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3일(현지 시각) 이란과의 종전 합의 소식을 전하면서 트루스소셜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8년 전 6월 12일 조선(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조미(북미) 정상회담장이었던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의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올린 사진 한 장은 다양한 추측을 불러오고 있다. 2기 취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희망해온 것에 비춰볼 때, 다시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게 아닌가 한다. 트럼프는 6월 16일 G7 정상회담을 계기로 만난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반도 문제 진전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8년 전에 사상 최초의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될 때와 오늘날의 상황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게 달라져 있다. 비핵화는 그 중심에 있다. 예전에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만남을 이루기 위해 비핵화 의지를 발신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트럼프를 향해 만나고 싶으면 비핵화를 내려놓으라고 큰 소리를 친다. 갑을관계가 분명했던 과거와는 달리, 자신도 이제 갑이 되었으니 이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는 뜻이다.
'재회'는 짙은 안개 속에 있지만, 분명해진 것은 있다. 미국 단극 체제의 종언이 조미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패권국 미국은 과거의 조선을 상대로 대화의 조건에서부터 의제와 합의, 그리고 이행을 둘러싼 신경전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과시하려고 했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강력한 경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패권적 지위는 조선을 상대로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하드파워'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미국은 곧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2019년 2월 하노이 조미정상회담과 6월 판문점 번개팅이 '희망고문'으로 끝났다고 결론을 내린 조선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 이상 우선순위를 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대신 조선이 선택한 것은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으로, 외교는 중국 및 러시아 중심으로 삼겠다'는 "새로운 길"이었다. 6년이 지난 오늘날, 조선은 이들 세 가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렇다면 다극화 시대에 우리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일단 한국의 국력은 지속적으로 강해져왔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5위 수준의 군사력은 이를 상징한다. 하지만 대북정책의 좌표는 이전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인 특수관계'로 규정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제가 사실상 종언을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북한 비핵화"의 현실적 소구력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특수관계론과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관성은 미국 패권시대를 반영한 것이기에 다극화되고 있는 국제질서에선 효능감을 가질 수 없다.
다극화 시대의 대북정책은 조선을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관성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국가'로 간주하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영토조항 등 헌법적 제약이 존재하기에 조선을 국가로 승인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조선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관행과 법·제도 등은 하나둘씩 바꿔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성 인정을 통한 평화공존'을 공론화해보자는 뜻이다.
핵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접근을 추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정부는 '동결→감축→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비핵화'를 추구하고 있고,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도 흡사한 주문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 현실적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군사력 균형'을 매우 중시하는 조선은 "적수들"이라고 부르는 한미일의 군비증강과 군사협력의 추이가 꺾이지 않는 한, 핵 동결에 동의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또 종착점이 '비핵화'로 설정된 어떠한 외교적 협상도 임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동결이라는 입구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한미일 역시 군비통제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또 '핵전쟁과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큰 틀에 조선의 핵문제를 담아낼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공식·비공식 핵보유국이 비핵국가를 상대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고, 핵보유국 간에도 선제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국제 규범화하는 것이 그 출발점에 해당한다.
아울러 미국·러시아·중국 등 핵 강대국들이 먼저 핵군축을 추진하면서 여기에 조선을 비롯한 공식·비공식 핵보유국도 참여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세계의 핵군축'의 틀에 조선 핵문제도 담아내자는 주장은 트럼프가 여러 차례 언급한 바이기에 결코 황당한 얘기만은 아니다.
다극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의 이익과 안전을 드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가깝지만 가장 적대적인 조선과의 관계를 관리하고 풀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조선의 국가성 인정을 통한 평화공존'과 '세계의 핵군축에 북핵 담아내기'를 제안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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