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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사 피습이 징벌? 북한, 제정신인가?

[정욱식 칼럼] 피해의식과 과대망상에서 벗어나야

지난 5일 아침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흉기로 피습당하는 사상 초유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통일운동단체인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 씨이다. 그는 한미군사훈련을 중단시키기 위해 미국 대사를 공격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히고 있다. 얼마든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흉기를 휘두르고 말았다.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도적 만행인 것이다.

필자는 2003년경부터 김 씨를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기이한 언행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받았었다. 그랬던 만큼 미 대사 공격 사건은 충격적이면서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쩌다 저런 괴물이 되었나' 하는 의문이 하루 종일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 지난 2010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기종 씨 ⓒ연합뉴스

김기종은 왜 괴물이 되었나?

그를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2007년 10월 초에 자살하겠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급한 마음에 통일운동 선배들 몇 사람에게 그를 만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우리마당 피격사건'을 알게 됐다. 1988년 들어 우리마당은 서울올림픽을 남북공동행사로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사전 행사 격인 '통일문화큰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도중에 괴한들이 우리마당 사무실을 습격해 김 씨를 비롯한 사람들을 폭행했다.

그러나 사건 이후 정부와 국회는 물론이고 언론조차도 진상 규명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2004년 <시사저널>에서 "북파공작원들이 우리마당 사건을 일으켰다"는 관련자의 증언이 공개되고 당시 이 사건의 변론을 자처한 것으로 알려진 노무현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상 규명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자 김기종 씨는 2007년 8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급기야 10월 19일에는 분신자살을 시도해 큰 화상을 입었다.

분신 시도 이후 그의 피해의식은 피해망상으로 악화되었고, 이는 과대망상과 맞물리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간혹 소리를 지르고 자리에 드러눕는 등 기이한 언행으로 인해 통일운동 진영에서도 그를 외면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러자 그는 더욱 비이성적이고 극단적으로 변해갔다. 2010년에는 독도지킴이 대장을 자처하면서 주한 일본대사에게 돌을 던졌다. 이후에는 자신의 독도 수호 활동을 정부가 잘 몰라준다며 정부를 맹비난하는 이메일을 수시로 발송하기도 했다.

2013년 어느 날에는 필자에게 다가와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하면서 유인물을 건넸다. 우리마당이 주최하는 행사 장소를 대관해주지 않고 면담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박원순은 가짜 인권변호사'라는 비난의 글이 담겨 있었다. 2014년 2월에는 박 시장의 강연장에 찾아가 앞자리에 앉아 있던 참석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급기야 주한 미국대사에게 과도를 휘두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김기종 씨는 '반미·반일 민족주의자'라는 이념적 틀로만 국한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박원순 시장에 대한 인신공격도 주저하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인정 투쟁 욕구는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미 대사 공격을 전후해 열사를 자처하는 그의 글과 발언은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이 굴절된 인정 욕구와 맞물려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념형 범죄'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 제정신인가?

사건 직후 일부 언론은 김씨가 2000년대 초중반에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며 북한과의 연계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북한을 다녀온 후에 반일 투쟁에서 반미 투쟁으로 전환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는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다. 우선 김씨는 80년대 초부터 통일운동과 반미운동을 해왔던 인물이다. '독도 지킴이 대장'을 자처하면서 반일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시점도 2006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한 직후부터였다. 시간적으로 보면 그는 오히려 북한을 다녀온 이후에 반미보다는 반일 활동에 치중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은 북한이 김씨의 만행을 옹호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5일 "전쟁광 미국에 가해진 응당한 징벌"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김기종은 불의에 달려들어 남북은 통일되어야 한다,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며 그에게 정의의 칼세례를 안겼다"며, "미국을 규탄하는 남녘민심의 반영이고 항거의 표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보면서 '북한이 제정신인가'라는 분노어린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미국이 섭섭하고 불만스럽다고 하더라도, 범죄를 옹호하는 언사는 있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북한의 주장은 국내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 결과 북한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갈 공산도 커지고 있다. 소니 해킹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서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북한의 반인륜적 입장 표명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줄 우려가 크다. 또한 남북관계 개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가장 고립된 상황에서 제재와 봉쇄를 받고 있는 북한은 피해의식과 과대망상이 강한 나라이다. 이게 때로는 기이한 언행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북한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 사건과 같은 범죄 행위마저 자신의 프로파간다에 이용하려는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북한이 제기하는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얻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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