히 재분배정책으로 환원될 수 없다. 개인에게 닥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을 국가의 보장시스템을 통해서 해결하자는 것, 즉, 불안사회를 해소하자는 것임을 알려낼 필요가 있다. 다양한 계층과 인구집단 사이에서 공통적인 이해를 추출하고, 엇갈리는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교환과 타협을 모색해 가다보면 다다르는 곳이 보편주의 복지국가일 것이다. 이미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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