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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태인, 객가인의 성공 비결은?

[김윤태의 중국은 하나?] 중국의 이민 역사를 개척한 객가인

푸젠의 융딩(永定), 우핑(武平), 난징(南靖) 등의 지역을 가면 버섯 모양 같기도 하고 외계인의 비행접시 같기도 한 기이한 풍모의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이 건축물은 세계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조형과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투러우(土楼)이다. 흙을 주요 재료로 사용한 건축물로 지붕은 기와로 되어 있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 투러우는 높이가 4~5층 정도 되는 원형 가옥으로 3대 혹은 4대의 가족들이 공동 거주하는 형식이다.

투러우의 가장 큰 특색은 외부와 단절된 아주 폐쇄적인 건축 양식이라는 점이다. 원형, 방형, 반원형에서 팔괘형까지 그 형태가 아주 다양한데, 모두 외부와는 전혀 소통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쓰팡러우(四方樓)'라고 불리는 융딩의 방형 투러우가 가장 오래 되었고, 현재까지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투러우다.

이 투러우는 높이가 약 16미터나 되는데 5층 건물이니까 층간 간격은 약 3미터 정도가 되는 셈이다. 투러우의 담장은 아래쪽이 1미터 이상의 두께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하후상박형이다. 각층마다 20여칸의 방에 1칸의 대청이 있으니 전체 5층짜리 투러우에는 100여 칸의 방이 있는 셈이다.

각층의 동서남북 사방에 모두 위아래로 통하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한 개의 투러우에 20~30가구에 100여 명의 가족이 살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나라 때 세워졌으니 이미 1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줄곧 대대로 27대가 살고 있는 집도 있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굳게 성을 쌓고 오로지 내부의 구성원들만이 소통하는 참으로 기이한 역사의 흔적이다.


투러우는 객가인이 발전시킨 주거 형태이다. 서진에서 송나라 말기까지 객가인들이 북방으로부터 이주해 정착하면서 발전시킨 건축물이다. 외지에서 이주해 왔으니 당연히 언어는 물론이고 풍속과 문화의 차이, 이익의 충돌로 인해서 늘 현지 주민과 충돌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이러한 현지인과 이주민과의 투쟁의 역사는 중화민국 시기까지도 지속되었다. 따라서 현지 주민의 침투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폐쇄적 공간은 계속 필요했고 이러한 주거형태가 지속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주민과 현지인 사이의 갈등과 충돌은 객가인의 혈연관계 중시 경향을 만들어냈다. 객가인들은 특별히 가족을 중시하고 종족을 중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객가의 투러우에는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데 모두 동일 성씨를 가지고 있는 동족들이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모든 일은 동족이 서로 도우면서 해결한다. 이러한 동족 중심의 생활문화는 이들의 상업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족기업이 특별히 많이 분포한 지역이 바로 푸젠을 비롯한 광둥 일대이다. 즉, 객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가족 기업이 보편적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가족 중심의 생활방식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다.

객가(客家)라는 한자 의미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객가는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면 이방인이 주인 행세를 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중원의 사람들이 난을 피해서 장시 성이나 푸젠 성 일대로 남하하면서 이 지역 사람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였다면, 원래 이 지역 토착민의 입장에서는 객이 주인행세를 한다고 비쳐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객가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객가인들의 성공 비결은?

객가는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이민의 개척자이다. 장시, 푸젠에서 광둥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해외 진출도 매우 활발했다. 현재 세계 전역에 약 1억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니 그 세력이 만만치 않다. 특히 타이완(대만) 인구의 상당수와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화교의 대부분도 객가인이다. 이들은 타지에 살면서도 객가 문화를 유지하며 언어도 고유어인 객가어(客家语)를 사용하고 있다.

객가인은 머리가 좋고 부지런해서 경제 관념이 특히 강하고 관료 출신도 많이 배출했다. 홍슈취안(洪秀全)을 비롯해서 쑨원(孙文), 덩사오핑(邓小平), 타이완 전 총통 리덩후이(李登輝), 필리핀의 아키노,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객가인이다. 경제계에서도 이들을 중국의 유태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하는 유명한 상업 전통을 갖고 있다. 홍콩의 대표적인 기업인 리카싱(李嘉誠)도 물론 객가인이다.

객가인은 그 가옥 형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매우 폐쇄적이고 종족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다. 강한 정체성은 현대에 와서도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지속시키고 있다. 2년에 한 번씩은 세계 각지의 도시를 순회하면서 객가인 모임을 열고 있을 정도이다.

강한 정체성은 객가인 성공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1억이 넘는 객가 커뮤니티가 계속 번성하고 성공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들이 단순히 과거의 전통만을 고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강한 종족 정체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외부와의 연결을 시도했다. 국적과 이데올로기를 떠나 객가인의 정체성 아래 뭉치기도 했지만, 타민족과 이방인과의 교류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자신들이 속한 지역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공동 이익과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이 객가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정한 배경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화와 전통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가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발전은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의 결합이다. 전통이 없는 세계화, 세계화가 없는 전통의 고수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전통과 세계화가 결합된 모습을 실천한 객가인들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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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에서 중국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외교부 재외동포정책 실무위원이며, 동덕여대 한중미래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재중한인연구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다. 국립대만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이슈뿐만 아니라 조선족 및 재중 한국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재중 한국인 사회 조사 연구>, <臺灣社會學想像>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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